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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하루에 천 장의 사진에 찍힌 이유

by mmgoon 2017. 2. 27.




평소 외국을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라 하시는 울 회사 님하가 지난 목-금 이틀 동안 베트남 방문을 했습니다.

예상대로 


"이 넘의 회사는 이래서 안돼"


라는 주제를 이틀에 걸쳐서 설파하시는 것을 받아주느라 나름 힘이들었습니다.


"야, 너네 회사자나 -_-*" 


라고 말하고 싶은 것을 겨우 참았다져.

도데체 저 분은 언제가 되어야 이 회사가 자기 회사라는 단순한 사실을 이해하게 될까요.




암튼 다음 여행지인 싱가폴로 님하를 보내고 자리에 돌아와서 앉자 한숨이 나오면서 피로가 몰려옵니다. 

이렇게 잠시 멍-때리고 있는데 전화가 옵니다.


"아아아- 미스킴. 오늘 행사에 꼭 오실거져?"

"글세. 넘 피곤해서 취소하면 안될까나?"

"노노노노. 절/대/로/ 안되여. 울 사장님께도 이미 보고 했구여, 정부 관계자들도 오시구여, 암튼암튼 소장님 모시고 꼭 오셔야해여"


녀석이 거의 죽어가는 목소리로 부탁을 했고, 

이미 간다고 말을 해놨고, 

게다가 뭐랄까 인간관계를 잘 닦아야 할 필요가 있어서 (베트남 사업의 기본이져) 


퇴근하고 술이나 마시고 싶은 마음을 이성으로 누르고 소장님을 모시고 2시간 차를 달려 붕타우와 호짬 사이에 있는 오늘의 행사장으로 향했습니다.

도데체 녀석들은 왜 도데체 무슨 마음으로 이런 엉뚱한 장소에서 기념식을 하는 것일까요.

장소에 도착을 하자


"미스터킴 이쪽이에여"

"아아 안녕"

"자자자 여기 우리 사장님과 포즈 취해주시구여. 야야- 사진사 불러와!!"


그러니까 나와 소장님 그리고 그쪽 사장이 양편에 아오자이를 떨쳐입은 언니들을 두고 포즈를 잡자 사진사 녀석이 미친듯이 플래쉬를 터트리면서 사진을 찍더군요. 

그렇습니다. 녀석들 나중에 홍보용으로 쓰기위해 사진사들과 비디오 촬영팀에 이번 기념식 예산 대부분을 쏟아넣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런 식으로 도착하는 모든 인간들에게 미친듯이 플래쉬와 조명 세례를 퍼붓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색하게 사진을 찍고 행사장에 들어갔습니다.


"아아아아- 미스터킴 이쪽에 앉으세여"

"야, 그 자리는 귀빈석이자나 난 이쪽에 앉아서 음식이나 먹을 예정임"

"무슨 소리세여. 미스터킴이 귀/빈/이라구여"


그러니까 뭐랄까 나름대로 세계 유수의 석유회사들과 서비스 컴퍼니들을 초대해서 거창하게 행사를 진행하려고 하였으나,

워낙 대단한 곳에서 (도데체!!!) 이 일을 치루다 보니 거의 참석한 인간들이 없었던 이유로 갑자기 나의 레벨이 급상승을 한 것이었죠.


녀석이 가리키는 자리에 가보니 얼굴을 아는 국영석유사 이사와 정부관계자들과 녀석네 회사 사장 등등이 앉아있더군여.

인사를 나누고 수다를 떨고있자 기념식이 시작됩니다.


기념식은 예의 베트남 공산당 식으로 진행이 되었습니다.

보통은 영어로도 설명을 해주는데 몇 명 오지 않은 외국인들에 대한 배려따위는 없이 베트남어로만 식이 진행됩니다.

덕분에 멍때리고 있는데


"오늘 오신 귀빈을 소개합니다"

"자 열렬히 환영해주십시오. 공산당 ㅇㅇ지역 위원장이신 xxx"


라고 하자 옆자리에 있는 아저씨가 벌떡 일어나서 환호에 답을 하십니다.

참고로 베트남 스타일로 환호에 답하는 방법은 두손을 마주 쥐고 위로 올리는 것이죠.

우리가 하려면 왠지 부끄러운 동작이지만 경험이 많은 아저씨는 자연스럽게 답을 하시고 앉더군요.


이윽고 몇 차례 귀빈 소개가 이어지고


"그리고, 이 자리를 빛내기위해서 ㅇㅇ사에서 오신..."


엥? 울 회사 이름이 나오고 내 이름이 불리는 겁니다.

아 진정 이럴 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분위기상 일어나서 손을 드니 사방에서 미친듯이 플랫쉬가 작렬하고 거대한 비디오 카메라와 조명이 앞쪽에서 빛납니다.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자 내 얼굴을 알아본 수 많은 인간들이 와서 건배를 해대더군요.


부끄러움을 와인으로 승화시키고 있는데 자사 발전에 도움을 주신 분들에게 감사패 전달식이 진행됩니다.

울 회사 대표로 소장님을 내보내고 와인을 한 모금 하는데


"미스터 킴도 나오셔야져"

"왜? 소장님 나가셨다고"

"아아, 미스터 킴 것도 준비되어 있어여"


결국 무대로 끌려나가서 저쪽 회사 사장에게 거대한 감사패를 받고 악수를 하고 꽃다발도 전달 받았습니다.

그 동안 다시 파파파박 하면서 플래쉬들이 미친듯이 터집니다.

다시 감사패를 받은 사람들과 사장간에 샴페인 건배까지 하고 자리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저녁을 얻어먹고, 차를 타고 호텔로 가면서 눈을 감자 아직도 플래쉬의 여운이 망막에 남아있습니다.

아마도....

인생에서 가장 많은 사진이 찍힌 날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과연 녀석들은 오늘 찍은 사진들 중에 일부라도 제게 보내줄까요. 

뭐랄까 초상권을 생각해보는 그런 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