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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청씨 아저씨네 회사 이야기




전화가 왔다.


"안녕하십니까~ 청입니다"

"아이고 사장님"

"우리 김선생 잘 있었습니까"


김일성 종합대학에서 학위를 한 베트남 사람인 청씨 아저씨는 예의 그 북쪽 사투리같은 한국말로 힘차게 전화를 한다.

내용인 즉슨, 아마도 올해 작업물량에 대해서 새로 입찰하지 않고 그냥 작년 비용으로 줄테니까 계약 연장을 하자는 목적으로 

(실제로는 이런 말은 안했지만) 호치민을 방문할 예정이니까 술마시자는 얘기다.


아아- 

속이 말이 아닌데, 청씨 아저씨가 온다.

분명히 만남과 동시에 엄청난 양의 소주 혹은 보트카를 마셔야 하는데....

청씨 아저씨는 맨날 자기가 나를 접대한다고 해놓고는 주로 내가 돈을 내고 (흑흑-), 내가 본인을 즐겁게 해줘야 한다. 

그리고 나서 본인은 '접대'를 했다고 생각하는게 문제다 -_-;;


이런 전화를 받고 떠올리는 이 청씨 아저씨 그리고 그의 너무나도 베트남스러운 회사와 연을 맺게된 그런 이야기.



그게 한 2년전 이야기 이다.

울회사 담당자가 휴가를 간 사이에 급하게 일을 하나 처리할 것이 생겨서 갑자기 일 하나를 떠맡게 되었다.


짜증은 열라 났지만 하는 수 없이 (샐러리맨의 비애-_-*) 입찰을 위한 시장조사 공고를 냈더니 몇개 회사들이 응찰을 했다. 

뭐 돈도 크지 않고 그래서 빨랑 처리하려고 봉투를 뜯었는데 특이한 회사 하나가 나왔다.


"야, 이게 뭐야?"

"왜염?"

"이넘들 자기 소개서랑 기술사향이 달랑 베트남어랑 러시아어로만 되어있어"

"그렇군여"

"이쒸- 우리랑 장난치자는 거야"


그러고 있는데 브로슈어 한 가운데서 왠 A4 종이 하나가 나왔다.


"어? 이건 뭐야?"


하얀 종이 위에 손으로 쓴 한글이 보였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청이라는 사람입니다'


로 시작한 편지의 내용은 뭐랄까 기술적인 내용이라기 보다는 그냥 '한 번 일을 해볼테니 맡겨주세요' 하는 식의 내용이었다.


그 편지 덕분에 그냥 짜르려다가 입찰에 붙여줬다. 

게다가 베트남 직원의 말로는 비록 주로 하노이쪽에서 일을 하지만 이 회사가 나름 실력있다고 했기 때문이다.


입찰결과....

청씨 아저씨네 회사가 뽑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다른 회사들은 대부분 이 청씨 아저씨네 장비와 인력을 재하청을 줘서 사용한다고 한다.


결국 그 동안 영어를 못하고, 전혀 국제화가 안돼서 재하청 업체로 살아가던 청씨 아저씨네 회사가 이번 입찰을 낸 울 회사가 한국회사라고 하니까, 

영어를 안하고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박사를 하신 사장님의 한국어 언어실력 하나만 믿고 용기를 내서 입찰을 한 것이다.


낙찰 결과 편지를 날리자 청씨 아저씨가 2명 (부사장-베트남어만 가능하지만 사람이 좋고 술 열라 잘 마심, 

직원-유일하게 공식적으로 영어를 하는 것으로 알려진 녀석. 실제로는 회화 이외의 영어는 전혀 하지 못한다)을 데리고 울 회사를 찾았다.


"김선생이 누구십니까?"

"네 접니다"

"아하하하- 반갑습니다"

"아아 이번에 낙찰된거 축하드립니다. 일단 계약서 초안을 드렸으니 검토하시고..."

"그러시져. 그리고 오늘은 자- 갑시다"

"가다녀?"


그리고는 나와 울 부장을 끌고가서 점심시간부터 엄청난 양의 보드카를 마시고는 저녁식사 시간이 되자


"제가 오랬동안 한국술의 맛을 잊었더랬습니다"


하더니 한국식당에 가서 다시 소주를 몇병인가 마셨다.


이 와중에 북한에서 공부하시던 얘기, 그동안 재하청 업체로 살면서 고생한 얘기 등등을 들을 수 있었지만.... 

엄청난 음주로 인해 완전히 기억은 지워져 버렸고, 

다음날 우리 부장은 결근, 나는 지각을 했고, 

진저리를 치는 우리 부장은 앞으로 청씨 아저씨네 회사 모든 일을 내게 전권이양을 했다.


그 이후 용역은 청씨 아저씨의 말대로 참 잘 진행이 되었다.

베트남에 경험도 많고 비록 영어는 전혀 안돼지만 똑똑한 기술자들이 많이 있어서 생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문제는...


그러니까 공식적으로 영어를 한다는 그 녀석의 영어실력이 형편없는 관계로 우리랑 맺은 계약서를 충실하게 읽지 못해서


"어엉-"

"왜?"

"전 이런 내용이 있는줄 몰랐어요"

"그런 말이 어디있어!"

"엉엉엉. 저 사장님한테 맞아죽어여"


바보같은 녀석이 계약서 제대로 않읽고 엉뚱한 일을 저질러서 일부 돈을 못받게 된 것이다.

결국 불쌍하기도 하고 (외국사랑 처음 일하지 않는가), 귀찮기도 해서 (녀석 매일 전화걸어서 징징거린다) 걍 지급하기로 했다.


그러고 있는데 또 전화가 왔다.


"엉엉엉"

"왜그래 돈 준다니까"

"그거 말구여. 저희 이것도 일했는데 왜 돈을 안줘여"

"야! -_-* 계약서 바바. 내가 하달한 용역에 대해서만 지급한다고 했자나. 내 용역지시서 봤어 안봤어?"

"엉엉. 넘 복잡해서 안봤어여. 그냥 늘 하던대로 한거에여."

"그게 말이 되냐?"

"엉엉. 애덜이 파도치는데 목숨걸고 했단 말이에여"

"야. 이건 회사간에 계약이야. 목숨걸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지"

"엉엉엉. 사장님한테 맞아죽어여-"


결국 일종에 가내수공업 같은 청씨 아저씨네 회사를 떠올렸고, 

불쌍한 녀석들이 파도랑 싸우면서 버둥댄게 떠올라서 (난 마음이 약하다) 걍 지급을 했다.


"알간? 이제부터 이런식으로 함 사장한테 죽기전에 나한테 죽을줄 알아!!!"

"넹"


그리고 청씨 아저씨네 일은 완전하게 잊고 지내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청입니다. 내 김선생님 얘기 다 들었습니다"

"무슨?"

"참으로 남자십니다"

"네?"


결국 주제인즉슨 그 공식영어 보이 녀석이 회식자리에서 술마시다가 나와 일어난 일을 술기운에 불어댔고, 

이 얘길듣고 청씨 아저씨가 감동을 먹은 것이다.


이 일 이후로...

청씨 아저씨는 자기회사 애덜한테 나한테 잘하고 깍듯하게 모시라고 엄청나게 겁을 주었고, 덕분에 나는 그 회사에서 괜찮은 인간으로 소문이 났다.

이 이후 청씨 아저씨가 호치민에만 오면 울 회사를 찾아오는 바람에 나는 매번 끌려가서 술을 마셔야 했다.


이상하게 한 번 맺은 인연은 그 후에도 몇번인가 내가 조금 급할적에 청씨 아저씨가


“괜찮아요. 내가 김선생을 믿지…”


하면서 계약전에도 애들 보내주고 배띄워주고 해서 도움도 받았고,

몇몇 친구녀석들에게 소개도 해줘서 드디어 청씨 아저씨네는 당당 회사설립 이래 최고의 수익을 올리게 되었다. 

뭐 그래봤자 그리 크지 않지만…-_-;;


이런 승승장구를 올리던 청씨 아저씨네는 이후 붕타우 사무소도 개소하고 

(비록 사무소래야 붕타우 가는 길가에 작은 사무실과 안테나들 그리고 그 사이에 토종돼지들이 뛰어노는 그런 곳이지만), 

회사 이름도 모모 인터내셔널이라고 고치고, 영어로 브로슈어도 만들면서 국제화의 기치를 내걸게 되었다.


이런 청씨 아저씨네지만 아직도 경영은 그야말로 75년 베트남 통일직후와 바뀌지 않아서 

계약보다는 인간관계에 촛점을 맞추어 일들이 진행되고 있으며, 현재 처장으로 신분상승한 영어보이녀석의 실력은 아직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지난번에 바다에서 20여일이나 고생시킨 것이 미안해서 청씨 아저씨내 애들 배에서 내리는 날 붕타우에 내려가 밤 새 술을 사준적이 있다. 

(흑흑- 내 쌩돈이 깨졌다)

12시가 다 되어가는데, 청씨아저씨가 술집으로 왔다.


“아니? 여길 어떻게?”

“이거 김선생님이 술자리를 베푸신다고 한 걸음에 왔습니다”


그리고는 다음 날까지 신나게 먹어대고 완전히 뻗어버린 적이 있다.


나도 청씨 아저씨 나이가 되서도 그렇게 사람을 믿고, 따뜻한 마음으로 술 한 잔 하겠다고 

하노이에서 비행기타고 호치민와서 다시 2시간을 차을 몰고 붕타우까지 올 그런 여유를 가질 수 있을까?


청씨 아저씨네 회사를 보면서 요사이 ERP인지 뭔지 한다고 수선을 떠는 우리 회사와 자꾸 비교하게 된다. 

뭐가 나아진다는 건지…


암튼 청씨 아저씨 도착 3시간 전이다.

겔포스나 챙겨야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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