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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게와 운동회

by mmgoon 2015. 9. 21.

(일요일에 쓴 글입니다)







금요일. 저녁에 집에 도착을 하자 까톡이 불을 뿜더군요


“자자, 그러니까 낼 늦지 않게 오셔야 해염”

“빠지는 인간들은 유서를 미리 제출해라”

“일단 숫자로 눌러버려야되 알간?”

“다 필요없고 걸린 상이란 상은 우리가 다 가져와야햇”

“78학번 형님 낼 경기한다고 지금 발칸반도에서 날아오고 계십니다”

“자자, 다시 한 번 말씀드립니다. 단체티는 첨부터 입지 마시고 저녁식사부터에여”

“야야, 그만 떠들고 일찍 자라구. 술 먹지말고 알간?”


내일 경기를 위한 짐을 꾸리고 저녁을 먹고 잠을 잤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니 며칠 전에 마늘 빵 굽다가 오븐에 디인 오른손 손가락이 아프지만 그 정도는 


절/대/로/


 오늘 경기를 빠질 사유가 되지 못함을 알기에 바로 경기장으로 향했습니다.


허억-

날이 미친듯이 덥습니다.

며칠동안 시원하더니 오늘은 아에 구워버릴 자세로 태양이 이글거립니다.


오늘따라 개인적으로 모든 상태가 좋지 못했습니다.

오른손 손가락 하나는 껍질이 찢어져서 슬슬 물이 흐르고 (오븐 사용시 주의하세염 흑흑)

가지고 간 장갑 2개 모두 구멍이 났고

심지어 바지 지퍼도 고장났다죠.

이런 어려운 분위기에서 78, 85, 86 선배들을 한 조로 모시고 경기를 겨우겨우 끝냈답니다.

제길 언제까지 막내 생활을 해야하는거야~


경기를 마치고 나서 샤워실에서 오랜동안 찬 물을 뒤집어 쓴 다음에야 정신이 들었습니다.

정신을 다듬고 붉은 학교티를 떨쳐입고 저녁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역시나 90년대 학번 녀석들은 정신없이 이리저리 뛰면서 식장을 만들고 있더군요. 

불쌍한 녀석들을 도와 몇몇가지 정리했더니 선배님들이 들이닥치십니다.


그 다음 행사야 뭐…

많은 양의 술을 마시고, 고래고래 소리지르고, 합창하면서 시간을 보냈다져.

이미 숫적으로 우리쪽 인간들이 5:1 정도로 넘처나는 그런 상황에서 뭐 경쟁이란 것이 의미가 없었죠.




그리고 아침에 일어났더니… 목이 아픕니다. (당연한 결과져 -_-;;;;)


점심으로 카레를 먹고 (요사이 카레가 그리 땡기네여), 수퍼로 쇼핑을 갔습니다.

원래 수퍼에서 생선은 잘 사지 않는데 오늘 따라 열라 싱싱한 게들이 눈에 띕니다.

고민을 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열라 뭐라뭐라 설명하면서 직접 살아있는 암게를 골라주셔서 결국 3마리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니 고무줄에 묵여있는 게 3마리가 나를 째려봅니다.

이게 원래 시장에서 생선이나 게를 사는 이유인데, 

시장에서 사면 바로 아줌마들이 구이, 졸임, 튀김, 찌개 등등의 용도로 삭삭 정리를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베트남 전통시장이 없어지기를 절대로 바라지 않는 1인입니다.


암튼 최대한 그 동안 생선가게 아줌마가 하시던 게 다듬기를 기억해내면서 가위를 들고 게손질에 나섰습니다.

일단 작은 다리의 끝을 자르기 시작하자 녀석들은 심하게 반항을 하면서 일부 다리들을 스스로 잘라냅니다. 

참고로 싱싱한 게들은 소리도 내고, 엄청 끈적한 거품도 만들고 해서 해체(?) 작업이 쉽지 않더군요.

으음- 약간 엽기적이었지만 잽싸게 가위를 이용해서 나름 훌륭하게 게들을 정리해서 (라고 자부해봅니다) 2마리는 냉동고에 넣고 한 마리를 끓여서 먹었습니다.


너무나 흥분한 나머지 (게들이 저를 공격을 했답니다) 게를 너무 일찍 끓여대는 바람에 아주 이른 저녁이 되었다져.

싱싱한 게를 쪄서 티비를 보면서 저녁을 먹었더니 급 디져트가 땡기네요.


이런 이유로

지난 주에 사다두고 아직 먹지 못해 상태가 슬슬 나빠져 가는 사과들을 슥슥 썰어서 대충 굽고, 

오트밀을 팍팍 넣어서 크러스트를 만들어 간만에 애플크럼블을 했습니다.


역시나 따뜻한 애플크럼블에 바닐라 아이스트림을 올려서 먹는 맛은….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알 수 없습니다.

다이어트는 ㅇㅇ에게나 주라져.


싱싱한 게가 2마리, 먹다 남은 애플 크럼블이 냉장고에 있으니 왠지 뿌듯한 한 주의 시작이 되는 그런 주말 저녁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