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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S Town Daily

전기 버스는 위험해

by mmgoon 2023. 11. 1.




회사에서 주섬주섬 짐을 챙기고 어둑해진 거리를 걸어서 버스 정류장으로 왔습니다.
시간표를 보니 곧 버스가 도착을 하네요.
그리고 광화문 사거리에서 휘리릭 유턴을 해서 버스가 도착합니다. 깨끗한 전기버스 입니다. 

종점에서 탑승을 한 관계로 기사님 옆 맨 앞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버스는 어두운 길을 달려 남대문을 지나 서울역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서울역에서 우회전을 하는데 아, 오늘 기사님 드리프팅을 시전하시네요.

그렇게 버스가 급 우회전을 하자마자 바로 정체가 시작됩니다.
내 퇴근길의 최대 마의 구간인 서울역-서대문 사거리 구간이 오늘따라 유독히도 정체가 심합니다.
분위기상 시간이 지체될 것 같아 아이패드 미니를 꺼내서 넷플릭스를 봤습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약 1m를 전진한 버스가 급정거를 하면서 엄청 흔들립니다. 네네 인사도 했죠.
한참동안 버스가 움직이지 않자 스트레스가 올라가신 기사님이 앞차가 미미하게 움직임을 파악하자 전기차의 특성을 활용하여 급발진을 시도하셨고, 이후 앞차가 바로 정차하가 급브레이크를 밟으신 겁니다.

그 이후로도 이런 상황이 이어졌고 왠지 흥미진진해진 나는 넷플릭스를 끄고 앞쪽에 꽉 막힌 길과 그 길과 싸우시는 운전기사 아저씨를 구경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윽고,
기사 아저씨는 전기버스의 급발진 능력을 십분 발휘하여 1~2m 전진 후 급정차, 옆에서 들어오는 버스 차단 등을 시전하시면서 마치 1차 세계대전 때 참호를 점령해 나가듯이 조금씩 앞으로 버스를 밀어댔습니다.
그리고 정류장에 도착을 하자 혹시나 이 틈에 옆에 차들이 앞으로 끼어들까를 염려하면서 잽싸게 손님들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왠 아주머니가 미처 내리지 못하였다면서 다시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를 하십니다.
순간, 기사님의 살기를 느꼈으나 다행히 문이 다시 열리면서 아줌마는 하차를 했습니다. -_-;;;

드디어,
전기차의 순발력과 아저씨의 운전실력이 더해져서 서대문 사거리에 다달았고, 앞쪽에는 녹색불이 켜졌습니다.
순간, 4차선에 있던 아저씨는 3-2-1 차선으로 급발진을 이용해 순간이동을 했고,

다시 4차선으로 점프를 하면서 사거리를 건너 차들 사이를 비집고 1차선 버스전용차선에 도달하는 미친 드리프팅을 보여줍니다.
아아아- 나도 모르게 아저씨 대신 허공 브레이크를 밟느라고 오른 다리에 힘이 들어갑니다.

이렇게 마의 구간을 통과해서 버스전용차선에 도달하자 어느 정도 길이 뚫리기도 했고 해서 마음을 놓았는데 뭔가 기사 아저씨가 불안합니다.
어헛-
앞에 창을 바라보니 분명히 우리 버스 뒤에 있던 9710버스(경기 G버스죠)가 우리 앞에 있는 겁니다.
경기도 G버스의 G가 경기도가 아니라 그래비티라는 얘기가 있는데 (덕분에 중력조작이 가능하다는 -_-;;;;) 그게 사실인듯 합니다.
사뭇 오래된 디젤엔진의 버스로 미친듯한 급발진을 보이는 신형 전기차의 순발력을 뛰어넘는 G버스의 실력에 감동을 했죠. 아니 얘들은 날 수 있는 건가?

이런 상황을 만나신 울 기사 아저씨는 쯪- 이라든가 훗- 이라든가 하는 감탄사를 내뱉으시면서 미친듯이 9710을 쫓으십니다.
어짜피 추월은 불가능한 전용차선인데도 혹시나 두 차 사이의 거리가 멀어지면 바로 급가속이 이루어집니다.
이 와중에 탑승한 한 할아버지 버스카드 잔액이 부족해서 현금으로 냈고 잔돈을 주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순간 두번째 살기를 느낍니다 -_-;;;;;
아아- 아저씨 두 버스사이 멀어진 간격을 좁힌다고 일부 신호도 무시하고 치달리기 시작합니다.

뭐 이런식으로 결국 추월은 하지 못했지만 앞에 9710과 바짝 붙은 상태로 우리집 앞 정류장에 도착을 했고, 기사 아저씨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잽싸게 버스에서 내렸습니다.

으음… 
전기 버스는 위험하군요.
그래서 당분간 디젤 자동차를 운전하렵니다.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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