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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유코이야기

12 갈색 토끼의 비밀




어느날인가 유코 녀석이 커다란 상자를 뜯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뭐야?"

"아아 이거 이거 중요한 거라구요"

"중요한 거?"

"이건 말이죠 바로 상품구매를 도와주는 갈색토끼라구요"

"상품구매를 도와주는 갈색토끼?"

"그렇다구요. 늘 뭔가를 사지만 이상하리만치 마음에 들지 않죠?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구입한게 항상 더 옳다는 생각이 들죠?"


그러고 보니 그럴사도 했다. 

벌써 몇개째의 디지털 카메라를 구입했지만 뭐랄까 손에 짝 붙는 그런 녀석을 만나지 못했고, 뭐랄까 이걸사고 나면 '아아 저걸 샀어야 하는데' 하는 생각도 드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 그건 인정하지. 그런데 구체적으로 갈색토끼는 무슨 일을 하는 거야?"

"으음 그건 구체적으로는 안에 동봉된 매뉴얼을 읽어봐야되"

"아아 그렇군. 그런데 왜 토끼라면서 이런 상자안에 그것도 매뉴얼을 동봉해서 들어가 있는거지?"

"아아 그건 우리 토끼들의 전통이야. '갈색토끼는 갈색 종이상자에' 뭐 이런 거지"


뭐 유코녀석과는 계속 살고 있지만 토끼들에 대해서는 여전히 잘 모르는 나는 - 비록 정보부라든가 우편국이라든가에 대해서는 조금 알지만 - 

유코 녀석이 신중하게 수취인란을 검사하고 커터나이프를 가져와서 그 종이 상자를 슥슥 뜯는 모습을 지켜봤다.


녀석은 꽤나 신중하게 상자를 다 뜯고 나서 사삭하고 뚜껑을 열었다.

사실 쇼핑을 도와주는 갈색토끼는 처음보기 때문에 궁금한 마음으로 녀석이 여는 것을 지켜봤다.


"아앗!!"


유코녀석이 소리를 쳤다.

놀라서 상자안을 보니까 그곳에는 '아무 것'도 들어있지 않았다.


"이게 뭐야?"

"아아, 뭔가 그러니까 새로운 우편 서비스에 문제가 생긴 것 같아요"

"아니 그렇다고 아무것도 없는 상자를 배달해?"

"아무래도 갈색토끼는 귀하니까..."

"이것은 귀한 것과는 다른 문제인 것 같은데..."


아무튼 그 이후로 몇시간 동안 유코녀석은 여기 저기 전화를 걸고 때로는 짜증을 때로는 화를 때로는 애원을 해댔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한 토끼들의 시스템은 뭐랄까 자유 개방화를 표시한 공산주의 사회의 관료사회 같은 거라서 이론상 다 가능하지만 실제로는 다 불가능하게 일이 전개된다. 

이런 까닭에 갈색토끼는 이미 논외가 되었고, 유코는 예의 그 시스템적인 문제를 걸고 넘어지고 있었고, 그쪽에서는 그 쪽 나름대로 실수가 없었다는 논리를 펴내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논쟁에 전혀 재미를 못느끼는 나는, 하기사 누가 이런 논쟁에 흥미와 관심을 보인단 말인가, 

소파에 앉아서 갈색토끼가 들어있었어야 하는 상자에서 아주 얇아보이는 매뉴얼을 꺼내서 읽기 시작했다.


매뉴얼은 조잡했고 그 예의 알수없는 도해들과 오타들로 처음부터 이 매뉴얼을 만든 사람이 아니 토끼가 뭘 알려주려고 했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약 30분동안 유코녀석의 투덜거림을 들으면서 매뉴얼을 통해 알아낸 결과는 별게 아니었다.


말하자면 쇼핑을 도와주는 갈색토끼는 너무 민감한 녀석이라서 정말로 자기가 그 일에 맞는지 알고 싶어하고 그걸 알기 전까지는 실제로 배달이 안됀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실제로 갈색토끼를 만나려면 매뉴얼 뒤에 있는 일종에 설문지를 작성 우편으로 되돌려 보내면 갈색토끼와 상의를 해서 갈색토끼가 맘에 들면 우리집으로 온다는 내용이었다.


"이거봐 유코야"

"응?"

"여기 매뉴얼에 의하면..."


결국 유코는 그리고 덩달아 나는 그 설문지를 작성해야 했다.

대부분은 유코녀석이 알아서 적었지만 가끔


"이거봐. 당신은 날 사랑해?"

"응? 난 토끼는 별로... 개나 고양이는 사랑하지"

"흠 그러면 '다'에 해당되는 건가"


하는식의 질문을 받아야 했다.

그 설문지는 아까의 매뉴얼 만큼이나 조잡하고 또 양도 많아서 유코가 설문지와 씨름을 하는 동안 나 혼자 간단하게나마 저녁을 준비해서 유코녀석에게 먹여야 했다.


"자 다 돼었다구요"

"그래?"


유코는 전화로 우편국에 택배로 전달을 부탁했고 약 10분후에 현관에 저번에 편지를 배달했던 '하노이의 안잡히는 토끼'군이 와서 설문지를 받아들고 갔다.


편지를 보낸 이후로 약 한달의 시간이 흘렀다. 

그 동안 유코와 나는 인터넷 쇼핑을 포함해서 이런저런 식의 구매충동을 미루고 지냈기 때문에 거의 한계에 다다른 상태였다.


"아아- 이거봐요. 저거 사고싶어"

"이거봐 유코야 만일 그런데 내일쯤 갈색토끼란 녀석이 나타나서 '아아- 도데체 뭘 한거야?' 하면 어쩌려고?"

"우웅 그렇지."


솔직히 나도 그 주유기형 위스키 디스트리뷰터를 사고 싶었지만 열심히 참고 있는 중이었다.

그때 딩동- 하면서 벨이 울렸다.


"아아 당신이군"

"네네 안녕하셨나요? 여기 편지가..."


뭔가 이상한 글들이 적혀있어서 유코에게 전해줬다.


"그게 뭐야?"

"아아 이런...."

"뭔데?"

"저번에 보낸 갈색토끼를 위한 설문지가 구형이었다는 군요. 그래서 미안하지만 이 신형 설문을 다시 작성해야 한다는 거에요"

"하아- 뭐야?"

"역시 갈색토끼는 어려워"

"그럼 어떻하지?"


결국에는 그날 휴일 오후내내 다시 유코와 나는 그 설문지를 작성했다.


"으음, 이건 어렵다. 자자 내가 서 있는게 좋아요 아님 앉아있는게 좋아요?"

"조용한게 좋아"

"음 그럼 E항을 체크해야하나?"


조금은 지겨웠지만 왠일인지 조용하고 평화로와진 휴일 오후가 즐겁게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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