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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바다 싸나이의 얘기.... 는 아니고 걍 시추선 얘기 -_-;;

by mmgoon 2006. 10. 2.



저번에 교육을 하다가 보니까 신입사원들은 뭐랄까 시추선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러니까 건장한 인간들이 땀을 흘리면서 치열한 그런 작업을 하는 그런 그리고 현장의 긴장과 위험을 무릅쓰는 그런 뭐랄까 영화같은 곳이라는 생각을 하는 듯 했다.



그/러/나/


항상 현실을 다르다.


21세기 해상작업의 기본 원칙은 ‘안전-건강-환경’ 이다.

덕분에 실제로는 대단히 안전한 환경에서 대부분의 작업이 이루어지며,

그 팔뚝 굵고 문신하신 아저씨들은 이제 나이가 드셔서 다 매니져들이 되어서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다가 


“이거봐 이거 뭐야?” 


하고 물어보시고 (지금도 옆에 있다)


실제 현장에서 몸을 쓰는 일은 인건비가 싼 동남아 아저씨들이 한다. 

물론 나보다 작고 문신도 없다.

나만해도 에어컨 빵빵 나오는 사무실에서 노트북들고 보고서 쓰면서 앞에 있는 모니터 2개로 전체 상황을 관리한다. 

뭐 가끔 밖에 나가서 애들이 잘 하나 봐주면 된다. 


그렇다면 육상과 뭐가 다른가 (솔직히 내가 보는 모니터도 요사이는 인터넷을 통해서 아무데서라도 다 볼 수 있다 -_-;;) 물으신다면....



그리고 일단, 바다에 있으면 머리가 단순해진다.

일정한 정도의 소음과 진동에 머릿속에서 복잡한 요소들은 다 날아가버리고 일주일이면 창의적인 생각이 다 소진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단순해지지 못하면 으음... 아마도 자살이라도 할 것이다.


바다에 있으면 살이 찐다.

하루 네끼 꼬박 나오고 언제라도 간식이 있고, 옆에서 잡일하는 녀석한테 커피 시키면 샌드위치랑 과일까지 가져오고,

솔직히 먹는 것 이외에 큰 기쁨이라고는 없으며,

술도 못마시고, 항상 잠이 부족하고, 스트레스를 잔뜩 받으며,

늘상 커버올 작업복을 입고 있으니까 허리와 아랫배를 자극하지 않아서 얼마를 먹어도 크게 느껴지지 않는다.

대개 떠나는 날 헬기타려고 무게를 잴 때 비극을 느끼게 된다.


또 바다에 있으면 힘이 쎄진다.

이게 바다용품은 다 무겁다. 

문도 무겁고, 컵도 무겁고, 장비도 무겁고, 신발도 무겁다.

게다가 대부분 서양사람들을 기준으로 만든 것이라서 동양인에게는 슬슬 무리가 온다.

덕분에 뭔가 들고 밀고 하는데 익숙해지면 발달한 근육을 느낄수가 있다.


바다에 있는 동안에는 열심히 일을 하게 된다.

왜냐하면...

이게 일을 안하면 달리 할게 없거나 솔직히 몸이 안좋아지거나 우울하게 된다.

다른 말로 하면 달리 할 일이 없어서 주어진 일에 빠지게 되는 것 같다.


참, 배에는 이거저거 금지된 것들이 많다.

일단 외부작업시 모든 귀금속류 (반지, 목걸이, 귀걸이 등등)은 빼고 해야하고, 

일회용 라이터는 사용 금지다. 지포나 성냥으로 사용해야 한다.

그렇지만 정작 담배피는 것은 허락된다. 만약에 담배를 못피우게 막았다가 숨어서 피우기라도 하면 큰 일이 나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술은 반입이 안된다. 뭐 붕타우에 있는 바들과 연합을 했다기 보다는 (물론 그런 생각도 종종 들지만) 

안그래도 단순한 인간들, 술 마시면 컨트롤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심심한데 그동안 들었던 질문에 대한 대답. 

그러니까 시추선에서는 누가 제일 높으냐? 와 시추선에도 병원이 있냐? 에 대한 대답


시추선에서는 선장이 제일로 높다. 라고 대답하고 싶지만 그게 의외로 구조가 복잡하다.

일단 시추선은 대부분의 경우 자기 힘으로 이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배가 끌고 다니기 때문에 일반적인 배와 조금 성격이 다르다.

때문에 서열을 살펴보면 OIM Manager가 1위, Tool Pusher가 2위, Barge Captain이 3위이고, 

여기다가 작업을 하게 되면 운영권자의 대표인 Drilling Superindentent가 약 2.5위의 자리에 놓이게 된다.


OIM 아저씨는 최고의 권력자로 모든 전체 과정을 총 지휘를 하고, 지금은 내 옆옆 방에서 일하면서 가장 좋은 4층의 독방을 사용한다. 부럽~

Tool Pusher 아저씨는 시추작업과 관련된 모든 일들에 책임을 지는 사람으로 OIM 아저씨와 같은 방에서 일하면서 두 번째로 좋은 독방을 사용한다. 부럽~. 

참고로 예전에 영화중에 지구로 운석이 떨어져서 그걸 폭파하러 가는 그런 영화가 있었는데, 거기서 브루스 윌리스가 맡았던 역할이 바로 이 tool pusher다.

글고 barge captain은 시추선을 끌고 다니거나 보급선이나 등등을 총괄하는 아저씨로 대부분 독방에서 일하고 건들면 안됀다.

Drilling superindentent야 뭐 geologist를 싫어하는 시추쟁이중에 젤로 높은 아저씨 들이다. 

보통 덩치가 크고 문신이 좀 있어주는 백인으로 미국이나 호주 출신이 많다. 

덩치가 작거나 백인이 아니면 도무지 애들이 말을 안듣는단다. 

흠- 바로 옆방에서 지금도 소리지르고 있으며, 역시나 독방에서 산다.


여기서 나는 그럼 어느정도의 위치에 있는가? 라고 물으신다면.

내 직업은 Sr. Geologist이고 뭍에서라면 지금 이 사람들이 하고 있는 작업을 디자인하고 계획을 세우는 뭐랄까 중요한 일을 하지만 

바다에만 나오면 시추쟁이들의 악날한 노력으로 회사의 representative officer 정도의 역할을 한다. 

나름 이것도 그리 낮은 직책은 아니라서 젤로 좋은 4층 2인실에 산다.


참고로 높을 수록 같은 방에 사는 사람수가 줄어들며, 사는 층이 조용하며, 비상시 탈출이 쉬운 곳에 산다. 

예전에 훈련생일적에 8인실에서 있었는데 아아- 장난이 아니다. 

참 2층 침대일 경우 아래층이 더 높다. 아님 나이 많아서 못 올라간다고 개기는 경우다.


그리고 두 번째 질문.

시추선에 병원이 있는가?

병원은 없다. 양호실이 있다.

그래서 닥터는 없고 메딕이 있다. 


스타크래프트 해보면 잘 알겠지만 메딕이란 군대용어로 위생병이고 학교 용어로는 양호선생이다. 

주요 임무는 전체 인원들의 건강유지, 간단한 치료 및 투약 정도로 진짜 큰 사고가 나면 헬기 불러서 내보낸다.

솔직히 별로 하는 일은 없다. 

작은 사고야 약바르고 밴드 붙여주면 되고 또 거의 잘 안일어나고, 큰 사고야 대충 어디 부러지거나 날아가거나 쓰러지는 건데 헬기 부르면 된다.


덕분에 메딕은 온갖 잡일들을 한다.

새로 들어오는 사람 이름표를 만든다거나 각 개인들 탈출정에다가 이름표를 붙인다거나 하는일이 솔직히 주 업무인 듯 하다. 

덕분에 말이라도 붙여주면 좋다고 한참동안이나 떠든다.



말을 붙이는 얘기가 나왔으니까 한 마디 하자면,

시추선에서 친구가 되는 것은 쉽다.

물론 아주 이상한 넘들이 있기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바다생활을 너무 오래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최근에 뭍에서 온 사람들은 관심의 대상이 된다.

지금 같은 방을 쓰고 있는 녀석도 나온지 2달정도 되었다고 한다. 인간적으로 시추선은 1달에 한 번씩은 교대를 해줘야 인간적으로 사는데 녀석은 뭐 약간 불쌍한 케이스다.

덕분에 나 붙잡고 이런 저런 얘기를 한다.

왜 자기가 늑대를 좋아하게 되었는가, 베트남 음식과 태국음식의 차이, 부인과는 어떻게 만났는가 등등. 

참고로 50대의 영국친구이다. 녀석이랑 얘기하다가 보면 짙은 바다냄새와 외로움이 느껴진다. 

뭐 난 그리 오래 있지 않을 테니까. 부디 녀석이 월요일 비행기로 나갈 수 있기를...


참 바다에도 엄연하게 빈부의 격차라는 것이 있다.

내가 일하고 있는 시추선은 물론 호화 여객선과는 상대가 되지 않지만 일하는 목적으로 돌아다니는 배들중에서 상류에 속한다.

이런 것을 구분하는 것은 침실상태, 음식상태, 놀이방 상태다.

일단 침실도 깨끗하고 룸서비스도 어느정도 제때 해준다.

예전에 일했던 모모 연구소의 모모 연구선은 다 자기가 알아서 하는 시스템이었다. 

음식도 나름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잘 준비되어 있고, 대장금 아저씨가 김치도 준다. 아무 때나 가도 간식과 커피는 대기하고 있으며 등등. 

참고로 우리 옆에서 일하는 현대친구들과 비교해보자면, 예를 들어 우리가 100% 오렌지 쥬스를 마실적에 녀석들은 오렌지맛 쥬스를 먹고, 

녀석들이 100%라도 먹으려고 할적에는 우리는 진짜 오렌지를 츕츕 거린다. 

후후- 불쌍한 넘들. 녀석들 우리배를 호텔이라고 부르면서 부러워한다.

이번 시추선은 새배라서 나름 문제도 있지만 시설 하나는 좋다. 

체육실도 넓고 사우나도 있다. 작년 것은 너무 작고 오래돼서 체육실도 주먹만하고 사우나는 꿈도 못꾸는 시스템이었다.

암튼, 바다위에도 빈부의 격차는 심하게 있다는 말씀...


뭐 바다에 온지 얼마나 되었다고 그런 얘기를 하냐면 할 말이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내년 4월까지 계속 시추선에 들락거릴 생각을 하니까 이런 저런 생각들이 줄줄 떠오른다. 

아아- 언넘이 시추선 승선수당은 없앤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