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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사이공/베트남 정보

빈랑열매와 구장 이야기

by mmgoon 2019. 1. 15.

동남아시아에는 베텔을 씹는 문화가 있습니다.
베텔을 씹는다는 것은 빈랑이라고 불리는 야자나무과 나무의 열매(aceca nut)를 덩굴식물인 구장(베텔) 나뭇잎에 싸서 씹는 것을 말합니다.
종종 석회가루 반죽을 조금 섞어서 같이 씹는데, 입에 넣고 씹으면 얼마되지 않아 붉은 액이 나옵니다.

빈랑나무는 말레이시아가 원산으로 25m 이상 자란다고 합니다.
한자어 이름은 빈랑은 귀한 손님(賓郞)이라는 뜻에서 나온 말인데, 

동남아시아와 중국 남부, 대만에서는 손님이 왔을 때 식후에 껍질과 함께 구장(베틀후추), 카다몬, 회향과 함께 싸서 씹는 문화가 있답니다.

오랜 기호품이기는 한데 환각성분과 중독성이 있고, 구강암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하네요. -_-;;;;;

네네, 오늘은 베트남 빈랑열매 이야기를 정리해봤습니다.

 

 

빈랑나무 열매와 구장잎

 

얼마 전에 베트남 결혼식에 대해서 포스팅을 했었는데 여기에서 잠깐 약혼식에 빈랑 열매가 쓰인다라는 얘기를 했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이 약혼식을 할 때 빈랑열매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알려주는 전설이 있습니다.

 

 


오랜 옛날, 딴(Tan)과 랑(Lang)이라는 형제가 있었는데 나이는 달랐지만 완전히 생김새가 판박이었다고 합니다.
이들의 아버지는 이 지역에서 가장 크고 키가 큰 사람으로 흥(Hung) 왕실로부터 까오(Cao, 高)라는 이름을 하사받았고, 
이후로 이 가족은 한자 高자를 가문의 문장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형제들이 자라면서 부모들은 돌아가셨는데, 덕분에 이들 둘은 서로를 더더욱 의지하게 됩니다.
형제의 아버지는 죽기 전에 형인 딴을 루(Luu) 가문의 도사에게 맡겼습니다. 
이 후 딴은 도술를 공부하게되고 동생인 랑은 형을 따라 루 가문으로 갑니다.

루 가문에는 나이가 같은 딸이 하나 있었는데, 두 형제를 모두 사랑했죠. 응?
결국 그녀는 형쪽에게 마음을 주었고 루 가문은 딴과 정혼을 합니다. 
이들은 결혼을 해서 새 집으로 이사를 가고 동생 랑도 같은 집에 살게 됩니다. (에궁 신혼인데 눈치도 없지)

결혼 후에도 딴은 동생을 아꼈지만 아무래도 결혼 전만 못했죠.
덕분에 랑은 외로움과 슬픔에 잠겼습니다 (아아- 울 형제와는 사뭇 다른 스토리네요 -_-;;;)
어느 날 두 형제는 야외에 밤 늦게까지 나갔다가 랑이 먼저 집으로 왔는데 형수가 형인줄 알고 반갑게 맞이했고, 이 장면을 형이 봅니다.
이 후 형은 동생을 차갑게 대하기 시작했고 (아 속 좁은 인간) 동생은 마음의 상처를 입고 집을 떠나기로 마음을 먹죠.
어느날 어두운 이른 아침에 랑은 집을 떠나 방랑을 시작하고 며칠 후 물살이 빠른 강을 만나게 됩니다.
그는 강을 건널 수 없게 되자 강가에 앉아 머리를 묻고 울기 시작했고 밤새 울던 동생은 돌로 변합니다.

딴은 동생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고, 자신의 잘못으로 동생이 집을 나간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그는 아내에에 말도 하지 않고 동생을 찾아 나섰죠.
며칠 후 딴도 동생이 울던 강가에 도착을 했습니다.
강을 건널 수가 없어서 강가를 따라서 걷던 그는 돌로 변해버린 동생을 찾습니다.
딴은 눈물이 마를 때까지 울다가 결국 죽어서 돌 옆에 나무로 변합니다.

딴의 아내는 남편을 기다리다 결국 남편을 찾으러 나섭니다.
그녀는 나무 옆에 앉아 울다가 결국 죽게되고 나무를 감고 오르는 덩굴이 됩니다.

형제와 딸이 없어진 것을 안 루 가문의 도사들을 이들을 찾으러 나섰고, 
이들이 변한 돌과 두 나무를 발견하고는 '착한 형제와 신의있는 부부'의 사당을 지었습니다.

어느 해 심한 가뭄이 들어서 모든 식물들이 말라죽었습니다.
하지만 돌 옆에 있는 두 나무는 싱싱함을 유지했답니다.
흥(Hung)왕이 이를 조사하러 행차를 해서 마을 사람들에게 물어 유래를 듣고는 감동을 하고
사람을 시켜 나무의 열매를 따서 맛을 보았습니다.
열매의 맛은 너무 셔서 먹을 수 없는 듯 했지만 덩굴의 잎으로 싸서 씹으면 신비한 맛이 느껴지면서 달고, 향기롭고, 톡쏘는 맛을 내었습니다.

그러다가 왕이 씹고 있던 과일을 돌 위에 뱉자 핏빝으로 변합니다.
이를 본 왕은 신하들에게 2종류의 나무와 돌을 다 가져오게 하고 이를 같이 씹어봅니다.
그러자 향기로운 술들이 가득한 맛이 나고 입술을 붉게 불들고 얼굴은 붉그스레 해졌습니다.

왕은 '참으로 신비하구나'라고 하면서 백성들에게 이 나무를 길러서 약혼식을 할 때 사용해서 부부를 기억하도록 명했습니다.
이 때부터 베트남이 빈랑열매를 씹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형이 변한 나무가 빈랑나무가 되었고, 
부인이 변한 덩굴이 구장이 되었고,
동생은 석회암이 된 것이죠.
네네 빈랑열매를 씹을 때에는 구장잎에 싸고 돌가루 정확히는 석회가루를 추가해서 씹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면 이가 검게 변하게 되는데, 이 후 이를 검게 물드리는 것이 베트남에서 유행이 됩니다.

물론 설화이기는 하지만 적어도 흥왕조 시절부터 빈랑열매를 씹고 이를 이용해서 이를 검게 물드리는 관습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흥왕조 시절과 안증붕(An Duong Vuong)시절의 묘들에서 고고학자들은 검은 색으로 치아를 물드린 것과 함께 
빈랑열매와 구장이 같이 매장되어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20세기초 빈랑열매를 씹어서 이를 검게 물드린 북부지방 여인.

  

요사이도 노인 중에 이를 검게 물들인 사람이 있습니다.

 

치아를 검게 물들이는 관습은 베트남 마지막 왕조인 응웬(Nguyen)왕조까지 2000년이 넘게 이어집니다.
현재 이 관습은 과거의 것이 되었지만 아직도 빈랑열매의 의미는 아직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약혼식에 빠지지 않는 빈랑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