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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유코이야기

05 卯猫 2

by mmgoon 2005. 6. 1.




유코가 떠난 다음 날은 하루 종일 강풍이 불어댔다. 

내가 아는 한 가장 큰 나무도 흔들거렸고, 길거리에는 부러진 나뭇가지, 간판 등이 어수선하게 나뒹굴고 있었다. 


이런 날은 꼼짝 안하는게 좋지만 토끼녀석들이 싹 쓸어가는 관계로 집에 먹을 것이 없어서 약간 바람이 약해진 틈을 타서 슈퍼엘 갔다.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보니까 검은 구름들이 몰려오고 있어서 나는 집으로 향하는 걸음을 재촉했다. 

이런 날은 그저 빨리 돌아가서 맥주와 함께 애니메이션이나 몇편 보는게 최고인 것이다. 


동네 길로 접어들었을 무렵 나무가지 위에 있는 고양이를 한 마리 발견했다. 

녀석은 나무가지 위에서 다른 나무 가지로 건너뛰려고 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녀석이 뛰려고 하는 바로 그 순간 나무가지가 우지직하면서 부러졌고, 녀석은 그대로 아래쪽 물웅덩이에 빠져버렸다. 

내가 놀라서 다가가자 녀석은 (항상 늘 언제나 고양이들이 그렇듯이) 마치 처음부터 물웅덩이로 다이빙을 시도했다는 식의 얼굴을 하고 나를 바라보고는 잰걸음으로 사라졌다. 

불쌍한 그 녀석은 짐짓 괜찮은 듯 행동했지만 엉덩이쪽이 아픈듯 연실 씰룩거리며 걸어야 했다. 


집에 거의 다다르자 옆집 세파트의 짖는 소리가 크게 들렸다. 

슬쩍 들여다가 보니까 세파트 2마리가 한 고양이를 구석에 몰아넣고 열라 짖어대고 있는 것이다. 

그 불쌍한 고양이 녀석은 벌써 물린듯이 엉덩이쪽에 털도 한웅큼 빠져있었고 초죽음이 되어있었다. 


겨우 개들을 진정시키고 고양이를 꺼내주자 녀석은 꽁지가 빠져라 도망을 갔다. 


'오늘은 이상하게 불쌍한 고양이를 많이 보는군' 


하고 생각을 했지만 뭐 종족마다 불행한 날이라는게 있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도착을 해서 현관문을 열려고 하는데 뭔가 지붕에서 버둥대고 있었다. 

올려다 보니 굴뚝 틈새에 낀 고양이 였다. 

비가 곧 올 것 같았지만 하는 수 없이 사다리를 가져다가 지붕에 올라가서 녀석을 꺼내서 내려왔다. 

꽤 오랬동안 껴있었는지 녀석이 축 늘어져 버렸기 때문에 하는 수 없이 우유라도 먹여 보내야 겠다는 생각으로 집으로 데리고 들어왔다. 


따뜻하게 온도를 높히고 우유를 한 대접 주니까 녀석은 허겁지겁 먹더니 이내 쿨쿨거리고 잠이 들었다. 


자는게 불쌍해 보여서 이불이라도 덮어주려고 다가갔더니 그러니까 엉덩이쪽에 지퍼같은게 삐져나온 것을 볼 수 있었다. 

무심결에 그 지퍼에 손을 대자 녀석은 흠칫 놀라면서 깨어나서는 잽싸게 엉덩이쪽을 가렸다. 


그렇지만 고양이 발이라는게 뭘 가릴 수 있는 물건이 아니어서 나는 그 발 사이로 분명히 지퍼가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유코?" 

"무슨 말씀을!!! 나는 유코가 아니라 고양이 3호야!!" 

"고양이 3호? 그건 새로운 암호인가? 암튼 고양이는 아니지?" 

"아냐아냐아냐!!! 나는 고양이 3호가 맞단 말이야!!" 

"이거봐. 일단 고양이는 말을 못해. 그리고 이름도 1호 2호 3호 이런 식으로 짓지도 않고, 무엇보다 고양이 가죽에 지퍼가 붙어있다는 말은 못들어봤어" 

"이 지퍼는.... 그러니까..... 으음..... 일종의 불량품 같은거야" 

"그것도 정보부에서 만든거야?" 

"아냐 이건 특수공작부에서 만든거야" 

"으음, 토끼는 정보부에서 관리하고 그리고 고양이 옷은 특수공작부에서 만든다...." 

"아아, 바보바보 그게 아니야!" 

"그럼?" 

"겨울이 되면 토끼들은 다 잠을 자야한다구. 그렇지만 세상은 계속돌아가지. 그동안 이 부분을 무신경하게 놔뒀기 때문에 정보부가 만든 가이드북에 큰 헛점이 생겼던거야" 

"그렇지. 예를 들면 크리스마스 같은 것" 

"크리스마스? 으음 새로운 정보야" 


녀석은 품안에서 조그만 노트같은 것을 꺼내서 '크리스마스'라고 적었다. 


"그래서?" 

"그래서 정보부산하로 특수공작부를 두어서 잠자는 겨울동안의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어" 

"언제부터?" 

"솔직히 말하면 올해가 첫해야...." 

"아, 과연. 크리스마스라 같은 중요한 것도 모르는 것을 보면.... 그런데 왜 고양이지?" 

"고양이는 겨울잠을 자지 않으니까" 

"하지만 고양이들은 추위를 싫어해서 겨울동안은 거의 나다니지 않는걸. 그다지 좋은 선택이라 할 수 없지" 

"그래? 아아 우리 정보부 사람들은 알아줘야해....." 


나도 역시 정보부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다. 


"그런데 왜 유코가 뽑힌거지?" 

"이봐! 나는 유코가 아냐 고양이 3호라구!!" 

"알았어 이제부턴 고양이 3호라구 부를께. 암튼 너는 세살밖에 않되었잖아?" 

"하지만 너네 집에 얹혀 살면서 사람에 대한 많은 것들을 배웠거든. 솔직히 풀숲에 앉아서 창문을 통해 보는 것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거든" 

"아아 그런거군. 그런데 아까는 왜 지붕에 매달려 있었던거지?" 


이말을 하자 갑자기 유코 아니 고양이 3호는 둥글둥글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이거봐 괜찮아?" 


조금 지난 후 내가 물었다. 


"으응. 그냥 내가 바보같다는 생각이 들었어" 

"왜?" 

"원래 계획은 낙하산으로 지정된 장소에 낙하해서 고양이로 신분을 숨기고 첩보활동을 하려고 했어." 

"이렇게 바람이 심한 날 낙하산으로?" 

"우린 특수부대야! 이정도의 바람쯤은.... 1호도 안전하게 나무위에 내렸고, 2호도 멋지게 어떤집 뒷마당에 낙하를 했지. 그런데 바보같이 나만...." 


녀석이 너무 시무룩해 하길래 그냥 놔두고 유코가 평소에 좋아하는 이태리식 샐러드와 해물볶음밥을 해서 와인과 함께 식사를 나누었다. 

이윽고 약간 마음이 풀어졌는지 유코는 저번에 다 보지 못한 잡지책을 뒤적이고, 인터넷에서 좋아하는 남자가수 사진을 보고 있었다. 


"그런데 저기.... 내가 말할게 하나 있는데" 

"뭔데?" 유코가 물었다. 

"그 고양이 1호하고 2호하고 혹시 이렇게 저렇게 생기지 않았어?" 

"응 맞아" 

"그 1호하고 2호 이야기인데 말이야...." 


나는 그들의 불행한 착륙 및 그 뒤에 일어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리고는 유코는 아주 잘한 편이라고 칭찬도 해주었다. 

게다가 바깥쪽에 심한 바람과 비를 가리키면서 1호와 2호가 걱정된다고도 말했다. 


"저기... 저도 솔직히 고백할께요." 


내가 이야기를 마치자 유코가 나즈막히 말을 했다. 


"저는 고양이 3호가 아니구요, 아니 고양이 3호도 맞기는 한데, 유코가 아닌게 아니에요" 

"어어 으음" 


나는 분위가상 이제야 알겠다는 식으로 대답을 해줬다. 


역시나 세살짜리한테 첩보원 생활이란 조금 어려운 것임에 틀림이 없다. 

이런 소동의 결과로 결국 늦게야 잠을 잔 나는 조금 늦은 아침을 맞이했다. 

그 다음 날은 바람이 모든 것을 휩쓸고 지나간 다음날은 아주 맑은 하늘에 햇빛이 아름다웠다. 


"이거보라구요 이거이거" 


한쪽 구석에서 깡총거리고 있던 유코가 이메일을 프린트한 것을 내밀었다. 


그것은 정보부에서 보내온 것이었는데, 내용인즉슨 1호와 2호는 적군의 공격으로 부상을 입어 급거 후퇴를 했으니까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녀석들은 이렇게 말을 해야했을 것이다) 

유일하게 성공한 3호는 그 자리에서 임무를 계속 수행해라와 지적해준 고양이 옷의 결점은 다음 버젼부터 확실히 고치겠다. 

그리고 부서진 고양이 옷은 택배편에 본부로 보내라 였다. 


"그럼 고양이 옷이 수리되는 그 동안은?" 

"그 동안은 그냥 토끼옷을 입고 지낼거어요!!!! 그런데 오늘 아침은?" 

"아아 오늘 아침은 조금 늦었으니까 점심을 겸해서 국수 어때?" 


고양이 3호와의 분주한 아침이 시작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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