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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호흡짧은글

그런 일은 없었다

by mmgoon 2005. 11. 4.




손이 아직까지 땀에 젖어 있다.

아무리 술이 취했었다고 하지만 이건 말도 안돼는 치명적인 실수다.

아니 뭐랄까 밖으로 드러내서는 안돼는 내 안에 치명적이고 슬픈 상처가 만천하에 공개된 그런 느낌이다.

도데체 무슨 문제가 있었던 것인가.

어제의 음주는 뭐 그리 대단한 것도 아니었고, 스트레스가 평소보다 많이 쌓인 것도 아니었고, 평소보다 아주 많이 마신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집으로 돌아와서 마치 그동안 끝까지 쌓였던 돌무더기 위에 작은 돌 하나를 얹어 놓는 순간 

모든 것이 무너지는 그런 상황처럼 미친듯이 전화를 눌러댄 것이다.

떠나간 애인에게 전화를 걸어서 완전히 뒤집어 버렸고,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서 말해서는 안돼는 비밀들을 다 까밝려서 연결되었던 아주 작은 끈마져 끊어버렸고,

싸구려 술집여자애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랑한다 결혼하자 해버렸고,

상사에게 전화를 걸어서 평소 불만을 욕을 적절하게 혹은 심하게 섞어서 소리를 질러버렸고,

돈빌려간 친구녀석에게 절교를 선언했고,

주치의에게 전화를 걸어서 당신을 돌팔이야 라고 했다.


손바닥 보다 작은 휴대폰 하나를 이용해서 그러니까 일부는 진실과 일부는 가식으로 쌓아올린 내 주변의 인간관계를 모두 다 쓸어내려버린 것이다.


그리고는 바로 널부러져서 잠이 들었고, 쓰린 속과 아픈 머리를 가지고 잠이 깨자 이 모든 사실이 한꺼번에 기억이 난 것이다.

아직도 머리는 웅웅거리지만 아아 다 기억이 난다.


멍하니 30분을 앉아있다가 그 망할 놈의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Dialed Number를 떨리는 손가락으로 몇번인간 실패하고 메뉴를 선택한다.


없다


분명히 내가 걸어댔던 번호들이 (혹은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통화기록이) 없다.

그러니까 친구녀석을 부르기 위해 통화한 것이 마직막으로 되었다.


두가지 가능성

이 모든 일들이 단지 내 꿈에서 일어났고 술기운에 아직도 그게 실제로 일어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아니면, 무의식중에 그리고 죄의식으로 나도 모르게 통화기록을 다 지우고 잠이 들었다.


이미 날은 밝아서 방안에 햇볓이 가득하다.

저 문을 열고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가?

언제나 진실을 밝히는 것은 그것도 실컷 술을 먹고 호르몬들이 제 자리를 찾기 전에 진실을 밝히는 것은 참으로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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