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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호흡짧은글

This side toward enemy

by mmgoon 2005. 12. 22.




"이게 그러니까 일할때 얼굴인 셈이지"

"으음. 내가 보기에는 별로 차이가 없는데"

"있다구"

"이런 얼굴을 하고 있으면 뭔가 성취도 같은게 다른거야?"

"당연하지. 이렇게 하고 뭔가를 말하면 상대방이 그동안 몰랐던 취약점을 발견해내고 또 그걸 위해 반드시 컨설팅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구"

"호오"


늦은 오후에 문득 지나가다가 전화를 했다는 k 를 만나서 간단한 식사를 했다. 

당연히 k가 전화를 할거라는 것을 모른 나는 이미 점심을 마친 이후였지만 k 녀석이 이런식으로 정확하게 


'점심을 먹고프니 만나자' 


라는 식으로 전화를 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간단한 두 번째 점심을 먹어야 했다.


지금은 모모 잘나가는 컨설팅 회사에서 일하는 k를 처음 만난 것은 우리 동네 한 모퉁이에서 열린 


'길을 건너다 차에 치인 야생동물들의 치료와 대책 마련을 위한 바자회'


에서 뭐 싸구려 스탠드나 하나 건져볼까 하는 마음으로 어슬렁거리다가 우연히 얘기를 하게 된 것이 계기였다.


k는 그 때 천으로 된 컵받침을 고르고 있었는데, 그것은 내가 보던 스탠드 옆에 놓여 있었다.

처음에는 길을 건너다가 납작해진 토끼가 불쌍하다는 식으로 얘기가 시작됐지만 약 15분이 지난 후에 나는 k가 주변과는 잘 조화되지 않는 그런 사람이란 것을 알 수가 있었다.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보죠?"

"아니 뭐 그냥 뭐랄까 당신하고 주변하고 아니 많이는 아니고 한 이 정도 섞이지 않는 부분이 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흐음 그런가요? 이거 봐요. 지금 밀크티가 마시고 싶거든요. 당신 내게 밀크티를 한 잔 타주면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죠"


섬머타임이 막 끝이난 시월이었고 나도 이제는 집에 가서 따뜻한 밀크티 한 잔으로 몸을 녹이고 싶다는 생각을 하던 중이었고, 

무엇보다도 내가 발견한 그 작은 세상과의 불일치 때문에 k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기 때문에 나는 k와 같이 걸어서 기찻길 바로 옆에 있는 내 아파트로 갔다.


케틀에 물이 끓고 내가 과자와 차를 내는 동안 k는 책장에 놓아둔 (아마도 저번 스페인 필드트립에서 줏어온) 화석들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이거 일종에 시체죠?"


내가 티를 건네주자 k가 말을 했다.


"아니, 그건 시체는 아니지. 예전에 있었던 시체에 그 모양대로 돌들이 치환해서 들어간 그런 거니까 뭐랄까 시체라기 보다는 예전에 있던 시체의 잔상 같은 거지"

"흐음. 시체가 남긴 꿈 같은 걸 주어 온 거야?"

"뭐 그런 셈이지"


솔직히 그녀가 들려주겠다는 '재미난 얘기'가 궁금했지만 차를 홀짝이면서 화석에 대해서 이거저거 물어보는 그녀에게 


"자자 화석 따위는 집어 치고 그 재미난 얘기를 들려줘"


라고 말을 하기에는 k의 눈이 너무나 반짝거렸다.


"화석을 좋아하네" 내가 말했다.


"아니 난 그냥 시체더미 속에 내가 있는 줄 만 알았었는데 그래서 그런 느낌으로 안 좋게 상황이 전개되는 줄 알았었는데 

당신한테 얘기를 듣고 나니까 실제로는 전혀 다르게 예전에 꾸었던 꿈들 사이를 거니는 그런 거였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으음 그래도 당신이 화석들 사이에 있는 것은 바뀐 게 아니야"

"적어도 내/겐/ 바뀐 거야"


이렇게 말하는 순간 k의 모습이 살짝 이세상과 멀어졌다가 다시 돌아오는 느낌이 들었다.


"방금"

"아아 당신은 참 특이하군. 내게서 뭔가 다른 것을 본거야?"

"아니 뭐랄까 아까 봤던 그런 느낌이야. 이번에 조금 더 강하게 느낀거라구"

"이거봐 내가 하려던 그 재미있는 얘기를 듣고 싶어?"

"응"

"좋아 그렇다면 지금 나랑 같이 자"

"음?"

"그러니까 나와 섹스를 나누자는 거야"


내가 멍하고 있자 k는 나를 끌고는 내 침대로 가서 자기 맘대로 옷을 벗어 놓고는 능숙하게 내 몸을 사용해서 섹스를 했다. 

그리고는 뭔가 책임 있는 말을 원하는 나를 두고 쿨쿨 잠에 빠져 버렸다.


이제는 깊은 잠에 빠진 듯이 규칙적으로 움직이는 k 를 바라봤다. 

지금의 모습은 뭔가 아까 보여줬던 뭔가 자꾸 불안한 모습이라기 보다는 세상이라는 곳에 완전히 융화되어진 그런 상대적으로 안정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한 세시간 정도 정말로 쿨쿨 거리고 잠을 잔 k 녀석은 일어나서 내가 만들고 있던 스파게티를 같이 나눠 먹고는 집으로 돌아 갔다. 


"그런데..."


돌아가는 문 앞에서 k가 말했다.


"나 솔직히 약 없이 이렇게 깊게 잔 것은 정말로 오래간만이야"

"그래? 잘되었네"


그 이후로 k와는 가끔 수퍼에서 부딧히거나 산책을 하다 만나거나 했고 가끔은 차를 마셨고 가끔은 펍에서 맥주를 같이 했고 아주 가끔은 우리집에서 섹스를 했다.

그리고 약 1년즈음 지났을적에 문득 녀석이 변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이것봐. 당신 많이 성숙했어"

"당신도 그걸 느껴? 어떻게?"

"뭐랄까.... 그래 예전에 그런 불일치들 그때는 뭔가 통제 불가능한 불수의근 같은 느낌이 들었다면 

이제는 그런 것들을 당신이 마치 왼쪽 새끼손가락을 사용하듯이 가볍게 이용하는 그런 느낌이 들어"


그때 기차가 우리집 근처를 지나갔고 온 집안은 큰 소리에 작은 소리가 묻혀버렸다. 그런 와중에 k녀석은 무언가 내게 신나서 얘기를 했다.


"......다고"

"엉?"

"이게 바로 그 재/미/난/얘/기/ 그리고 그 뒤의 얘기는 다음 번에 만나면 해줄께"

"다음 번?"

"아, 나 취직했어. 물론 졸업도 했고. 그래서 다음달에 홍콩으로 갈 예정이야"

"아아 그렇군. 홍콩이라. 한번쯤 놀러가 볼께"

"물론 와야지"


녀석이 눈을 반짝이면서 취직얘기를 해대자 왠지 그 재미난 얘기는 이제 내게 말을 해버려서 더 이상 물을 수 없는 존재가 아닌 것처럼 느껴져 버렸기 때문에 

결국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문 앞에까지 늘 그랬던 것처럼 k 를 바려다 줬다.


그 뒤로 학교에서 k는 사라졌고, 가끔은 녀석과 같이 가던 펍이나 만나던 수퍼에서 생각이 났지만 그게 k와의 관계의 끝이었다. 

녀석이 떠난 다음 아주 형편없는 점수를 유지했던 학생인 k가 올해는 엄청나게 열심히 해서 모모 투자회사에 들어간 거라고 

혹은 뭔가 검은 음모가 있다는 얘기를 주변 사람들로부터 들었지만 

어찌되었든 k녀석이 말해주겠다는 그 '재미있는 얘기의 다음 번'을 당분간 혹은 영원히 들을 수 없게 되었다는 것만 빼고는 늘 그렇듯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다음 학기는 논문으로 너무 바빠서 오직 '제발 빨리 끝만 나라' 하는 마음으로 살았다. 

결국 무사히 학위를 받고 귀국을 했고 얼마간 있다가 베트남 지사로 발령이 났다.


더운 나라 역동이 있는 동남아시아에 살면서 정말로 아주 가끔은 추운 기온을 느끼며 마시던 밀크티가 그리워도 졌지만 

그 정도의 그리움이야 가끔 해외여행가서 찍은 사진을 정리할 때 느끼는 그런 아련한 정도였고 

차곡하게 나이를 먹고 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감정의 기복을 착실하게 줄여나가고 있었다. 

요컨데 추억은 추억으로라는 식의 자제는 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는 것이다.


"이거 봐요 100불을 주면 오늘밤 같이 자줄 수 있다고요"


어느 날 바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데 누군가 뒤에 쪽에서 이렇게 말을 하는 것이었다.

바에서 몸 파는 여자애인줄 알고 약간은 짜증나는 눈으로 뒤를 돌아봤더니 k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서있었다.


"100불이면 되는 거야?"

"아아 그리고 당신이 맥주를 한 병 사줘야 되"

"자식~"


간만에 그것도 외국에서 k를 보자 약간 놀라운 동시에 반가웠다.

그리고는 약 5분간 이런 식으로 만난 사람들이 하는 안부를 물었고 맥주를 주문했다. 

k는 지금 홍콩에 있는 모모 투자회사에 있는데 베트남에 일을 펼칠까 해서 왔단다. 


"당신은 정말로 내가 하는 말을 믿네"

"응? 그럼 거짓말을 한 거야?"

"아니 확실히 나는 그런 이유에서 여기에 왔지만, 혹시나 내가 어떤 이유에서인가 그러니까 남자친구를 잘못 만났던가 해서 나쁜 쪽으로 빠지고, 

그러다가 창녀가 되었고 흘러 다니다가 여기서 정말로 당신을 100불 정도 벌기 위해 꼬셨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1%도 하지 않아?"

"아아 뭐랄까 그런 식으로 창녀가 된 친구와 하룻밤을 자는 것도...."

"농담이지?"

"당연히 농담이지"


이런식으로 다시 k 녀석과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k는 만나지 않는 동안 예전에 내게 일부 보여주었던 성숙함을 완전히 몸에 배서 


"이제는 내가 다른 사람들을 컨트롤 하고 있다고" 


라는 식으로 까지 얘기를 했고 뭐 그런 이유에서인지는 몰라도 녀석의 사업은 확실하게 넓혀져 갔다.


그렇게 만났지만도 뭐랄까 


"이거 봐 그 재미있는 얘기의 2부를 들려줘" 


하는 식으로 얘기하기도 웃겼고, 각자 일들이 바빠서 영국에서처럼 같이 쇼핑도 같이 차를 마시는 것도 하지 않고 

그저 '아아 같은 도시에 살고 있지' 하는 식으로 지냈기 때문에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러다가 오늘 다짜고짜 점심을 사달라고 하는 k를 만난 것이다. 

이런 식의 뭐랄까 어린 행동은 원래 녀석이 잘 보여주던 것이었지만 베트남에서 만난 뒤 그러니까 녀석이 사회적으로 인정 받기 시작한 다음부터는 없었던 것이다.


"이제 내게 별 관심이 없네"

"응? 아니 뭐 그런 것은 아니고 도무지 요사이에는 뭐에든 그리 관심을 두지 않게 됐어"

"이제는 화석도 안 모으는 거야?"

"아아, 그것들 지금 한국에 있는 짐 속에서 쿨쿨 잠을 자고 있을 거야"

"그건 불쌍해"

"흠- 그렇다고는 해도 녀석들 몇 천만년 동안 잠을 자고 있었던 녀석이기 때문에 나 때문에 몇 년 정도 더 잔다고 해도 그리 큰 영향을 줄까?"


"그런가? 이젠 당신의 주변이 안정이 되어가는 거군. 혹은 당신의 능력이 이젠 주변을 안정시켜가고 있다는 것이고"

"하하 뭔가 비장하고 약간 슬픈 표현인데. k 니가 맘대로여서 괴로웠던 능력을 맘대로 사용하는 것과 같은 상황인 것이야?"

"아니 그건 달라. 나는 이게, 적어도 이 부분은 당신에게 감사하는데, 내 맘대로 된 다음부터 겨우 보/통/의/ 삶을 사는 거라구. 

그것도 아주 노력을 해서 말이야. 하지만 당신은 이제 그 보통이 너무 지겨워져서 아에 당신 자신을 보통과 동화시켜서 지우려는 것 같아"

"뭐 그럴 것 같기도 하네"


공연히 마음이 심드렁 해져 버렸다.

k 녀석도 별로 말하지 않는 상황이 되어버렸고 해서


"이제 그만 일어나지" 


라고 했다.

그러자 갑자기 k녀석이


"저기 그 재미있는 이야기의 다음 번을 듣고 싶지 않아?" 


라고 물었다.


왠지 마음속에 이번에 그 두 번째 편을 듣지 않으면, 물론 그 첫 번째 편도 듣지 못했지만 다시는 그런 얘기를 들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회사에다가는 적당한 핑계를 대고 녀석을 따라서 k의 아파트로 갔다.

k는 에어컨을 최대로 켜고 밀크티를 가져왔다.


"아아- 역시 밀크티에게는 찬 공기가 필요하다구"

"아아 정말 그렇군"


인공적인 차가움이 주는 환경에서 밀크티를 홀짝거렸다. 


"나 당신과 처음 잤던 그 날 당신을 그러니까 당신의 안쪽에 있는 당신을 만났었어"


티를 약 2/3정도 마셨을 때 k 가 말을 꺼냈다.


"안쪽에 있는 나?"

"그래 그 안쪽에 있는 당신. 그 당신 덕분에 내가 적어도 내 삶을 평범의 수준까지 올려 놓을 수 있게 된 거야."


"그래? 그 안쪽에 나는 당신에게 무슨 얘기를 했어?"

"그게 바로 두 번째 재미난 얘기야. 

당신을 만났을 때 그러니까 당신의 안쪽을 만났을 때 나는 당신을 보고 세상과 괴리를 만들어 내려고 하고 있었지. 

그건 그 때까지는 내가 조절하거나 뭐 그럴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어' 하는 마음으로 그 괴리가 일어나는 것을 겪고 있었어."


"그래? 그리고는?"

"그런데 당신이 갑자기 내 괴리가 일어나는 쪽을 툭툭 치면서 시익 웃고는 ‘이것 봐 넌 군대도 안 다녀왔어? 이쪽이 '적방향' 이라고!!!’ 라고 말을 했어"


"적방향?"

"그래 그리고는 당신 그러니까 그 안쪽의 당신은 정말 그 괴리가 나는 쪽을 척척 잡아가지고는 저쪽 그러니까 세상쪽을 바라보는 바깥쪽으로 세워두고는 

'이거 봐 당신 클레이모아까지 내가 이렇게 해줘야 되?' 하는 거야. 

나는 클리이모어가 뭔지도 또 그게 적방향으로 향해야 하는 건지도 몰랐지만 당신이 너무 편안하게 그리고 자신감 있게 그 일을 하길래 

나머지 남은 내 괴리의 부분도 당신처럼 그 소위 '적방향'으로 돌려놨지"


"그래? 그리고는?"

"그리고는 처음으로 예전에 말했듯이 깊은 잠으로 빠져들었고, 당신도 알다시피 지금 같은 내가 된 거야"


k 는 이야기를 마치자 예전에 영국에서 보던 k 처럼 반짝이는 눈을 띄었다.


"난 두 번째 얘기가 더 재미있는데"

"그래? 그 첫 번째 얘기보다도?"

"으음... 아마도..."


녀석은 장난기가 가득한 눈으로 소파에 앉아있던 나를 눞히더니 위로 올라왔다.


"하아 그 첫/번/째/가 더 재미있다?"

"으음."

"이것 보세요 나는 당신에게 그 첫 번째 얘기를 아직 하지 않았다고!!"

"아니 하지만 그 때..."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구 당신이 '듣는 척' 한 거야"


솔직히 무안해졌다. 뭐 악의는 없었지만 거짓말을 한 셈이고, k 녀석이 계속 내 위에서 싱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아 미안. 하지만 왜 그 때 내게 그 첫 번째 재미있는 얘기를 한 척만 한 거야?"

"아아 그 때는... 뭐랄까... 난 너무 어렸다구"

"어리다?"


녀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얼굴에는 그 예의 재미있다는 표정을 띄고는 내 옷을 삭삭 솜씨 좋게 벗겼다.

결국 오후 시간에 k 와 난 오랜만에 섹스를 했다. 

그건 뭐랄까 오래간만에 만난 친구와 술을 기울이는 것과 같은 따뜻한 즐거움이 있는 것이었다.

서로의 몸을 만지작거리는 도중에 녀석이 


"이것봐 이건 바로 '적방향'이라구" 


하면서 내 안쪽에 어떤 부분을 저쪽을 바라 보게 돌려놓는 느낌을 받았다.


섹스가 끝난 후에 둘 다 침대로 가서 깊은 낮잠을 잤다. 

꿈에서 나는 k 녀석에 안쪽에 있는 다른 k를 만나서 다행히도 그 첫 번째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별건 아니었다. 

그저 k 는 나를 처음 본 그 때 바로 사랑에 빠져버렸지만 너무 어려서 말할 수가 없었다는 얘기였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아"


이젠 k 의 도움으로 적방향으로 제대로 클레이모어를 설치하게 된 내가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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