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이에요. 이번에는 정말로 진짜로 힘들었다구요!!”
소위 비행기를 갈아탄다는 행위는 그 공항이 주는 분위기와 짜증나리만큼 챙겨야 되는 여권들과
적은 돈을 아껴서 무슨 큰 일을 도모하겠다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뭔가 회사 내부에 부부관계가 원활하지 못한 한 늙은 과장의 머리속에서 나옴직한 ‘최소 비용의 항공권’ 덕분에
정작 여행을 혹은 출장을 하는 사람에게는 피로와 스트레스로 다가오게 마련이다.
자자,
이런 상황에서 게다가 지구의 반대편쪽으로 가는 그런 항로의 중간 기착지에서,
푹 쉴 수도 그냥 기다릴 수도 없는 그런 시간이 내게 주어져서,
이건 잠도 아니고 깨어있는 것도 아닌 그런 상태가 머리를 붙잡고 있는 가운데 갑자기 어디선가 소리가 들려왔다.
“아아, 그거 알아요? 설사 우리들이라도 이런 식으로 뛰어다니지는 않는다구요!!”
두 번째 문장이 머리를 스쳐 지나갔지만 머리도 감정도 모두 머엉해져 버렸기 때문에 내 반응은 최소화할 수 밖에 없었다.
사실 그리고는 잠시 꿈을 꾼 것 같았다.
그냥 아주 잠깐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잠에 떨어졌다가 약 10초만에 일어난 것 같은데 정작 현실 세계로 바로 일어나지 못하고 꿈속을 헤메는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 꿈 속에서 누군가가 옆에서 아주 상냥하게 나를 데리고 보딩 게이트로 가서 싸구려 이코노미 표를 일등석으로 바꾸고
비행기가 떠날 때까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두번째 블루베리를 먹었고 바로 이 때 꿈이 깨어버렸다.
“짜잔, 도데체 어디로 또 도망을 치는 거에요?”
“어?”
“그래요. 이젠 이해한다구요. 사람이 우리들의 존재를 이해하고 공존을 모색한다는 것. 그건 무리였던 것이죠.”
“어?”
“뭐 당신이 나쁜 놈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에요. 그냥 인간이라는 것이죠. 대부분은 재수없고 가끔은 멍청한 그런”
조금 더 듣다가는 아까의 꿈 때문에 좋아졌던 기분마져 없어질 것 같아서 겨우 입을 열었다.
“아니 여긴 웬일이야?”
“아직 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구요. 도데체 이번에는 어디로 도망을 치는 길이었나구요”
“도망을 치다니. 나는 지금 출장을 가는 중이라구”
“흥- 거짓말 하지 말아요. 당신 출장은 그저께 끝이 났다구요”
“아, 원래는 그랬는데 갑자기 일이 생겨서 말이지 황급하게 출장이 또 생겨버린 상황이야. 덕분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트랜짓을 하고 있어”
“트랜짓?”
“아아 비행기를 갈아타는 것을 말해”
“오우케이. 이번에는 일단 트랜짓이라는 녀석을 믿어주죠. 일단은 말이에요. 잠시 시간을 두면서 이 트랜짓의 정체를 먼저 밝히고 당신을 심문하도록 하지요”
뭔가 유코 녀석이 단단히 오해를 하고 있다는 확신이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아까 꾼 꿈의 좋은 기분이 남아있는 그런 상태였고,
뭐랄까 상당히 오랬만에 유코녀석을 만났기 때문에 그냥 놔두기로 했다.
녀석은 전화기를 꺼내서 이런저런 곳들과 통화를 하면서 킬킬 거리기도 하고, 짜증도 내고, 심각한척 하기도 했다.
그러더니 내게로 다가와서는
“그래요. 일단 트랜짓군은 시간을 좀 더 두고 지켜보기로 했어요.”
“아무렴”
“그리고 당신이 지금 단순한 도망이 아닌 소위 출장이란 것을 가는 중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어느 정도 인정해주기로 했어요”
“그건 사실이야”
“아아- 그건 그리 간단한 문제는 아니죠”
라고 하면서 녀석은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뭐랄까 잘난척 하는 것도 같고 이제 비행기 시간도 됬고 해서
“자, 그렇다면 유코에게 어느 정도 인정받은 출장을 계속할께”
라고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아아아- 제발!!! 그 동안 우리쪽의 예의를 다 잊어버렸군요”
“예의?”
“그렇죠. 예의. 당신 인간들을 다 잊어버렸겠지만 이 세상에는 예의라는 것이 있어요!!”
“예를 들면?”
“예를 들자면 당신과 같이 아직 조사중이지만 내 개인적인 의리로 인해서 아직까지는 자유로운 삶을 누리고 있는 상황이라면,
당신 출장에 나를 증인으로 데리고 다니는 정도 말인 것이죠”
“내 출장에 따라오겠다고?”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증인 보호 차원이죠”
바로 그 때 내가 타야할 비행기의 last call이 울렸기 때문에 뭐 어쩌고 저쩌고 할 정신도 없이 짐을 챙기고 유꼬를 옆에 끼고
- 녀석은 새로운 기술을 배웠던 것이었던지 토끼 인형으로 변신을 하고 있었다 - 비행기에 올랐다.
“어머, 토끼 인형은 따님 것 아님 여자 친구 거에요?”
라면 상냥하게 말을 걸어온 스투어디스에게 어색하게 인사를 건네고 짐과 토끼인형을 머리 위 수납칸에 넣고 안전 벨트를 맺다.
뭐 이제는 익숙해진 비행전 안전교육을 뒤로하고 비행기는 아직도 밝지 않은 새벽 하늘을 날아서 이번엔 유럽으로 향하고 있었다.
식사를 하고, 화장실에 다녀온 다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위쪽 수납칸을 열었더니 유코가 퐁- 하고 내 옆자리로 내려왔다.
“당신은 말이죠. 하아- 이렇게 옆자리가 비었으면 빨리 알려줘야지요”
“아아- 몰랐어. 하지만 이렇게 옆에 앉으면 의심 받지 않을까? 표도 사지 않았는데?”
“하아아- 당신은 당신 자신이 항상 세상의 중심이라는 그런 생각 버려야 한다구요.
이렇게 넓은 비행기에서 비행중에 자리 좀 바꾸는 것을 누가 신경이나 쓰겠어요?”
뭐, 나름 피곤했기 때문에 녀석의 말에 수긍하고 잠을 청했다. 그러는 와중에 녀석은...
“음음. 이거 뭐야? 기내식 중에 맛있는 것은 다 먹었군” 이라든가
“그래 이거라도 먹어야지. 근데 나는 음료수로 콜라 시켜줘”
등등을 하면서 남아있던 밥과 콜라를 삭삭 비웠다.
게다가 녀석은 심심하다면서 내 가방을 꺼내서 노트북을 켜고
“안녕? 너는 누구지? 처음 보는데. 왜 인사를 안해” 라든가
자는 나를 흔들어 깨워서
“그런데 왜 노트북을 2개씩이나 들고 다니는 거야?”
하는 식으로 질문을 해대서
결국 나는 피곤한 채로 소위 엉겁결에 정해진 두번째 출장지에 도착을 했다.
뭐랄까 개인적으로 해외여행이라는 것은 (해외 출장을 포함해서) 떠나기 전에 준비하는 것에서 그 기쁨의 70% 정도를 느낀다.
그런 이유로 이렇게 예정에 따라 도시 A에서 일들이 다 되었다고 생각하는 중에 전혀 준비없이 누군가의 계획에 의해 도착한 또 다른 나라의 도시 B는 그 존재감이 미미했다.
게다가 이 B 도시에 이전에 와 본 적이 있어서 뭐랄까 신비함이랄까 기대감이랄까 하는 것이 이미 1/2 이상 감소한 상태였기 때문에 말 할 것도 없이 자극이라고는 미미했다.
시간이 없었기 때문에 이전에 숙박했던 호텔을 다시 잡고
(물론 방은 다르지만… 같은 호텔의 다른 방이라니 한 바구니의 토끼들을 풀어놓고 ‘아까 네게 눈길을 준 그 녀석을 잡아봐’ 하는 느낌인 것이다),
공항에서 이 호텔로 가는 방식도 지난 번과 완벽히 똑같았다.
그러니까 비용을 절약하느라고 셔틀 버스를 타고 도심에 내려 택시를 잡아 호텔로 향했다.
“이곳에는 처음이신가요?”
“아뇨”
“그렇군요. 그 토끼 인형은 여자 친구? 아님 따님?”
이번에 토끼들이 개발한 기술은 실제적으로 먹히는 듯 하다.
아무도 ‘당신 아직도 토끼들의 감시를 받는 거야?’ 라고 묻는 사람이 없다니.
택시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호텔로 출발을 했다.
도착한 호텔은 그렇게 미리 말 했음에도 불구하고 트윈베드를 내놨다.
평소라면 짜증이 났겠지만 이미 창가쪽 침대를 차지하고 쿠션과 베개를 검사하는 유코 녀석을 보니 오히려 잘 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봐 왜 니가 창가 자리야?”
“아아- 창가쪽에 있어야 통신을 할 수 있다구요”
“뭐야? 달이라도 보면서 통신하는 거야?”
“뭐라구요? 역시… 인간들은 아닌 척 하면서 우리들의 기술에 관심이 있군요”
“아아 달을 이용한 통신이라 당신네들 다운 생각이야”
“자, 그리고 저녁은 어디서 먹을 예정이죠?”
“이동하는라고 너무 피곤하고 내일 일도 있어서 대충 이 호텔에서 먹을까 해”
“오오 그건 아니죠 새로운 도시에 왔으면 새로운 음식을 먹는 것이 뭐랄까 인간된 삶의 방식이라고 할까”
“아아 내겐 이 곳이 새/로/운/ 도시는 아니라구. 이미 몇 번이나 왔었던걸”
유코녀석은 다시 통신장치에다 대고
“으음… 녀석은 우리의 감시체계를 따돌리고 이곳에 몇 번이나 왔었다니까”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그러는 동안 내일 할 일을 떠올리던 나는 저녁도 먹지 않았는데 그대로 잠이 들었다.
뭐 엉겁결에 갑자기 생겨난 출장이지만 이제는 그리 놀라운 일도 아니기 때문에 다음 날 일은 수월하게 해결이 되었다.
굳이 특별히 개인적으로 할 일이 없었기 때문에 일이 끝나자마자 바로 공항으로 가서 비행기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저어기 아무리 찾아도 토스트용 빵이 안보이는데”
출장 다음 날은 다행히도 (하나님 감사합니다) 주말이었기 때문에 일단은 늦잠을 자고 있는데, 유코 녀석이 얼굴을 콕콕 찍으면서 말을 걸어왔다.
“엉?”
“가장 간단한 아침거리인 토스트 빵 조차도 없다구”
“아아, 그거… 출장을 다녀오느라고 떠나기 전에 미리 다 없앴어. 그리고 아직 새로 구입을 할 틈이 없었다구. 너도 알다시피”
“아니 그럼 아침도 안먹고 출근하려고 했어?”
“아아, 원래 나는 아침을 안먹자나. 아침을 먹는 것은 너지. 그리고 무엇보다 오늘은 금요일이라서 출근하지 않는다구”
“금요일인데 왜 출근을 하지 않는거야?”
“아아, 이거봐 여기는 중동이야. 금요일이 노는 날이라구”
유코 녀석은 다시 내 전화를 가지고 아마도 외국에 있는 것이 분명한 자기네 지부에다 대고는
“아니, 이런 기초적인 조사도 하지 않았다니!!!” 라든가
“아니야 금요일로 바뀐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것은 거짓말이야”
등등의 이야기를 했다.
“오케이. 좋아. 당신도 아시다시피 중동 사람들은 토끼가 아닌 고양이들 한테만 너무 잘대해주는 바람에 이 곳에서 정보수집은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당신도 잘 아니까”
“여기도 본부가 있는거야?”
“아니. 이쪽 토끼 애들은 넘 게을러서”
“그래. 그렇군. 나는 그럼 계속해서 잠을”
했지만, 결국은 배고프다고 징징대는 유코를 견딜 수 없어 옷을 입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와 차를 몰고,
인근 쇼핑몰에 가서 유코에게는 맥 모닝 세트를 시켜주고 나는 그 맛 없다는 맥도널드 커피를 한 잔 했다.
“으음. 기본적으로 중동 음식도 큰 차이는 없군”
하면서 녀석이 아침을 먹는 것을 보고 있자 쇼핑을 할 것들이 생각났다.
“자자, 나는 쇼핑 갈 거야. 같이 갈테야?”
“쇼핑!!! 좋지”
하면서 따라나선 유코 녀석을 데리고 쇼핑몰에서 음식들과 몇몇 필요한 것들을 구입했다.
“아아, 이 건물 상당히 큰데?”
“뭐 사람들이 세계에서 제일 큰 쇼핑몰이라고 하더군”
“오오 그럼 이게 당신거야? 부잔데?”
뭐라고 설명하기도 싫어서 쇼핑한 것들을 차에 싣고 집으로 돌아왔다.
점심으로 간단하게 파스타와 샐러드를 해먹었더니 뭐랄까 이유없이 기운이 났다.
잠시 책을 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아아, 김과장. 그게 말이야 이라크에 문제가 생겨서 내가 들어가야 되는데 같이 갔으면 좋겠거든?”
“네네 그러시죠”
“그리고 정부쪽하고 같이 미팅을 하고 당신은 현장으로 들어가서 일을 처리하라구”
“넹. 낼 뵙겠습니다”
전화를 마치고 거실쪽을 보니 유코 녀석이 티비를 향해서
“뭐라고 그러는 거야?” 라든가 “왜 모르는 말을 지껄이는 거야”
등등의 대사를 날리고 있다.
“아아, 그거 아랍어라구. 이렇게 언어모드를 영어로 바꾸면 되”
하면서 영어로 틀어주자 녀석은 바로 드라마 감상에 돌입했다.
“저기… 내일 이라크로 출장가는데 유코는 이 집에 계속 있을꺼야?”
“이라크? 출장?”
“엉”
“아아 당신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거야? 당신이 어디엘 가든지 내가 따라가야 법적인 보호를 받을 수 있다구. 당연히 나도 내 임무를 하기 위해서 따라가야 한다구”
“아무렴”
다음 날 일어나서 토끼 인형으로 변신한 유코를 옆에 끼고 공항으로 향했다.
“여기야 김과장”
“네네”
“그 토끼 인형은 누구 주게?”
“아아”
이라크 아르빌에서 회의는 뭐랄까 의외로 아마도 하늘에서 그 동안의 노력에 어느 정도 상을 주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셨는제 술술 풀렸다.
덕분에 심각한 얼굴로 날아왔는데 기쁜 얼굴로 악수를 하고 나올 수 있었다.
회의를 마치고 경비가 삼엄한 정부건물을 빠져나와 랜드크루져로 갈아타고 경호팀과 함께 현장으로 향했다.
“미스터킴. 자주 들어오시네요”
“아아”
“그 토끼 인형은 누구 선물인가요?”
“뭐 그냥”
아르빌에서 현장으로 향하는 길은 예의 덜컹거리고 불편하기 짝이없는 길이다.
이 길을 이미 6년이나 지나다니고 있다.
아직은 누런 광야의 모습이지만 곧 4월이 되면 초록 들판이 되는 그런 곳이다.
멍- 하고 창 밖을 보는데 전화가 온다.
“네네. 접니다”
“아아 김과장 나야”
“아 본부장님”
이라크 휴대폰 사정이야 당연한듯 좋지 못하고, 게다가 이런 시골길을 120킬로로 달리고 있다면 제대로 된 통신이 이루어질 수 없다.
“네? 뭐라고요?”
“아아- 그쪽 통신상태 별로구만. 내가 인사조치했으니까 바로 나와서 베트남으로 가라구!!!”
뭐랄까 이라크 아르빌시에서 광야 한 가운데 있는 현장으로 이동하면서 엄청나게 구린 통화품질의 휴대폰을 통한 전화 한 통으로 지난 6년간의 중동생활이 끝이나는 순간이었다.
현장에 도착해서 이메일을 확인했더니 인사발령이 이메일로 도착을 해있다.
“제길. 이런 이유로 작별이야”
“아아 그런거야? 하기사 여기보다 더 나쁘겠어?”
“야야 베트남 가서 나를 불러달라고”
등등의 인사를 나누고 현장에 있던 짐을 꾸려서 다시 아까 타고온 차를 다시 타고 아르빌로 그리고 다시 비행기를 타고 두바이로 돌아왔다.
그리고 당장 베트남으로 날아가기 위해서 의외로 할 일들이 많았다.
각종 증명서를 발급받고, 타던 차를 팔고, 비자를 반납하고, 집 주인을 만나서 방 뺀다고 이야기 하고, 이삿짐을 싸고, 주변 인간들과 환송회들을 치뤘다.
결단코 가능할 것 같이 보이지 않았던 일들은 어떻게든 끝이 났고,
자동차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이제는 텅텅 비어버린 아파트 문을 닫고 키를 관리실에 반납하고,
택시를 잡아타고 일년에 3일 온다는 두바이의 비를 바라보면서
출장 때문에 수도 없이 왔다갔다했던 공항에 도착했다.
“아아 미스터킴. 오늘 호치민행 비행기가 풀 북이라서 비지니스로 업그레이드 시켜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두바이를 떠나는 마지막 날에 항공사는 내게 은혜를 베풀었고 덕분에 짐을 부치고 비지니스 라운지에서 아침을 먹을 수 있었다.
“자자, 들어바바요. 지난 번에 쇼핑몰 갔을 때 말이죠. 내가 몇몇 봐논게 있는데…”
토끼 인형에서 토끼로 정확히는 사람의 모양을 한 토끼로 변신을 한 유코가 내 커피를 홀짝 거리면서 얘기를 시작했다.
“아아, 그러니까 당분간은 그 쇼핑몰에 갈 일이 없을 거야”
“왜?”
“그러니까 오늘이 두바이에서 마지막 날이라구”
“그럼 당신은 아니 우리는 어찌되는 거야? 설마 나쁜 짓을 벌여놓고 도망을 치는 거야? 아아- 내 이럴줄… 이런 경우라면 본부에 먼저 연락을 해야한다구!!!”
“아아- 그게 아니라구. 조금 급작하게는 되었지만 이번에 베트남으로 발령을 받았어. 도데체 지난 2주일간 내가 그리 정신없이 뛰어다닌 이유가 뭐라고 생각했던거야?”
“음음… 뭐 지난 2주간이 아니라도 당신은 미친듯이 뛰어다녔다구”
“아아- 뭐- 그렇긴 그렇지”
“그나저나 베트남은 출장인거야?”
“아니, 당분간 거기에서 살거야”
“돌아가는 거네. 일종에”
“그런거지. 뭐 상황은 다르지만서도”
이렇게 이야기를 나누고 게이트로 향했고, 만석인 관계로 유코녀석은 윗쪽 짐칸에서 나올 수 없었기에 두바이에서 호치민까지의 여행은 안락했다.
주는 밥을 먹고 쿨쿨거렸더니 비행기는 슬슬 하강을 하고 있다.
그렇게 떠난지 장장 7년도 넘은 기간만에 도착한 나를 저녁무렵의 호치민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간만에 느끼는 베트남 냄새가 묘한 감정을 일으키고 있는데
“저 이쪽입니다”
“아아 반갑습니다”
그렇게 회사에서 마중나온 차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일단 임시 숙소를 잡아놨습니다. 여기 잠시 계시다가 아파트를 구하시면 됩니다. 아- 맞다 예전에 계셨으니까”
“뭐 오래전 일이니까요. 많이 변했네요”
이렇게 말은 했지만 7년만에 왔음에도 지난 번 살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뭐 익숙함이 주는 편안함이랄까.
“자 여깁니다. 임시숙소죠”
“아아- 여기”
“일단 단기계약을 했으니 아파트들 둘러보시고 결정하시면 될겁니다. 그럼 저는 들어가보겠습니다”
“아아 네”
라고 짐을 들고 체크인을 한 아파트는………
정확시 7년반전에 살다가 베트남을 떠났던 바로 그 곳이었다.
“하아- 돌아왔어”
라고 빈 아파트에 혼자말을 하고 있는데, 유코가 퐁- 하고 나타난다.
“뭐야?”
“어?”
“여긴 우리 토끼들의 베트남 본부 아냐?”
“아니지 아니지 여긴 예전에 내/가/ 살던 아파트지”
“흠흠- 암튼 왜 여긴 돌아온거죠? 이제 더 이상 나는 베트남 지부에서 일하지 않는다고요”
“아아- 그렇게 되었어. 나 피곤하니까 내일 얘기해줄께”
이렇게 말을 했지만 7년만에 왔음에 약간 흥분을 했는지 좀처럼 잠을 잘 수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잠자리에 추가로 유코 녀석이 밤새 전화를 붙잡고서는
“아아, 그러니까 여기 베트남에서 살거라고요”
“몰라요. 그러니까 녀석이 여기로 화악- 하고 와버렸다니까요”
“그나저나 여기를 지키고 있어야할 요원들이 보이지 않는다구요”
“일단은 녀석이 집세를 낼 것 같으니 그 문제는 해결될듯 하구요”
“걱정말라구. 내가 녀석을 잘 알자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지 못하게 잘 설득해볼께”
등등의 통화들을 해댔다. 덕분에 새벽녘에서야 겨우 잠이 들 수 있었다.
다음 날은 출근해서 인사를 나누고 업무인수인계를 받았다.
아무래도 첫날이라 정신이 없었고, 저녁을 함께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짜잔- 겨우겨우 어떻게든 정리를 했답니다”
“도데체 뭐를 정리한 거야?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는데?”
“무슨 말을 하는거에요? 그 동안 작은 문제 때문에 비어두었던 베트남 지부를 겨어어우 오픈할 수 있었다구요”
“누가 맘대로 또 내 집을 베트남 지부로 사용하는거지? 이번에는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는데”
“아아- 그렇게 매정하게 굴지 말라고요. 당신이 미리 말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장비들이 두바이에 아직도 있다고요”
유코 녀석과 더 이상 말다툼을 해봐야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잘 알았기 때문에 그리고 시차로 인해 피곤하기도 했기 때문에 그냥 봉투를 하나 내밀었다.
“이게 뭐야?”
“아까 저녁 먹다가 남은 것을 좀 싸왔어. 어짜피 저녁을 해먹지는 않았겠지”
“오오 맛있겠는 걸”
유코 녀석은 어떻게 찾았는지 티비로 한국방송을 틀어놓고는 신나게 우물거리면서 먹기 시작했다.
소파에 푹- 하고 앉으니 뭔가 새로운 속도로 시계가 돌아가는 느낌이 들었다.
뭐, 이렇게 베트남에서의 삶이 다시 시작하는 소리가 들린다.
'끄적거림들 > 유코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 갈색 토끼의 비밀 (0) | 2006.02.27 |
---|---|
11 토끼들의 우편서비스 (0) | 2005.10.11 |
02 Dark Side of the Moon (0) | 2005.06.04 |
유코 이야기는.... (0) | 2005.06.01 |
10 토끼집 파티 (0) | 2005.06.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