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돌아다닌 이야기/우리 나라

2년만에 한국 여행기

by mmgoon 2005. 12. 27.

솔직히 한국 여행기라고는 하지만 나는 한국 사람인데...

이런 마음이 생긴다.

그래도 2년만에 가는 한국이고 그래서 그런지 하노이나, 쿠알라룸프루나 싱가폴로 출장을 가는 것과는 다른 느낌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쓰는 이야기.



2005년 12월 1일 오후 9시 12분 탄손녓 공항


뭐 늘 익숙한 탄손녓 공항이다.

한국가는 비행기는 항상 자정 아니면 새벽 1시다. 

나도 예외없이 흥아저씨가 모는 차를 타고, 한국 관광객들과 베트남에서 처녀를 구해가는 아저씨들과 엄청난 짐을 들고 

무슨 이유에서인지 한국으로 들어가는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체크인을 하고 비행기를 기다리고 있다.




숍들을 둘러봐도 뭐 당연한 얘기지만 특별한 것은 없고, 

한국가서 애들이랑 만나서 마실 루아뭐이 2병만 달랑사서 색에 집어넣고 최대한 시간을 끌기위해 화장실에까지 다녀왔지만 별로 흐르지 않는 시간이다.


결국 약간을 불편하지만서도 판다군과 키보드군을 꺼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출장을 다닐 적에는 항상 노트북가방을 들고 나니니까 입력에 문제가 없는데 이렇게 색을 들고 다니니까 으음 키보드군을 편하게 놓고 칠수가 없는 것이다.


한국가는 심정은? 

하고 누가 물어보면....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솔직히 너무 오래 떠나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춥다는 얘기도 듣고 가서 할 일들도 있지만 그냥 내일 일어나서 회사가서 늘 정해진 일들을 해내기 전에 그런 저녁시간 같은 느낌이다.

그렇지만 아주 마음이 편한 것은 아니라서 왠지 익숙하지 못한 생활에 대한 긴장인지 눈이 사뭇 피로하다.


한국가서 일단 병원엘 갔다가 안경도 새로 하나 하고 옥이가 부탁한 디카도 하나 사고 애들 만나서 한 잔 하고, 속옷도 좀 사고, 어머니와 저녁도 하고...


결론은 아무런 감정도 심지어 생각도 나지 않는 다는 것이다. 한국은 과연 어떻까.




마지막으로 글을 쓰고 나서 약 5분이 경과했지만 아무런 변화는 없다.

옆에는 왠 아저씨가 술에 취해 잠을 자고 있고, 앞에는 약간 촌스러운 아저씨들이 (급수가 높지 않은 공무원 분위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고, 뒤에는 관광온 한국 아줌마들이 수다를 떨고 있다.


이번 여행을 위해서 (뭐 100% 개인적인 방문이니 만큼) 가져온 장비는...

일단은 판다군, 블르투스 키보드군, 이번에 새로 구입한 작티양 정도다. 


왠지 간촐한 느낌의 여행을 하고 싶었던 결과다. 

300D 군이 어느정도 삐졌을 가능성과 작티양이 그리 잘 내 느낌을 만들어주지 못할 수 있다는 가능성이 있지만, 

이번엔 뭔가 달라야 겠다는 생각이 자꾸 앞서는 것은 막을 수 없다.





2005년12월 2일 00:14 아직 기다린다


공항은 거의 한국으로 가는 사람들로 가득찼고, 약 10초 전에 보딩을 시작한다는 방송이 나왔다. 

뭐 지금 들어가 봐야 또 작은 방에 갖혀서 있어야 하니까 더 빈둥거리다가 들어가야 한다.

아이고 너무 졸리다.




2005.12.02 어머님 집


공항에 내려서 일단 현금지급기에서 돈을 찾고 휴대폰을 빌리고 커피를 한 잔 하고 어머님 집으로 왔다.

다행히도 어머님 집으로 가는 새로운 공항리무진 노선이 생겨서 편하게 왔다.

예상대로 춥다!!!




어머니가 얼마 전에 이메일로 


'난 지금 요리의 즐거움에 빠졌단다' 


하는 말을 들었지만 난 믿지 않았다.


어머니는 솔직히 식성이 좋으신 그것도 아주 좋으신 편이어서 말 그대로 '아무거나' 잘 드신다.

게다가 살림이라고는 시집오셔서 아직까지 김치를 담그신 적이 없으신 경력의 소유자시니까 어머니음식=맛없음 이 당연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울 어머니는 참으로 쿨한 분이셔서 뭐... 서로 소 닭 보듯 하면서 이제까지 살아왔기도 했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어머니께 '그러면 안됀다' 하는 식의 귀뜸을 했거나 나이 탓인지 아무튼 어머니는


'이번 아들의 방한 기간 동안 그 동안 그러니까 30 몇 년간 보여주지 못했던 어머니적인 모습을 보여주리라' 


다짐을 하신 듯 했다.


공항으로 나오시겠다는 걸 굳이 말리고 (차도 없이 공항에 나오시면 나는 짐만 하나 추가되는 거다 -_-;;) 집을 찾아갔더니 점심을 차려 주신다고 왔다 갔다 하신다.

결국 40분만에 주문한 탕수육이 도착하자 그걸 이쁜 그릇에 담아내시고 (어머니는 이것도 요리인 듯하다) 

추위에 오들거리고 있는 아들에게 시원한 (-_-;;) 알쌈을 만들어 주셨다. 


결국 탕수육과 알쌈으로 점심을 먹고 커피를 한 잔 하고 있자 어머니가 영화를 보러가자고 하신다.

30여 평생 처음으로 어머니를 모시고 영화를 봤다. 

뭐 둘 다 영화는 좋아하는 사람들이지만 이렇게 같이 영화를 보는 게 처음인지라 엄청 어색했다. 

어머니도 내심 그러신 것 같았지만 묵묵히 영화화면을 응시하고 계셨다.


암튼 내일 점심도 해주시겠다고 하시는데 뜨끈한 우동이나 짬뽕을 시켜주셨으면 좋겠다.




2005년 12월 3일 압구정동 모 카페


추위!!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온도라는 녀석은 급강하를 했고, 

토요일에 건강검진 가려고 집을 나섰더니 아아- 온통 눈이 내려있었다.


그 이후로도 온도는 계속 내려가서 오늘 아침은 -10도로 가볍게 시작했단다. 

지금은 -6도니까 아아 내가 살던 곳과 거의 40도가 차이가 나는 것이다.





어쨌든지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적어도 외적으로 보기에는) 몇 년간 다녀보지 못한 서울의 여러곳을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다.


어제 첫날은 어머님 생일이기도 하고 해서 어머님과 놀 수 밖에 없었고... 뭐 난 재미+의무로 놀았다.

솔직히 30대 중반에 어머니모시고 '해리포터와 불의 잔'을 보는 것은 아주 즐거운 일은 아니니까.


오늘은 건강검진을 받고 예상했던 "술을 줄이고 운동을 늘이고"하는 식의 진단을 받고 나와서 어제 회식이라 술마시고 뻗어있는 친구녀석을 불러서 점심을 먹었다.

이제는 슬슬 모두다 살이 쪄가는 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05년 12월 5일 친구 혹은 지인


2년간 혹은 넓게 보자면 4년만에 귀국인지라 지독히도 얇아진 인간관계를 경험하고 있는데, 역시나 그래도 (흠흠 잘난척) 아직까진 홀로 외롭게 밥을 먹은 적은 없다.


게다가 놀라운 것은 대학교때 친구들이 4년만에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도/ 바뀐 것이 없는 그런 모습들을 보여줬다.

늘 빈정대던 인간은 빈정댔고, 늘 심각하던 인간은 아직도 그랬고, 늘 시켜먹거나 뺐어먹던 인간은 아직도 그랬다.


물론 녀석들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고 직장도 옮겼고 배도 나왔지만 뭐 별로 대충 삶이라는게 그리 변화를 요구하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반가왔다는 얘기







2005.12.06 12:20 홍대앞 카페


간만에 신촌을 싸다니다가 홍대앞에 와서 겨우 추위를 녹이기 위해서 커피를 마시고 있다.

이제는 진한 커피에 익숙해져 버렸기 때문에 한국커피는 아직 별로지만 뭐 추위를 막는 데는 그만이다.





솔직히 이번 방문의 목적은 약 50%는 쇼핑이다. 

저번에 들고간 와이셔츠들과 빤쮸들이 그 수명을 다 한듯하고 (고무줄들이 하아-) 

구충제도 사서 먹을 시기도 되었고 (국산은 한 알이면 다 되지 않는가!!), 

그리고 자우림도 새로운 시디를 냈다. 


물론 옥이가 디카 사달라고 부탁을 했고, 시리얼 디스펜서는 인터넷으로 주문해 놓은 상태이기는 하지만서도....


그런데 이상하게도 오늘까지 쇼핑을 할 시간이 나지 않았다.

오늘 아침에서야 겨우 와이셔츠 2개를 건졌다. 

이런 식으로 빈둥대다가 돌아간다면 


'오오 미스터김이 한국간대' 라든가 

'아아- 한국한국' 


하는 식으로 눈을 말똥대면서 기다리는 베트남 인간들한테 


'차가운 인간'이라든가 

'피도 눈물도 없는...' 


하는 식의 비난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소위 한국 기념품을 사야 한다. 

이게 도무지 한국 기념품이라니... 뭔지....




늙었다!!


뭐 내 나이 정도는 나도 알고 있지만 주로 생활하는 환경이 나보다 나이 많은 인간들이 많은 관계로 내 나이에 대해서 특히나 늙었다는 쪽으로 생각하고 있지는 않고 있었다.

그런데 오늘 신촌쪽에서 이대쪽으로 올라가는데, 웬 아저씨가 내게 다가와서는


"저기 이번에 분양하는 ㅁㅁ역사가 있는데 한번 보시고 가시죠"


하는 것이었다.

아아- 드디어 척 보기에도 재테크를 해야 하는 그런 나이가 된 것이다.충격을 받은 마음으로 머엉하니 길을 갔다는 얘기. 

그래 아무래도 나이가 있다.



자우림


지금이야 베트남 살면서 미땀 노래도 열심히 듣고 있지만, 실상을 알고보면 자우림의 30대 팬인 셈이다.

그렇다고 아주 열성적이라서 공연마다 쫒아다닌다거나 프로필을 줄줄 꿴다거나 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는 앨범이 나오면 꼭 구입을 한다거나 가끔 기사가 나오면 스크랩을 한다거나 하는 식의 행위를 하는 나름대로 열심인 팬인 셈이다.


그/러/다/가/


정말로 운이 좋게도, (물론 ㅇ님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감사감사) 오늘 연습실에서 얘기를 나누고 사인도 받아들고 올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감동~


사인 시디를 살펴보다가 왜 사진은 안찍었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아아- 정신이 홀딱 나가 있었던 것이다. 흑흑. 

그래도 오늘은 평생 잊지 않을 날이될 것임에 분명하다!!!

자우림 만세잇!!!



쇼핑 진행상황 보고


제길 이제 대충 선물 구입은 끝이 났다. 

하아- 힘들어 다리가 너무 아파서 샌드위치 바에 들려서 저녁을 먹고 있다.

아자. 성공이다!!!



한국이 좋은 점


한국에 오자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아무도 신경써주지 않는 점이 좋다.

카페 한편 구석에 앉아서 판다군으로 글을 끄적이고 있어도 세상은 상관 없다는 듯이 흘러가서 좋다.

신경안써도 언어가 구사되서 좋다.


음악이 좋다.

그래서 밥 다 먹고 시디를 구입하러 갈거다.

beautiful Korea




05.12.07 17:21 인천공항


어머니와 점심을 먹고 일찌감치 공항으로 향했다. 

어머니집 바로 앞에 공항 리무진이 있어서 오고 가고는 참 편했다. 

어머니에게 손을 흔들고 전화기를 꺼내서 지인들에게 전화로 인사를 하고 속력을 높이는 차에 앉아 있자 뭐랄까 정확히 normal로 돌아온다는 느낌이다.


이제는 내가 살던 곳에 가서 내가 사는 그런 사회로 귀환하는 것이다. 

더 이상 간만에 놀러온 아들이라든가, 외국사는 친구라든가 추위에 떠는 이방인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오히려 이 편이 더 익숙하고 마음이 노인다' 


라는 생각이다.


익숙하게 보딩패스를 받고 체크인을 하고 약간은 막연한 듯하게 남은 시간을 보내는 이 상황이 내게는 자연스럽다.

뭐 추위로 고생했지만 머리도 시원해 졌고, 뭔가 찜찜했던 문제들도 어느정도 해결이 되었고, 적어도 '얼마전에 한국에 다녀왔다'는 식의 얘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나의 집은 어디인가?' 라는 질문에 대해서 적어도 내가 나고 자란 그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분명히 들었다. 

나라는 존재는 뿌리를 약간은 옮긴 것 같다.


처음에 영국살면서 물건을 하나 사도 '한국가서 이녀석을' 이라든지, 어떤 경험을 해도 '한국가서 이런 식으로' 라고 자꾸 되뇌이던 버릇이 

이번에는 '이걸사가지고 베트남 가서' 하는 식으로 바뀌어 버렸다.


뿌리의 대부분은 아직도 한국에 있겠지만 적어도 집은 옮긴 것 같다.



성과물


우선은 그 동안 부족했던 속옷들과 와이셔츠들이 생겼다. 아주 실용적인 성과

그동안 듣고 싶었던 시디들을 특히나 크리스마스 시즌용 시디들을 구입했다. 문화적인 성과

얇아졌던 인간관계를 어느정도 리플레쉬 시켰다. 사회적인 성과

그동안 끝이나지 않던 소설 하나를 끝냈다. 정신적인 성과

결국은 얻어가는 쪽으로 결론이 나는 여행이 었다.



'돌아다닌 이야기 > 우리 나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눈이 오는 한국 출장기  (4) 2016.01.18
간만에 서울을 걸어다녔다  (0) 2015.08.29
미리 쓰는 여행기랄까  (4) 2015.08.25
한국에 무사히 들어왔습니다  (2) 2015.04.29
한국에 들어가다  (2) 2007.0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