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틀사이공/음식

베트남 쌀국수 퍼(Phở)가 걸어온 길

이전에 베트남 쌀국수 중에 가장 유명한 퍼(Phở)의 기원과 역사 등등을 이야기했었는데, 이번에는 19세기에 하노이 인근에서 생겨난 이 쌀국수가 시대에 따라 어떤 모습을 띄었는지에 대한 포스팅입니다.

서민들의 음식인 퍼라는 쌀국수가 시대를 지나오면서 불려졌던 이런 저런 명칭들을 생각하면 베트남이 걸어온 모습이 투영되는 것 같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봐 주세요. 
네네 요사이 심각한 일들이 많아서 가볍게 가볍게 그러고 싶어요.
 
 
 

예전 하노이 스타일 퍼 간 (Phở Gánh)

 
퍼가 생겨난지 얼마되지 않은 1900년대 초에 하노이에는 전형적인 오랜 스타일의 퍼인 퍼간(Phở Gánh)이 있었습니다.
 

 
 
당시 홍강 유역은 주요 무역 중심지로 베트남 중부에서 온 물건들, 피쉬소스, 건어물을 실은 배들이 매일 도착하며 상업이 활성화되었습니다.
이와 함께 길거리 음식 노점상들이 생겨났고, 쌀국수는 휴대하기 편하고 푸짐하며 빠르게 먹을 수 있어 당시 인기 메뉴가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쌀국수는 대나무 장대 양쪽 끝에 두 개의 바구니나 상자가 얹혀 있는 퍼간 (Phở Gánh)이었습니다. 
한쪽에는 약한 불에 끓고 있는 국물이 담긴 냄비가, 다른 쪽에는 그릇, 젓가락, 재료, 그리고 식사를 차리는 데 필요한 도구가 담겨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퍼는 주로 밤에 판매되었는데, 노동자, 부두 노동자, 그리고 야간 상인들을 대상으로 했다고 합니다.
(참고로 요사이 퍼는 새벽-아침 음식이라는 느낌이 강합니다)
 

 
처음에는 상인들이 이동하면서 판매를 하였던 퍼간은 점점 인기를 끌자 상인들이 한 자리에서 팔기 시작을 했다고 합니다.
 
 
 

퍼 콩 응어이 라이 (Phở Không Người Lái)

 
시간은 흐르고 흘러서 베트남은 독립을 하고, 베트남 전쟁을 통해 1975년에 통일 국가가 됩니다. 
이렇게 쓰고 나면 모두 해피엔딩인 것 같지만 베트남은 전쟁 이후에 경제상황이 어려워집니다. 
아무래도 공산당 경제체제라는 것이 제대로 작동할리 없었고, 베트남은 배급제도를 통해 물건들과 식량이 나눠지고 있엇습니다.
통일 직후인 1976년에서 도이머이(Đổi Mới, 베트남식 개혁개방정책)가 시작되는 1986년까지 이런 상황이 이어집니다.
 

배급경제 시절의 국영상점 모습

 
 
이 때 등장한 쌀국수가 바로 퍼 콩 응어이 라이 (Phở Không Người Lái)입니다. 
뜻을 보면 ‘조종사 없는 쌀국수’라는 뜻입니다.
 
이 이상한 이름에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 중 하나는 1975년 이전 하노이 상공을 맴돌았던 미국의 무인 정찰기를 조롱하는 의미라는 설이고, 또 다른 것으로는 당시 쌀국수 그릇에 고기는 없고 육수와 면만 들어 있는 것을 조롱하는 의미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두번째가 신빙성이 있네요. 음흠. 베트남식 죠크죠.

그러니까 퍼 콩 응어이 라이 (Phở Không Người Lái)는 전쟁과 공산당식 경제의 산물인 셈입니다.
 
 
 

퍼 붕 (Phở Bưng)

 
아마도 제가 생각하는 ‘하노이 스타일의 퍼’가 바로 이 퍼 붕(Phở Bưng)일 것 같습니다.

베트남어로 "붕(Bưng)"은 "나르다" 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퍼붕(Phở Bưng)은 “나르는 쌀국수” 정도가 됩니다.

퍼붕을 파는 가게에는 테이블도, 좌석도 없습니다. 
손님들은 주인 아줌마에게 주문을 하면, 퍼를 전달해주는데, 이걸 들고 적당히 가게나 길거리에 놓여진 낮은 간이 의자 등에 앉아서 먹는 그런 스타일입니다.
추운 겨울 아침에 이렇게 퍼를 먹고 있으면 ‘아 이곳은 하노이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납니다.
 

 
 
아마도 이 퍼붕으로 현재 가장 유명한 집은 퍼 붕 항 쫑 (Phở Bưng Hàng Trống)일 겁니다.
원래 이 집은 항쫑(Hàng Trống)거리와 항봉(Hàng Bông)거리가 만나는 초입 길거리에 있었던 노점 쌀국수집입니다.
쌀국수를 받아들고 길거리에 쪼그리고 앉아서 먹어야만 했지만 맛이 좋아서 인기를 끌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2016년에서 2017년 사이, 하노이시에서 대규모 보도 정리를 시행하면서 이 쌀국수 식당은 주택가로 숨어들어가서 지금 위치에 있게 됩니다. 
두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좁은 골목길로 들어가서 표지판을 따라 오래된 나선형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가야 합니다.
이 쌀국수 식당은 찾기 어려운 곳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보통 아침에 영업하는 쌀국수 집들과는 달리 오후 3시부터 9시까지만 영업하고 10시에는 문을 닫는다고 하네요.
 

 
 
하지만 저는 이른 아침 쌀국수를 받아들고 모락모락 올라오는 김을 바라보면서 길모퉁이에서 먹는 맛이 더 좋을 것 같다는 느낌입니다.
 
 
 

퍼 따우 바이 (Phở Tàu Bay)

 
호치민시에는 퍼 따우 바이 (Phở Tàu Bay) 그러니까 “비행기 쌀국수”라는 이름의 쌀국수집이 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이 집을 가리켜서 사람들은 남쪽 스타일 퍼의 기원이라고 합니다.
참고로 저는 북쪽스타일보다 남쪽 스타일 퍼를 더 좋아한다지요. ^^
 
지금은 호치민시 10군의 리 타이 또(Lý Thái Tổ) 435번지에 있는 이 쌀국수집 주인인 팜 딘 년(Phạm Đình Nhân)씨는 원래 남딘 (Nam Định) 지방 사람입니다. 
참고로 남딘 지방은 하노이와 함께 퍼의 기원지라고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관련 포스팅).

1954년 이전에 년씨는 하노이 바찌우(Bà Triệu) 거리에 퍼년(Phở Nhân) 그러니까 '년의 쌀국수집' 이라는 인기 있는 쌀국수 노점을 운영했었습니다.
통일이 되면서 많은 북쪽 사람들이 남쪽으로 이주해 오게 되는데, 새로운 사업기회를 포착한 년씨는 가족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와서 쌀국수 가게를 열게 됩니다. 물론 퍼년(Phở Nhân)이라는 이름으로 열었습니다.
당시 남부 지방에서는 퍼(phở)가 아직 생소한 상황이어서, 그의 초기 고객 대부분은 고향의 맛을 그리워하는 북부 이주민들이었다고 합니다. 
 

퍼따우바이이의 1954년도 모습

 


지금 이름인 퍼 따우 바이 (Phở Tàu Bay)라는 가게 이름은 주인이 선물받은 조종사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사람들이 이걸 보고 퍼년이라는 원래 이름대신에 비행기 (모자를 쓴 주인의) 퍼 가게 라고 부르기 시작해서 이 이름으로 굳어졌다고 하네요.
 

요사이 모습

 
 

세월이 지나면서 조금 진한 국물과 이런저런 향채소들이 추가되는 새로운 남쪽 맛의 퍼가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요사이 우리나라에도 이런저런 퍼(Phở) 가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네네 좋은 일이죠. 특별히 저에게는 말이죠.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만들어진 퍼의 맛이나 문화가 다시 베트남으로 전해져서 앞서 살펴봤던 퍼의 역사에 “아아 그 부분은 한국이 기여했지” 라는 말이 나올까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