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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퇴근하고도 놀 수 없는 그런 삶

by mmgoon 2015. 11. 2.



이전에 잠깐 유학생활을 한 적이 있었죠.

그 때 공부하면서 마음 속 깊이 느낀 것은 바로


'그래, 난 공부를 할 인간은 아닌 것이야'


였습니다.

그렇게 깨끗하게(?) 학업에 대한 욕구를 포기하고 회사생활을 하다가 문득


'그렇다면 가르치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을 했지만 주변에 넘쳐나는 박사들을 보니 뭐, 석사인 저로서는 이 쪽도 내 길은 아닌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죠.

강의라고 해봐야 가끔 아래 직원들 불러 모아놓고는 슬라이드 픽픽 돌리면서


"알간? 이거 딸딸 외워야되" 라든지

"이거 모름 현장가서 아주 죽을것임이야"


등등의 협박으로 강의 목적을 이루곤 했죠.



그러던 어느날 그러니까 지난 주 정도였나, 암튼 미친듯이 바쁜 어느 날 전화를 받았습니다.


"네?"

"아아 나야 나야"

"아아아 안녕하세여"

"요사이 바쁘네그려. 그나저나 내가 전화한 이유는 말이야...."


이런 저런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주제는 명확했습니다.


-  다음 달부터 시추다

-  근데 우리 애들이 시추현장이고 뭐고 경험이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얘들이 현장가서 감독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  니가 와서 일주일만 가르쳐서 인간을 만들어다오

-  회사 사정이 어려우니 강사비는 줄 수 없다

-  물론 너는 휴가를 내고 와야한단다


너무 정신이 없던 날이어서 알았다고 하면서 전화를 급히 끊었답니다.



그리고 나서 정신을 차린 다음 대화 내용을 대충 살펴보니, 일반적으로 한 사람당 일주일에 4000불 정도 하는 강의 2-3개를 합쳐서 일주일에 가르치면서 

(너무나 한국 스타일이긴 한데, 애들이 이해를 할 수 있을까?), 

강사료는 없고, 개인 휴가 쓰고, 싸구려 여관에 머물면서, 간만에 한국 들어왔다고 술도 사는 그런 상황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 착하다져)

지난 주말 내내 미친듯이 그러니까 허리가 오래 앉아 있어서 아프고, 눈이 침침해지고, 머리가 멍- 해질 때까지 자료를 준비했습니다. 

아아- 사람이 단순해지면 안되는데 말이져.

얼추 살펴보니 800장 정도 슬라이드를 만들었는데, 대충 5일 강이라니까 내 빠른 말을 고려하염 1500-1600장 정도의 슬라이드가 필요하네요. 

흑흑흑- 언제 다 만들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게다가 과외로 하는 일이라서 (같은 회사 아냐?) 집으로 컴퓨터 들고가서 작업을 해야한답니다.흑흑흑흑-


이런 식으로 휴식없이 사람이 일하면 확- 돌아버린다는데, 

아아- 이걸 빨랑 끝내야 이번 주 말에 붕타우에 일 년간 기다리던 자선행사를 빙자한 먹고 마시고 골프치는 그런 대회엘 갈텐데 말이죠. 

네네, 이미 고가의 참가비를 냈으니 후진이나 포기를 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오늘 저녁도 꼼짝없이 교재 준비에 매어달릴 것 같습니다.

갑자기 선생님들이 위대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선생님도 만나고 할 겸 영국에나 여행갈까나... 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