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뭔가 삑삑 거리길래 일어났더니 알람이었다.
판다군이 알람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하는 순간이었다.
대충 씻고, 사무실에 나가서 밤새 진행상황 보고, 아침을 먹었다.
예전에 처음 입사해서는 막내라고 늘 밤에 일하고 낮에 자는 생활을 했었는데 이제는 밤에 자고 낮에 일어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았다.
흠흠 입사 10년째인데 뭐 하는게 있는지 -_-;;;
7시 아침 회의.
“자자, 새로운 geologist 입니다요”
하면서 시추감독 녀석이 우리 wellsite geologist를 소개했다.
“그리고 여기도 geologist 이고요”
하면서 나를 소개한다.
솔직히 시추쟁이녀석들 우리 geologist를 싫어한다.
녀석들은 우리가 지정해준 위치에서 우리가 지정해준 깊이만큼 파내는 역할을 수행하는데
문제는 이 ‘땅파기’에 심취한 나머지 왜 그곳에 구멍을 뚫는지를 종종 잊어버리고는 시추를 통해 전체 구조를 평가하는 작업 무엇보다
‘여기다가 이만큼’ 이라고 알려준 우리를 필요악쯤으로 여긴다.
쉽게 말해서 우리는 머리고 녀석들은 몸인데 몸이 머리를 싫어하는 경우다. 흠흠-
이런 이유로 인해서 녀석들은 우리 모두를 geologist라고 부른다.
하아-
이 세상에는 trainee geologist로 시작을 해서, Jr. geologist, geologist, wellsite geologist, Sr. geologist, geoscientist,
team leader, exploration manager 등등 수 많은 레벨이 존재하는데, 녀석들은 이걸 싹 무시하는 것이다.
하기사 우리도 몽땅 시추쟁이라고 부르지만.
암튼, 아침회의에서 간단하게 발표를 하고 호치민 오피스와 회의를 기다린다.
아- 할 말 별로 없는데 뭐라고 하지...
화장실에서 혼자만에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시추선 전체에 방송이 울린다.
‘미스터김 지올로지스트 빨랑 컴퍼니맨 방으로 튀엇’
아, 항상 이럴때만 뭔 일이 터진다.
급히 방으로 돌아가니까 울 부장이 난리를 쳤나보다. 분위기가 까칠하다.
“네 부장님 전화하셨나여?”
“아아, 난리났어 빨랑 오늘 뱅기타고 사무실로 튀어왓”
“저기염 부장님 오늘은 뱅기 없고 내일있는데염. (글고 전 휴가차 왔답니다. 부끄~)”
“아아 난리다 난리....”
결국 부장님은 모모모에 대한 모모분석을 다시 내가 해주기를 바란다는 내용인데,
문제인 즉슨, 나는 여기있고 그 일을 하려면 모모모모 프로그램이 필요한데 여기 없고, 뱅기는 내일이나 오고,
더더군다나 나는 그 일을 절대로 다시 하고 싶지 않다 (부좡님 솔직히 그 모모모모 프로그램 제 놋북에 깔려있어염. 용서를 -_-a)
“그러게 첨부터 제 말대로 처리를 했어야 했다니까여”
“아아 그러게 말야. 공연히 양넘 말 들어가지고”
부장님은 소위 석유업계 2세대라서 1, 2세대가 보여주는 공통점 그러니까 ‘양넘이 하는 말이 무조건 맞다’ 하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뭐 기술없는 세대가 가진 딜레마다.
그러다가 저번주에 나랑 양넘이랑 붙었었는데 날 무시하고 양넘 의견대로 일을 처리해 버린 것이다. 흠흠-
영어 좀 잘한다고 (조금?) 나보다 월급 5배나 많다고 (흑흑) 녀석의 말을 들어주다뉘.
조금 있자 양넘 그러니까 저번주에 내 의견을 무시하고 유창한 영어로 소장과 부장을 꼬셔서 밀어부쳤던 녀석이 열라 메일을 보낸다.
‘아아, 내 판단 착오였어’
‘그러니까 이쪽에서 당신 의견대로 시도를 해볼테니까 자료를 좀 보내주면’
‘오케이 다른 자료는 필요없고 그 왜 저번주에 보여준 그 표라도 어떻게’
‘이 일은 베트남 정부쪽이 오늘까지 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라서. 반드시 어쩌고 저쩌고’
한국 사람은 이성적이지 못하다.
뭐 나도 이번 경우는 그렇고 싶어서 내가 내려가는 그날까지 자료는 송부해주지 않을 셈이다.
뭐 처음부터 내 아이디어였고, 그 아이디어가 무시되었는데 좋은 일 해줄리 만무하다.
월요일에 가서 처리해주면 되니까 뭐.
바보같은 넘 잘못했다고 그러고 술 사준다고 했으면 쉽게 처리될 일을...
밤이다.
밤이 되었다고 해서 별다른 일이 없기 때문에 계속 일을 한다.
태풍으로 발달하려는 열대성 저기압의 영향으로 엄청난 바람과 비가 난리를 친다.
조금전에 밖에 나갔다가 모자가 날아가는 줄 알았다.
잽싸게 DD녀석과 얘기를 끝내고 휭하고 들어왔는데도 옷이 흥건하게 젖었다.
내일 비행기로 나가야 하는데 과연 뜰수나 있을지 걱정된다.
하기사 나가야 뭐 할게 있나. 그냥 여기서 버티지 뭐.
밥을 먹으러 내려갔더니 주방장이 아는척을 한다.
작년 시추때 그녀석이 또 왔다.
“하이 미스터킴. 김치주까?”
“왠 김치?”
“내가 직/접/ 담았지. 나 대장금이야 하하하”
하면서 한국사람들 주려고 담갔다는 김치를 한 접시 준다.
그래서 저녁은 밥과 햄버거 스테이크와 김치를 베트남 생선국과 먹었다.
나름대로는 녀석의 성의여서 고마웠지만 사실 작년 시추때 음식이 하도 별로라서 이번에 케이터링 업체를 바꿨는데,
녀석이 그 새 업체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결국은.... 운명인 것이다... 아아-
골프 500년의 역사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최종 보고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판다군이 내일도 5시에 잘 깨워줘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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