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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호흡짧은글

어느 비슷한 오후 중 하나에 일어난 일

by mmgoon 2005. 6. 9.




그것은 어느 비슷비슷한 오후중 하나에 일어난 일이었다.


나는 나름대로 바쁜 직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후 2시나 3시쯤 되면 주변에 신경을 쓰지 않을 만큼 바쁘게 된다.

뭐 성격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일들이 그렇듯이 도무지 다른 생각을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그날도 그런 상황이었는데 적어 논 글이 맘에 들지 않아서 화면을 한참동안이나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오른 손 위에 앉아있는 나비 한 마리를 발견했다. 

뭐 나비 그 자체야 보통크기의 평범한 나비였지만 그게 꼼짝도 하지 않고 콘크리트로 사방이 막혀있는 내게 다가와서 

손위에 덩그마니 앉은 모습에 마음이 쿵쿵거릴 정도의 충격을 받았다.

녀석은 내 놀람을 눈치 챘는지 내손에서 떠올라 슬슬 날개를 퍼덕이면서 책상 밑으로 들어가 버렸다.


반사적으로 나는 머리를 숙이고 책상 밑에서 녀석을 찾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두운 책상 밑을 보고 있자 어릴 적에도 이런 상황을 겪었다는 생각이 났다.



그 날은 더운 날이었는데 마당에서 두 마리 개가 - 그 때 우리집에는 흰 개 두 마리가 있었다 - 정원석을 노려보고 있었다. 


늘상 무심한 녀석들의 관심을 그리도 끄는 일이 뭔가 궁금해서 다가가 봤더니 작은 참새 한 마리가 정원석 틈에 숨어있었던 것이다. 

개들을 쫓아내고 - 녀석들은 내가 쫓자 '뭐 저희들도 심각한 것은 아니었다구요' 하는 표정으로 마루에 앉아버렸다 - 새를 꺼내려고 했다. 

그러나 그 새는 바보같이도 다시 돌아올 수 없는 걸 모르는 채로 자꾸만 바위틈으로 들어가 버렸다. 

이젠 내 손을 넣어도 닫지 않는 그만큼이나 들어가 버린 것이다. 나는 이런 저런 방법으로 시도를 하다가 포기하고는 다시 개들이 있는 마루로 돌아와서 수박을 계속 먹었다.

그러면서 아주 한참 동안을 그 정원석을 바라봤지만 그 새는 빠져나오지 않았다. 

아마 너무나 깊이 들어가 버려서 자신도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이 되었을 수 있다.

뭐 저녁이 다 되서 들어온 어머니에게 말은 했지만서도 그 작은 새 게다가 지금은 생사도 불분명한 그 새를 위해서 정원석을 들어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 일은 그렇게 아무런 일도 없이 끝이 났지만 그 일이 있은 후 몇 달 후부터인가 나는 지독한 새 꿈을 꾸기 시작했다. 


검고 큰 새들이 게다가 지독히도 못생긴 새들이 깃털도 제대로 나지 않은 건지 아니면 뭔가 병 때문에 털이 빠진 건지 

더덕더덕한 날개를 퍼덕이면서 우리 마당 나무와 지붕과 집 앞 전신주까지 가득 앉아서 집밖으로 나가지 못하는 꿈과 


작고 노란 병아리들을 샀는데 그게 연탄광으로 들어가 버리게 되고 (꿈이란 맘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몇 마리는 이상한 누런 죽같이 되서 마당으로 흘러나오고 한 두 마리는 쥐 같은 얼굴로 변해가지고는 나를 쫓는 꿈을 꾸고 헐덕거리면서 일어나곤 했다.



결국 나는 새들이라면 질색을 하는 성격으로 변했지만 뭐 '난 새가 싫어' 라고 말한다고 해서 

세상 사람들이 나를 이상한 녀석이라든가 사회부적응자라든가 하는 식으로 생각하지는 않으니까 별 문제없이 살아왔다.


그리고 오늘 다시 나비를 한 마리 만났다.

누군가가 나를 당황하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었다면 정말로 희귀한 우연으로 녀석은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우리 건물을 뚫고 

10층까지 올라와서 내 손에 앉았다가 무심한 듯이 다시 내 책상 밑으로 들어가서는 마치 4차원 통로라도 통과하는 듯이 없어져 버린 것이다. 


작은 그리고 절망적인 동물들만이 찾아낼 수 있는 그런 문이라는 것이 있나보다.

그런 문들을 건드리는 것은 또 그리 좋은 일이 아닌 것이고...

또 어떤 악몽을 꾸게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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