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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36

10 토끼집 파티 그건 12월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일어난 일인데, 아침에 출근을 해서 책상을 보자 봉투가 하나 놓여 있었다. 봉투 겉에는 아무런 말이 없이 내 이름과 직책명만 달랑 써 있었다. 자리에 앉아 커피를 부탁하고 봉투를 열어보니까 하얀 카드에 이렇게 써 있는 것이었다. ' 토끼집 파티' 삼십년을 넘게 살아오면서 계속 느낀 것은 우리나라의 말이란 게 참 어렵다는 것이다. 비록 아직은 머리가 빨리 도는 그런 아침이지만서도 이 두 단어를 완벽하게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토끼네 집에서 하는 파티 토끼집을 위한 파티 토끼들이 모이는 집파티 토끼의 집파티토끼집 같은 혹은 그런 모양의 파티 토끼 스타일의 하우스 파티 토끼집 모양 혹은 토끼집 풍의 분장을 하고 모이는 파티 (도대체 토끼들의 집은 어떻게 생겨먹었단 말인.. 2005. 6. 1.
09 다시 다른 나라로 간다 '삼만원짜리 전화는 삼만원짜리의 소리를 내는군' 나는 잠을 자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뭐랄까 지금 울리고 있는 저 전화는 일종에 임시인 것이다.얼마전에 한국에 들어올 때부터 곧 다시 다른 나라로 떠날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또 그렇다고 전화 없이는 여러 가지로 불편하기 때문에 오는 첫날 바로 전화를 신청하고, 그 길로 추석전이라 몹시 붐비는 이마트에 가서 그러니까 딱 몇 개월만 사용하기 적당한 그렇다고 자주 사용하는 것도 없으니까 기능이라고는 하나도 필요없고, 외국에 나가 있는 동안 몇 년간 가방 한 쪽에라도 쳐박아 두었다가 무리 없이 사용할 수 있는 완전한 'proven technology'를 사용한 싼 전화기를 골라들었었다. 뭐 전화의 음질이라든가 작동상태라든가는 별 문제가 없는 녀석이지만.. 2005. 6. 1.
08 유코는 떠나고 (fiction+nonfiction) 점심을 먹으러 식당엘 가다가 소위 토끼언덕이라고 불리는 곳을 바라봤다. 역시나 자그마한 토끼 언덕에는 이제는 짙어진 색을 보이는 파란 잔디와 이름을 알 수 없는 하얀 꽃들이 만발해 있었고, 조그마한 사슴 한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었다. '아아 봄이야' 하는 마음으로 지나치다가 문득 든 생각 '도데체 토끼들은 다 어디로 갔지?' 그리고 생각을 해보니까 작년 이맘때만 하더라도 저 언덕에는 갓 태어난 새끼들과 그 녀석의 어미들로 추정되는 녀석들과 이제는 몇년 지나서 나름대로 잘난척하는 수많은 토끼들이 모여서 통통거리거나 풀을 뜯거나 하다가 서로 다다다 내지르면서 언덕의 패권을 다투던 장이었다. 그렇지만 올해는 도무지 이런 녀석들의 짧은 꽁지조차도 볼 수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토끼들이 싸그리 멸종.. 2005. 6. 1.
07 RSPCA와 크리스마스 2 "그래도..."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내가 말을 시작했다 "헬기까지 사용한 것은 너무한 것 아닌가요?" "뭐 그런면이 없지는 않지만서도..." 불안한 얼굴의 남자가 말을 했다 "우리 조직도 이제 헬기정도는 마음대로 사용하는 것이 좋다는 의견도 있었고..."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에요!" 여자쪽이 신경질적으로 남자의 말을 막았다. "당신은 피의자의 신분으로 여기 와있는 거에요. 이번엔 쉽게 끝나지 않을거라구요" "이번엔? 나는 처음 잡혀왔는데?" 여자는 왠일인지 약간 당황을 했다. 목소리를 다시 가다듬으면서... "암튼 그건 중요하지 않아요. 당신의 이번 3호 고양이건으로 혼줄이 날 겁니다" "3호?" "당신은 당신 고양이 이름도 모른다 말인가?" 이번에는 남자쪽이 소리를 쳤다. "내 말은 어떻게 그 고.. 2005. 6. 1.
06 RSPCA와 크리스마스 1 "그럼 이걸 가지고 가서..." "네. 그럼 제가 할 일은...." "그럼 잘 다녀오게" 약간은 추워진 날씨를 느끼면서 교수방을 빠져 나왔다. 교수가 보자고 한 이유는 당신의 몸이 안좋은 관계로 이번에 노르위치(Norwich)에서 열리는 학회에 대신 가서 발표를 해달라는 것이었다. 물론 다른 똑똑한 인간들도 많았지만 뭐 굳이 박사급까지 보낼 필요가 없는 그런 일종에 통과의례같은 학회였기 때문에 내가 선발이 되었다. 나로서도 오래간만에 다른 도시를 방문할 기회가 왔고 무엇보다 모든 비용을 학교에서 대준다고 해서 반대할 것도 없었다. 다음날 일찍 기차가 있었기 때문에 조금 일찍 집에 들어와서 2박3일용의 짐을 챙기고 있었다. 2박정도라면 속옷과 양말 몇 개 정도 챙기면 되었고 발표자료와 노트북을 검사했다. .. 2005. 6. 1.
05 卯猫 2 유코가 떠난 다음 날은 하루 종일 강풍이 불어댔다. 내가 아는 한 가장 큰 나무도 흔들거렸고, 길거리에는 부러진 나뭇가지, 간판 등이 어수선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런 날은 꼼짝 안하는게 좋지만 토끼녀석들이 싹 쓸어가는 관계로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약간 바람이 약해진 틈을 타서 슈퍼엘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까 검은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나는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날은 그저 빨리 돌아가서 맥주와 함께 애니메이션이나 몇편 보는게 최고인 것이다. 동네 길로 접어들었을 무렵 나무가지 위에 있는 고양이를 한 마리 발견했다. 녀석은 나무가지 위에서 다른 나무 가지로 건너뛰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녀석이 뛰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나무가지가 우지직하면서 부러졌고, 녀석은 .. 2005. 6. 1.
04 卯猫 1 유코가 돌아가는 날이 왔다. 뭐 하기사 오라고 그래서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난 그냥 무덤덤했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아침식사를 건네면서 "그럼 이제 사회부적응은 없어?" "네, 어제부로 보건부 사회적응과에서 편지를 받았어요" "아아 잘되었군. 그럼 이제 저 감시하는 토끼들도?" "그렇죠. 아무래도 우리들은 겨울엔 잠을 자야하니까요" "겨울잠? 그럼 앞으로 학교도 교회도 다 안나오는거야?" "당연하죠. 우리는 '토끼'라구요. 겨울이 오면 겨울잠을 자는" 내 생각에는 보건부녀석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서 대충 유코에게 완치 통지서를 보낸 것 같았지만 (아직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닌다) 뭐 그렇다고 유코와 저 감시토끼들을 잡아놓을 생각은 전혀없었기 때문에 "그럼 즐거운 꿈을 꾸기를" 하면서 저번에 구입한 고.. 2005. 6. 1.
03 폭력의 결과 유코가 교회엘 안나왔다. 뭐 그럴수도 있겠지 혹은 토끼굴로 잠깐 돌아갔나 정도로도 생각을 할 수 있겠지만 왠지 괘씸했다. 유코 덕분에 나는 - 뭐 아침에 토스트와 커피를 얻어 먹은것은 좋았지만서도 - 쓸데없는 거대한 비밀을 알아버렸고, 그 날 이후로 마치 멀더라도 되는듯이 잔디밭에서 풀 뜯는척하는 몇몇 토끼들의 감시를 줄곳 받고 있다. 뭐 적어도 이정도 상황이 되면 내가 교회에서 인간들이 줄어들어서 고민하고 있는 것 을 알고 있는 유코가 최소한 한 자리 (물론 인간은 아니지만서도) 혹은 그 감시하는 녀석들도 변신시켜 가지고 몇 자리 정도는 채워주는게 인간된 도리라고 (역시나 물론 토끼지만서도) 생각했다. 예배가 끝나고 유코네 앞방사는 후배한테 "유코가 왜 안나왔어?" 하고 물었더니 "교회에 꼬마들이 자기.. 2005. 6. 1.
01 유코와 토끼의 비밀 어제밤에 유코가 지나가는 것을 봤습니다. 나는 자동차의 창문을 내리면서 이런 늦은 밤에 어디엘 가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유코는 너무나 놀라면서 내 손을 잡아끌고 가까운 숲으로 갔습니다. 평소에 여자애한테 손을 잡아 끌려서 숲으로 가는 일을 잘 당하지 않는 나로서는 상당히 놀라운 일이었지만 뭐 남자니까 무섭지 않은척하고 있었더랬습니다. 약간은 당황한 목소리로 "당신 내가 보여?" 라고 유코가 묻길래 "그럼" 하고 대답했더니 "아아, 그렇다면 이 투명 망토의 수명이 다했나?"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유코에게 그게 투명 망토인지는 잘 모르겠고 솔직히 내 눈에는 저번에 교회에 왔을 때 입었던 그 외투와 다르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아, 난 바보야 투명망토하고 그 외투를 매번 바꿔입은거야~" .. 2005. 6.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