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끄적거림들/호흡짧은글

토끼를 만나다

by mmgoon 2005. 6. 1.




어느날 자고 있는데 토끼가 한 마리 내게 다가왔다.


"이거봐 일어날 시간이라구"


전날 마신 기네스덕분에 전혀 일어날 기분은 아니었지만 토끼도 토끼 나름대로의 삶이 있고 

녀석이 이런 아침에 이곳에까지 온 것은 정성이니까 하는 생각으로 눈을 떴다.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시계를 봤더니 5시30분.


"이게 뭐야? 이런시간에?"


당연히 다섯시삼십분은 좋은 소리가 나오는 시간이 아니다


"아니? 화난거야?"

"아니 화가난 것은 아니지만... 아냐, 화가 났어. 도데체 지금이 몇시인지 알아?"


토끼에게 있어서 시간을 되묻는다는 것은 일종에 수치였다.

그 왜 앨리스 얘기에서도 토끼는 시간에 목숨을 걸고 다니지 않는가.

아무튼, 녀석은 예의 발끈했겠지만 내가 첫 손님이었고 (나중에 녀석에게 들었다) 

일을 시작한지도 얼마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시 자기 시계로 다시 확인을 했다.


"그거봐 지금은 다섯시삼십분이라고"

"이게 이런... 그렇다면... 내 집의 시계가 잘못되었다는.... 아니 그건 우리집 중앙시계인데... 

그렇다면 건전지가 다되었을 수도...."

"이거봐~"


나는 녀석이 너무 당황을 하자 약간 미안했다.

모든 생물들은 실수란 것을 하기 마련이다.

더군다나 그런 큰 귀를 가지 토끼야 말할 것도 없고....


"이거봐, 내 화는 이제 다 풀렸어. 그리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는거야"

"하지만 나는 토끼인걸"

"그래 알아 그것도 토끼중에 최고 엘리트인 잠깨우는 토끼지"

"아니 뭐 그렇게까지 말하면..."


녀석은 약간 부끄러우면서도 우쭐해 졌다.

나는 적당히 올려주고 조용히 되돌려 보내려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아, 하지만 뭐 이렇게 된 거. 일어나줬으면해"

"무슨 말이야. 니가 실수한게 명백하잖아!!"

"아, 물론 그건 그렇게 말할수 있지만 개인적인 차원으로야.... 하지만 이것도 일이다 보니까... 

물론 나중에 이 문제에 대해.... 이것도 절차가..."



아뿔사 녀석은 영국산 토끼였던 것이다.

내가 짜증이 나서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던 녀석은 내가 오른발로 크게 발길질 하기 

바로 0.5초 전에 잠깨는 가루가 든 주머니를 얼굴에 퍼척 던져놓고 줄행랑을 쳤다.


녀석과의 소란을 뒤로하고라도 무려 5시50분에 완전히 깨어버린 나는 하는 수 없이 산책을 나갔다.

산책도중에 풀밭에서 늙은 토끼 한마리를 만났다.


"어이, 자제 후임자를 만났어" 내가 말을 걸자

"요새 녀석들은 도무지..." 


하면서 의례 늙은 토끼로서 할 말을 시작하는 것이었다.


"아니 뭐 그렇다고 그렇게 화난것은 아니고..."


이렇게 말을 했지만 나는 녀석의 엉덩이쪽으로 눈치채지 않게 다가가서 오른발로 베컴이 프리킥 차듯이 녀석의 하얀 꼬리와 엉덩이를 갈겨댔다.


녀석이 혼비백산해서 도망쳤고 나는 싱그러운 아침을 맞이했다.

분명히 그 늙은 녀석은 아직도 현역임이 분명했고 나는 그 다음날 작은 케익과 함께 사과의 카드를 받을 수 있었다.



오늘의 교훈,

어린 토끼가 잘못하면 늙은 토끼의 엉덩이를 차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