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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호흡짧은글

술집여자와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우리는 누구나 실수를 한다.

실수의 문제는 그걸 범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범했다는 사실을 오랜기간 마음속에 가지고 있다는 것일 수도 있다.


여기까지 글을 쓰고 나서 생각을 하는 것은 나는 참 영향을 받기 쉬운 그런 인간이라는 것이다.

얼마전에 sex and the city 디비디 전집을 구입하고 그걸 심심하지 않게 보고 있노라니 

뭔가 글을 쓰려고 컴퓨터 앞에 앉으면 타타탁 하면서 맥 노트에서 위와 같은 식으로 글을 써야만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암튼 지금 나는 조용한 호텔방에 앉아서 사람들을 기다리고 있다.

이제 약 한시간 반 이후가 되면 이번 47차 모모 모임에 참가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칠 예정이다.

어떤사람은 트윈을 쉐어할 것이고, 님들은 알아서 free upgrade를 해드려야하고, 어떤 사람들은 음식이 안맞아서 짜증을 낼 것이다.


그렇지만 참으로 오래간만에 주어진 이런 시간이다.

시원한 호텔방에 앉아서 회사것이지만 조용한 노트북으로 글을 두드리고 있노라면 

착착착하는 키보드 소리가 머리속에서 이런 저런 지루함들을 빼어가는 느낌이 든다.


요즈음은 음악을 영 듣지 않는다.

머리속에 뭔가 하얀 것들이 둥둥 떠다는 그런 지경이 되어 버려서 음악까지 머리속에 둥둥 떠다닌다면 

]아에 아무런 그러니까 최소한의 돈을 벌어들일 생각을 못하게 되어 버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왠만하면 손이 가지 않는다.

이러다가 다 죽이고 요요마가 연주하는 바하의 무반주 첼로곡이나 듣게되는 그런 지경에 빠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솔직히 지금 요요마씨가 연주하는 바하님의 무반주 첼로곡이 나오고 있다)


내가 만일 소설가라면 그래서 아마도 다음 주 정도까지 약 20페이지 분량의 글을 써야만 

가난한 나의 생활에 최소한의 먹을 것이라도 떨어진다면 지금 나는 무슨 글을 쓸까.

물론 나는 소설가가 아니고 20페이지 짜리 글이라기 보다는 시추공최종평가보고서를 쓰는 그런입장이지만 글쎄 진부한 사랑 얘기가 아닐까.


진부한 사랑얘기.

요사이 절대로 좋아지지 않는 것 또 하나는 티비에서 나오는 사랑얘기들이다.

다큐멘터리도 즐겨보고, 역사물도 보지만 이상하게 이사람이 저사람을 좋아하지만 말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절대로 애틋하지 않게 되어버렸다. 

때문에 소위 애가타는 사랑얘기는 계속적으로 내게 지겨움을 준다.


그렇게 사랑에도 감동받지 않고 이미 남의 일이나 세상의 풀조각처럼 느껴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나도 현실적인 공복을 극복해야하는 소설가라면, 

그러니까 직업이 Sr. Geologist인줄 알고 있었는데 어느 날 잠을 깨보니까 나는 실제로 소설가이고 

내게 밀려드는 공복감과 20페이지짜리 저작의 무게를 피해잠을 잔 것이라면 시작되는 소설은....




내가 t를 만난 것은 그러니까 신나게 술을 마시고 2차로 찾아간 술집이었는데, 

이상하게도 얼굴과 몸이 전혀 조화가 되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옆자리에 앉게한 것이 처음 만남이됬다.


나는 아까도 밝혔지만 실제로도 그리 감각적인 작가가 아니기 때문에 더군다나 이런 일들이 진행되는 꿈속에서는 

끊임없는 레포트를 채워나가는 기술자였기 때문에 철저히 t를 술집여자로 대한다.

이건 뭐랄까 따뜻하게 볼을 쓰다듬어준다든지 '녀석' 하면서 머리를 툭 쳐준다든지 하는 행위가 없이 그냥 입사 10년차 샐러리맨이 

익숙해진 관계형성으로 줄건주고 받을건 받는다는 식의 일종의 사회적으로 약속된 만남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둘이 옆에 앉은지 약 18분정도 지나고 나서 t는 공연히 나를 좋아하기 시작했다.

소위 말해 '이유가 없이 좋아진' 그런 경우가 발생한 것이다.

물론 t는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마음속에는 고향에서 심장이 안좋아진 어머니라든가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는 아버지라든가 

찾을 수 없는 남동생이 자꾸 생각나면서 뭐랄까 진부하고도 짜증나는 인간관계에 다시 한 노드가 열리는 그런 느낌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고 이런 식으로 만난 관계에서 뭐라 달리 행동할 것도 없으므로 술집여자가 손님에게 의례하는 정도의 이쁜짓을 한다.


그리고 헤어지고 다시 접대를 위해 그 술집을 찾은 나는 머리모양이 바뀌어서 t를 알아보지 못하지만 t를 옆자리에 앉힌다. 

t는 별로 반갑지도 않았지만 아는 사람이고, 솔직히 어제는 정전이 되는 바람에 너무 더워서 숙면을 취할 수 없어서 힘도 없고, 

또 이사람은 이만큼 이상 귀찮은 행동을 안했다는 생각에 마음속에 약 10%정도 기쁜 마음이 생겨서 살며시 웃었다.


이런식으로 여기까지 상황묘사라든가 주변인물에 대한 정리라든가 하면 16페이지 정도 채웠을 것이니까 그 이후의 과정으로 나가자면


문득 t는 "기쁜데 전혀 즐겁지 않아"라는 말을 하고 나는 "어?어"라고 술취한 사람의 정상적이 대답을 했다.

일주일이 지나 t는 고향에 잠시 다니러가고 나는 다시 출장을 가고 일을 마치고 전세계 어디나 비슷한 이미지가 생각되는 호텔바에서 

세병째 맥주의 1/3정도를 마시는 동안 t가 나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된다.


여기서

나는 갈등을 하게된다. 

이대로 문득 떠오른 이런 생각을 계속 이어나가다가 출장이 끝나고 지금까지와 비교해서 어느 정도 제대로 된 정신으로 그 술집을 다시 찾아가 볼 것인지

아니면 지금 손에 떨리듯이 남아있는 2/3의 맥주를 더 마셔버리고 오는 실낯같이 흔들리는 이 생각을 다시 무의식 혹은 무인식의 저편으로 밀어 넣을 것인지




20페이지가 다 채웠으므로 이 소설을 끝.

나의 공복도 이정도로 진부하게 채워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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