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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어느 늙은 학생의 영어 시험기

by mmgoon 2015. 5. 3.

시험이라는 것은 그게 무엇이 되었든 간에 그리고 나이가 얼마가 되었든 간에 보기 싫은 일임에 틀립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일단은 지난 날 살아오면서 파악한 나를 누구보다 잘 아는 나이기에 시험 전 날인 어제까지 혹시나 시험교재를 보려는 어떠한 시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네, 뭐 평소에 하지 않던 공부를 해보겠다고 몇 차례 시도하다가 망치는 것 만큼 정신건강에 해로운 일은 없으니까 말이죠.


그리고 어제가 되었습니다.

전날 친구들과 한 잔을 했지만서도 뭐 느즈막히 일어났어도 뭐 시간은 널널했습니다.

일단은 점심을 차려 먹고, 커피를 한 잔 하고, 이메일을 확인하고 뭐랄까 더 이상 내일 시험을 위한 준비 이외에 할 일이 하나도 없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역시나 평생을 따라다닌 지병인 게으름은 '그래 한 시간만 있다 시작하자' 라는 절대적인 암시를 내게 주었고, 

어느덧 정신을 차리고 보니 해가 지고 잘 때가 되었더군요. (놀랍죠? 시간의 흐름이라는 것이 -_-;;;;)


'그래 내일 시험 장소에 약간 일찍가서 공부를 하자'


라는 마음을 먹고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비가 줄줄 오더군요.

마치 시험보기 싫어하는 40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는 듯이 우울한 비가 내리고 있었습니다.

비옷을 입고, 가방을 둘러메고 (간만에 책이 가방에 들어갔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시청역으로 갔습니다.

비가 내리는 길을 걸어서 시험 장소에 도착을 했더니 사람들이 시험을 기다리면서 모여있더군요.


진짜 별로 공부는 하고 싶지 않았지만 오오 분위기가 장난이 아니었습니다.

뭐랄까 사람들이 눈에서 불을 뿜으면서 책들을 미친듯이 넘기고 있더군요.

이런 분위기에 편승하여 태어나서 처음으로 OPIc 교재를 봤습니다.... 네네.... 이런 벼락치기가 도움이 될리 없지만 뭐랄까 분위기랄까 조용한 일요일 아침에 텅 빈 건물에서 뭔가 절박한 얼굴로 미친듯이 책을 파고 있는 사람들에 대한 예의랄까... 암튼 조용히 책을 읽었습니다. (참고로 저 착한편이라죠. 부끄-)


시험 10분전이 되자 감독관 언뉘가 수험생들을 부르더군요.

뭐랄까 미리미리 절차를 제대로 확인하지 않아서 시키는대로 졸졸 따라야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훗- 이거 뭐 처음 하는 것도 아니고'


하는 식으로 척척 해내는 것과 완전 상반되게 버버벅 거렸습니다. 참고로 제가 본 이전 시험은 2001년이랍니다.


뭐 시험은...

이전에 봤던 시험들에 비해 뭐랄까 더 심각한 분위기의 것이었습니다.

주로 이런저런 것들을 자꾸 반복적으로 물어보더군요. 그리고 주로 내가 떠드는 그런 분위기(?)였습니다.


이렇세 40분동안 수다를 떠는 시험을 끝내고 다시 비가 오는 거리로 나왔습니다.

배가 고프더군요.

그러니까 아침도 못 먹고 영어로 수다를 떨어댄 당연한 결과였죠.




정동교회쪽으로 걸어서 시청쪽으로 나오자 삼계탕집이 눈에 띕니다.

왠치 춥고 우울했는데, 시험도 끝나고, 그 동안 제대로 된 삼계탕을 그리다가 눈 앞에 삼계탕집이 나오자 바로 들어갔습니다.

주인 아줌마가 나의 배고픔을 눈치채셨는지 바로 안쪽 자리를 내줍니다.





이윽고 삼계탕이 나오고, 인삼주 한 잔으로 시작해서 살코기와 밥까지 삭삭 먹어줬습니다.

갑자기 세상이 맑아지더군요.

그래서 아주 행복해졌습니다.


그러니까 이 포스팅은 시험 보고 삼계탕을 먹었더니 좋더라.... 가 주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