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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S Town Daily

착한 팀장의 일기

 

 

"막내야 이리 좀 와바바"

"왜염?"

"이거 봐봐. 니 휴가 사용률이 너무 낮다구"

"그게... 뭐... 여친도 없고, 그냥 회사 나오는게 좋다구여"

"시끄럿!! 이런 식으로 나가다가는 문제가 된다구. 당장 휴가를 가란말야!!!"

"휴가에 뭘 하구여"

"-_-* 소개팅을 하던 술마시고 자던 암튼 회사엘 나오지 말라구"

"넹"

 

막내를 내일부터 휴가 보내고 화상회의를 하나 끝내자 전화가 온다.

 

"앗 교수님. 오래간만입니다"

"어. 잘 지냈어?"

"넹. 형님도 잘 지내시져?"

"아 나야 뭐. 그나저나 아까 회의 시간에 니 얼굴이 보여서 전화를 했지"

"넹"

"그나저나 너네 요사이 신입사원 뽑지?"

"엇 어떻게 아세여?"

"울 아들이 지원했다가 떨어져서 알지"

"아아 -_-;;;;"

"너네 회사는 전공만 보면 되지, 무슨 시험을"

"아 그게... 그룹의 방침이라"

"크크크. 니가 죄를 지었으니 (왜여?) 술이나 사라"

"넹. 시간 잡겠습니다여"

 

전화를 마치고 (아아- 뭘 사드려야 하나) 직장내 성희롱 방지 교육을 듣고 있는데 저쪽 팀 막내가 쭈뼛거리면서 다가온다.

 

"무슨 일이에여?" (다른 팀 구성원들에게는 친철한 김부장)

"그게여. 글쎄 뭐랄까. 정부를 상대하는 아주 귀찮은 일이 생겼는데여"

"네에"

"울 팀장님도 못하겠다고 하시고 그 옆 팀장님도 눈을 피하셔서. 이렇게 팀장님께 부탁을 하러왔어염"

"그렇게 못하겠다고들 해여?"

"흑흑 팀장님이 마지막 희망이에여"

"아아 알겠습니다. 뭐 내가 하져"

"감사합니당"

 

하면서 녀석은 휘리릭 사라진다.

 

그렇게 얼추 일을 마치고 집에 갈까하고 정리를 하려는데 미친듯이 이메일들이 몰려온다.

뭔가 바라다 보니 오늘까지 입력해야하는 업무역량 중간평가 자기평가서다.

미리미리 올리라고 그렇게 말했는데 마지막 날 그것도 퇴근시간 지나서 보낸 것이다. 누군가 봤더니.... 막내다.

 

"얼시구. 얌마. 너는 술마시러 나가면서 팀장한테 이런 폭탄을 날려? 필살기냐?"

"그게염. 팀장님이 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하셔서 급히 올린 겁니다요"

"그게 아니자나. 어짜피 오늘까지 올려야 하는 거였다고"

 

녀석은 공연히 불쌍한 표정을 지으면서 동기들이랑 회식하러 샤샤삭 나갔고, 결국 이런저런 평가서를 작성했다.

요사이 시스템은 좋아서 일정 길이 이상으로 평가문을 작성해야 저장을 할 수 있다. 

 

결국 예정보다 조금 늦게 회사를 나와서 집으로 향했다.

약간 서늘한 느낌의 길을 걸어서 집으로 와서 어제 만들었다가 남은 된장찌개를 데워서 저녁을 먹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으음... 왠지 착하게 살아낸 하루였다는 그런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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