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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베트남 올 해 마지막 휴일이었습니다

by mmgoon 2015. 9. 3.

(어제 저녁에 쓴 글입니다)



휴일 계획을 세워보자


내일은 그러니까 9월2일로 베트남 건국기념일이다.

휴일이라고는 며칠 없는 베트남에 올 해 마지막으로 노는 그런 날이다.

호치민 주석이 하노이 바덴광장에서 연설이 어쩌고 저쩌고 하지만 (게다가 호치민을 존경하기도 하지만) 나는 한국인이다. 흠- 별 관계 없다는 얘기.


이런 이유로 내일은 단순한 휴일이라고 하자면, 뭔가 계획을 세워야한다는 마음이 아까 퇴근 이후부터 계속 들고 있다.

무언가 계획을 세우지 않으면 대충 내일 늦잠자고 일어나 라면으로 아점 먹고, 티비 좀 보면서 어디 나갈까 머리를 돌리지만 별 생각이 나지 않고, 뉘엇뉘넛 지는 해를 바라보면서 피자 시켜먹고 잠자리에 들면서 ‘아, 뭔가 했었어야 했는데’ 라는 생각을 할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금 전부터 휴일 계획을 머리 속으로 세우고 있다.


라고 글을 써놓고 왠일인지 몰려오는 졸음에 이기지 못하고 계획은 전혀 세우지 못한채로 잠이들었죠.



역시나 눈을 떠보니 늦은 아침이었습니다.

밀려오는 후회를 깨끗하게 무시하고 커피를 한 잔 하고 빨래를 돌리고 주섬주섬 포스터 몇개와 그림 몇 개를 챙겨서 거리로 나섰습니다.


베트남 개천절은 맞이한 호치민시는 한산했습니다.

어지 티비 보면서 문득 떠오른 대구지리를 점심으로 먹어주고 (네네 휴일이니 단가가 좀 있는 녀석을 먹어줬죠) 슥슥 걸어서 동커이 거리에 있는 표구사로 향했습니다.




지난 번에 포스터 몇개를 표구 맡겼더니 분명히 다크 브라운으로 프레임 만든다고 해놓고 몽땅 블랙으로 해놓았기 때문에 다른 집을 알아보려는 마음을 먹고 골목을 접어들자


“오오, 미스터킴 뭐 또 맡기게”


하면서 그 가게 아줌마가 말을 걸어왔고 다른 가게 아줌마들도 모두


‘흥- 저 아줌마네 손님이네’


하는 얼굴이었기 때문에 왠지 밀리는 분위기로 그 가게로 향했습니다. 

뭐 대충 베트남 마켓은 이런식으로 흐르는 것 같아요. 흑흑흑-


“자자 아줌마 이 녀석은 꼭 이런식으로 해주셔야 해염”

“아아- 걱정말라고”

“(지난 번에도 맘대로 했자나여!!) 프레임은 가늘게 말이져”

“그나저나 이 그림은 도데체 어디서 산 거여?”

“아아 그게 이 녀석은 프라하에서 샀고, 이 녀석은 이스탄불….”

“외국에선 그리 그림을 사대면서 왜 우리집에서는 하나도 안사?”

“아아- 그게 뭐랄까….”

“여기 영수증. 다음 주 수요일 이후에 와여”

“넹”




어짜피 집에 가봐야 할 일도 없기에 어슬렁 거리면서 거리를 다니다가 새로운 빵집 하나를 발견했습니다.





‘으음- 여기에도 빵집이 있었네’


하는 마음으로 봤는데 무려 Since 1948 이라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죠.

(참고로 Brodard라는 집이었고 주소는 24 Dong Du, District 1입니다. 아마도 영어도 통할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게는 끝까지 베트남어로 하시더군요)

냉큼 안으로 들어가서 봤더니 뭐랄까 약간 데코레이션이 올드하지만 맛은 있어보이는 그런 집이었습니다.


‘저 넘 뭐지?’


하는 언니들의 눈총을 받으면서 군침을 꿀꺽 삼키면서 사과빵, 티라미스, 녹차티라미스, 롤케익을 구입했습니다.


한 손에 케이크 봉투를 들고 어슬렁거리면서 거리를 걷고 있는데, 문득 지난주에 구멍나버린 골프 장갑이 생각나더군요. 

그래서 인근에 있는 저렴하지만 도무지 찾기 힘든 골프가게엘 갔습니다.


“어서오세염 (저 넘 여기를 찾다니 대단한걸?)”

“골프장갑은 어디에?”

“이쪽이져”

“아니 지난번에 있었던 저렴한 녀석들은 없나여?”

“아아- 그거 다 나갔어여”

“아아아- 이런”


장갑을 고르고 있는데 옆에 ‘초특가 세일’ 이라는 글이 보였습니다.


“이게 뭔가염?”

“네네 손님. 이 녀석들은 말이져 눈물의 75% 세일의 현장인 것이죠”

“그렇군요. 그럼 이 녀석 가격이…”

“네네 흑흑 특히나 그 녀석은 특가 세일이라서 이 정도”

“으음. 그렇군요. 그렇다면 회원 10% 깎아주는 카드가 있는데”

“응응 아니져. 이 녀석은 세일 상품이라 제외랍니다 (니가 양심이 있니?)”

“그렇군요. 이 녀석과 장갑을 주시져”

“넹”


이런식으로 우연하게 득템을 했답니다.

케이크와 골프채를 양손에 들고 집으로 터덜거리면서 돌아오는데 문득 이번 달에 한국 다녀온 관계로 재정상황이 최악이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사가지고 온 티라미스를 한 입 가득 물자 우울한 마음 (이라고 적고 현실이라 말합니다)이 삭- 달아납니다.


이렇게 베트남 올 해 마지막 휴일이 지나가에요.

저녁은 뭐 해먹을까 고민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