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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U Town Daily

퇴화된 여행 능력으로 맞이하는 2019년




연휴라서 알람브라 궁전의 추억을 보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그러니까 내가 예전에 그라나다를 찾아가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러니까 그 때는 아주 오랫만에 그라나다에 눈이 왔던 겨울로 나는 알메리아라는 곳에서 야외 지질조사 조교를 하고 있었다.

조교를 하다가 어찌어찌 하루 비는 날이 생겨서 몇몇 친구들과 세비아와 그라나다를 당일치기로 다녀오기로 의기투합을 해서 알람브라를 찾았었다.

눈이 내린 알람브라는 뭐랄까 이 세상의 느낌은 아니었지만 오늘 이 글을 쓰는 주제는 이 것이 아니다.


그러니까 당시 여행이 결정되자 나는 지질조사를 마치고 알메리아로 돌아오는 길에 

동네 렌터카에 들려서 주인 아저씨와 손짓발짓을 해서 겨우겨우 작은 차 그러니까 르노 끌리오를 빌렸었다.

다음 날 아침에 숙소 주인에게 빌린 한 장짜리 스페인 지도를 들고 새벽에 차를 몰았다.

눈이 내린 시에라 네바다를 넘어서 한 녀석은 운전면허가 없고, 다른 녀석은 차가 왼쪽으로 달리는 나라에서 온 관계로 운전사의 역할을 하면서 세비아에 도착을 했다.

세비아 성당을 보고 광장을 보고 다시 차를 몰고 그라나다에 이르러 알람브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여기저기 구경다녔었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작은 차에 시동을 걸고 알람브라를 떠나 다시 시에라 네바다를 넘어 어두운 거리를 달려서 알메리아로 돌아왔다.


그러니까 지금이라면 미리 이 곳에 찾아갈만한 곳인가를 생각하고,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서 방문할 곳들을 추리고 방문순서를 정하고, 

맛집을 찾아내고, 내비게이션을 작동해서 최적의 루트를 찾아내고 등등을 하면서 여행을 진행했을 것이다.


당시에는 도데체 어떻게 처음 들어본 도시에 마음이 떨렸고, 한 장 짜리 지도로 난생 처음 가보는 도시까지 차를 몰았으며, 내비도 없이 주차장을 찾아냈고, 

사전 정보도 없이 도시의 여기저기를 찾아다녔던 것인지 지금 생각을 해보면 도무지 믿겨지지 않는다.


도데체 무엇이 변한 것일까.

왠지 이렇게 쓰고 나니까 늙고 용기도 없어지고 등등의 기분이 든다.

뭐 더 세상에 현명해졌다고 할 수도 있지만 말이다.

아니면 뭐랄까 아무도 모르는 음모에 의해서 인간들이 타고난 여행 능력이 퇴화된 것일 수도 있다.

으음... 그렇다면 외계인들은 우리의 여행능력을 퇴화시켜서 무엇을 얻으려고 하는 것일까나.


이제 2018년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던 한 해가 약 20분 정도 남았다.

티비에서는 맨 인 블랙(MIB)을 하고 있고, 

어디론가 떠나려고 이것저것 알아본 결과로 아무 곳도 가지 않기로 결정했고,

세상은 참을 수 있는 정도의 굴욕이라든지 패배감을 안겨주고,

난 집안에서 평화롭다.


이렇게 새 해가 시작되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