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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1층 수퍼에 간 이야기

by mmgoon 2018. 2. 25.




교회 다녀와서 점심으로 라면이나 끓여먹을까하고 1층 수퍼로 갔습니다.

역시나 아직 설날 연휴 효과 덕에 물건이 그리 없습니다.

심지어 맘에 드는 한국 라면이 없어서 베트남 라면을 보고 있는데 수퍼 직원이 다가오더군요.


"아아, 왜 미스터킴은 이 매운 불닭면을 사지 않아여?"

"그걸 먹으면 나는 죽는다고. 모든 한국 사람들이 매운 걸 좋아하는 게 아냐"

"글쿤여. 그나저나 이 사리면은 너무 안팔려염"

"그게. 뭐랄까 이 녀석은 스프가 없는 녀석이라고. 한국식 러우(lau, 베트남 샤부샤부로 보통 마지막엔 국수를 넣어 먹죠)해 먹을 때 쓰는 거야"

"그래여? 아아 반품해야 하나. 넘 안팔린다구여"


얘기를 마치고, 간장하고 도넛을 사는데 아는 일본 아줌마가 아는 척을 합니다.


"아아, 김상 이거이거 우동이 맞죠?"

"네네. 데우치 우동이라고 한글로 쓰여있어여"

"아 그리고 하나만 더...."

"네 뭔데여"

"이거 세 가지 무슨무슨 맛인가요?"

"그니까 이건 보통맛, 이건 매운맛, 이건 해물맛 이군요"

"감사해요"


그러니까 얼마 전에 일본 수퍼 체인에 흡수된 우리 수퍼에서 뭐랄까 일본적인 제품을 취급한다고 가져온 일종에 생면 우동인데, 문제는 한글과 베트남어로 쓰여져 있다는 것이다.

뭐랄까 일본체인이 되었는데 야기소바 소스나 가츠오부시같은 것들이 좀 들어오면 좋겠는데, 정작 일본체인이 되고나서 한국에서 보지 못했던 한국식품들이 쏟아져 들어온 결과다.

망고를 고르고 있는데, 아까 그 수퍼직원이 말을 또 건다. 


"아아, 이거 봐봐여. 그러니까여 지난 번에 사간 김치맛 짜죠(Cha Gio, 베트남식 춘권 튀김) 맛은 어땠어요?"

"뭐랄까... 김치맛 만두튀김 같다고 할까나...."

"김치맛 만두가 뭐에여?"

"이 기회에 한국 냉동만두도 취급해줘"

"흠흠 고려해볼께요"


냉장고에는 소시지들도 거의 없고, 치즈들도 거의 없고, 심지어 콜라도 없고, 야채들도 거의 없어서 걍 몇가지 식품만 줏어서 계산을 했다.


"아직 물건이 별로 없네"

"글쳐. 설 연휴 덕분이져"

"다음 주에는 들어와?"

"글세여...."


물건을 사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집으로 올라와 점심으로 해물맛 우동을 끓여먹었다.

1층 수퍼는 내가 이 아파트에 사는 이유에 큰 기여를 한다고 생각을 할까?

뭐랄까 완벽하지 않는 수퍼 하나가 이유가 된다는 것이 왠지 이국적인 느낌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