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에서 휴대폰으로 스네이크바이트를 하다가 생각이 난건데 휴대폰 그러니까 공업용이 아닌
일반 사람들이 이런식으로 가지고 다니는 휴대폰의 탄생 배경에는 무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이제 산업용으로만 사용되던 휴태폰을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민간에게까지 확대를
하자"라고 사뭇 근엄한 회의실에서 결정된 것이 아니라 예를 들자면 이런 것이다.
80년대 어느 날 이야기이다.
일본에 굴지 휴대폰 메이커인 나카미치 전자 신제품 개발실에 다시는 우치다 타무라씨는 한마디로 게임광이다.
그는 물론 집에서야 패미컴과 MSX2를 가지고 충분한 오락을 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딱딱한 일본
회사에서 보내는 하루종일에 시간이 너무 지루했다. 목구멍에 풀칠을 위해 회사엘 다니지만 하루
종일 그 전자오락의 세계와 떨어져 사는 고통이 너무 심했는데...
그러던 어느 날 그는 아키하바라에서 목돈을 투자해서 산 휴대용 게임기를 회사로 가지고 왔다.
사뭇 은밀한 미소를 띄우고 근무를 하던 그는 어느 정도 아침 분위기가 가라앉자 게임기를 포켓에 넣고 화장실로 가서 문을 잠근 후 게임을 신나게 즐기고 있었다.
물론 소리는 나지 않게 사운드 오프 상태로 게임에 임했지만 흥분해서 버튼을 누르는 소리라든가 게임에 빠져 간간히 터져나오는 신음소리까지는 막지를 못했다.
더군다나 눈치가 빠른 상사 하나가 불행히도 그 시간에 화장실에 왔다가 그 소리를 들었다.
오후에 상사에게 불려간 타무라는 이상한 얘기를 들었고 그걸 변명하기 위해서 사실을 밝힐 수 밖에 없게 된다.
상사에게 잔뜩 혼이 나고 주변 동료들로부터는 '뭐야 저 이상한 녀석' 이라는 눈길을 한참동안이나 받게된 타무라씨는
우울한 마음을 달래려고 술을 한 잔 걸치고 집에 들어오는 길에 편의점에서 맥주를 몇캔인가 사다가 창문 너머로 달을 보면서 맥주를 마시게 된다.
그러다가 문득 그는 큰 결심을 하게되는데....
다음 날부터의 타무라씨는 이전의 타무라씨가 아니었다.
언제나 제일 먼저 출근하고 제일 나중에 퇴근을 했다.
그가 내는 레포트는 누가 보더라도 공이 많이 들어갔고 신중했으며 꼼꼼했다.
또 회사 일이라면 개인적인 모든 일들을 제쳐놓고 척척 해내면서도 사람들과는 사뭇 좋은 관계를
착실히 쌓아나갔다.
이런 생활을 하는 타무라에게 다음번 승진이 떨어진 것은 누구나 납득할 만한 사건이었고,
이후에도 타무라의 열심은 계속되어 소위 회사안에서 '젊고 떠오르는 인물'이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기획회의에 평소보다 더 말숙한 차림의 우치다 타무라 과장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이번엔 어떤 기획안을 가져왔을까?' 하는 눈치를 서로 주고받았다.
곧 이어 타무라씨는 제안서를 각 임원들에게 돌렸고 잠시후 불이 꺼지고 슬라이드가 들어왔다.
"아니 이것은!!"
"오옷!!"
"으음..."
등의 반응이 이어지고
약 2시간에 걸친 마라톤 토론과 이후 수십차례의 회의와 발표를 거쳐 나카미치 전자는 공식적인 언론 발표를 하게 된다.
< 보도자료 >
- 나카미치 전자 젊은층을 타겟으로 한 휴대폰 개발 -
나카미치 전자(사장 우치다 나카미치)는 금일 오전 기자회견을 열어 자사에서 개발할 차기 휴대폰의 타겟이 젊은층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중략) .... 새로운 디자인과 여러가지 부가기능으로 무장하여 ... (중략) .... 이번 나카미치 전자의 과감한 결단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을지 주목된다.
개발실 타무라 과장이 제시안 안은 곧바로 기술실의 검토를 거치고 디자인실과의 협조 및 젊은층
성향조사 보고서를 참조하여 컨셉디자인과 가제품 제작이 이루어졌고, 다시 재검토와 보완을
수차례 거치는 정말로 바쁜 일정을 보내고 나서 6개월 후 크리스마스를 타켓으로 시장에 출시
되었다.
타무라씨는 물론이고 모든 나카미치 전자의 직원들은 이번 신개발품의 성공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반응을 살펴봤다.
그 결과 이 젊은이용 휴대폰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놀라운 것이어서
나카미치 전자는 휴일을 반납하고 생산라인을 돌려야 했고 판매부서는 쏟아지는 주문전화에 기쁜 비명을 지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개인용 휴대폰의 정신없는 시간이 지나고 이제는 너도나도 모두 휴대폰을 가지게 된 21세기 어느날 나카미치 이사방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다.
"음, 들어와"
"이사님, 이 제품이 이번에 출시된 NHP-MX2000 입니다."
"어디 볼까"
"이번 제품의 주안점인 경량화와 64화음의 음질 그리고 무선 인터넷 기능이 예상보다 더 잘 살아난 것 같습니다."
"으음 정말 잘 만들었군. 이 정도라면 이번 크리스마스 시장도 문제가 없을 듯 하군. 수고했어. 나가 보게"
"네 알겠습니다. 그럼 생산라인에 본격 생산 시작을 알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래 부탁하네"
부하직원이 나가자 나카미치 이사는 다시 휴대폰을 집어들었다.
예전에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정교한 모양이었다.
잠시 이리저리 감상을 하던 나카미치씨는 메뉴버튼을 여러차례 눌러서 게임 모드로 전환하고는
몇개의 게임을 사뭇 신중하게 플레이했다. 그리고는...
"으음, 다음 버젼에도 개선할 점이 몇가지 있군"
이라고 말을 남기고는 짐을 꾸려 퇴근을 했다.
퇴근하고 식사를 마치고 나머지 가족들이 다 잠이든 다음에 나카미치씨는 서재로 올라가서 휴대폰 게임을 좀 하다가 잠이 들었다.
꿈속에서 정말로 오랬만에 예전 친구들인 패미컴과 MSX2를 만나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난생처음 구입했던 휴대용 게임기가 다가오는 것을 봤다
"어이 이봐~" 나카미치씨가 불렀다.
"아아 안녕! 오래간만이군" 휴대용 게임기가 대답을 했다.
"이리 와서 한 잔 같이 하지"
"그럴까"
이렇게 모인 4명은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맥주를 기울였다.
그러다가 문득 게임기 중에 하나가 물었다.
"자넨 요새 무슨 게임을 하지?"
"스네이크바이트"
"역시"
"역시"
"그런식의 게임이 실제로는 정말 재미있는거지"
"그런데 나카미치, 요사이도 회사에서 게임하다가 혼나고 그러는거야?"
"무슨~ 이제 나는 개발이사라고. 내가 게임을 하고 있으면 신제품 개발이나 품질검사쯤으로 생각하지"
"그거 잘 되었군!!"
"그래. 여기까지 오기 위해서 참 많은 일들을 벌려야 했어. 휴대폰을 민수용으로 바꾸고,
거기다가 전화기능 이외에 부가기능을 만들어대고, 또 눈지 안채도록 게임들을 집어넣고, 이런저런 광고를
통해 휴대폰으로 게임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했고..."
"자넨 참 멋진 넘이야"
"그래? 자네들이 그렇게 생각해주면 고맙고"
다음날 아침 왠일인지 식욕이 있는 나카미치 이사는 어느때보다 많은 식사를 하고 회사에 나왔다.
자리에 앉아서 머엉하게 10분쯤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가 새 기종인 NHP-MX2000로 게임을 즐기기 시작했다.
그 때 노크소리가 나면서 개발실 직원이 들어왔다.
"이사님 2번 생산라인 증설계획안입니다"
"으음... 그래 잘했어"
"네 감사합니다. 그런데 저... 이사님 그 휴대폰..."
"으응? 뭐?"
"어떤 문제점이라도 있으신지요? 아니 뭐 이사님이 검토중이신 것 같아서..."
"아냐 큰 문제는 없어. 다만 다음번에 키 감촉을 좀더 신경쓰는 것이..."
"네. 알겠습니다"
개발실 직원이 나가자 아까 잠시 멈췄던 게임을 다시 시작하면서 나카미치는
'회사에서 맘대로 게임을 하기'를 목표로한 자기 인생이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는 생각으로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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