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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사이공/호치민 이야기

사이공 바깡 다리(cầu Ba Cẳng) 이야기

by mmgoon 2018. 9. 11.



가끔 인터넷에서 이전의 사이공의 모습을 보다가 보면 위쪽에 사진이 눈에 띕니다.


프랑스 식민시절 당시에는 이런 식으로 사진을 이용한 우편엽서가 유행을 했었는데, 

나름 당시 사이공에서 유명한 명소들의 사진으로 엽서를 만들었습니다. 

(네네, 당시에는 사이공과 쪼런이 다른 도시였지만 지금은 같은 호치민시가 되었으니 그냥 사이공으로 부르렵니다 -_-;;;) 


위의 사진은 그런 사진 엽서 중 하나인데 '도데체 여긴 어디지?' 하는 마음이 들어서 한 번 찾아봤습니다.


그러니까 이 다리는 현재 호치민시 6군에 있었던 다리가 3개 달린 다리로 베트남 사람들은 바깡(Ba Cẳng)교라고 불렀고, 

프랑스 사람들은 Pont des trois arches 라고 불렀던 곳입니다. 






호치민시에는 예전부터 이런저런 수로들이 많이 발달했었는데, 이 다리는 보나드(Bonard, 현재는 항방Hang Bang) 수로 위에 건설되었다고 합니다. 

베트남 신문에 의하면 이 다리는 인도교로 바이사이(Bai Say)거리와 반뚱(Van Tuong)거리 교차로에 있었다고 합니다. 

구글 지도에서 10.749176,106.656005 라고 좌표를 치면 현재의 위치가 나옵니다. 

당시 3개의 다리는 바이사이, 응웬반탄(Nguyen Van Thanh), 반뚱 거리에 각각 있었답니다.


이 다리는 1920년대에 프랑스 회사인 Société d’exploitation des établissements Brossard et Mopin이 건설했는데 

언론가인 응웬 반 삼(Nguyen Van Sam), 쪼론의 사업가 쭝반벤(Truong Van Ben)의 여동생인 그의 아내가 자금을 대었다고 합니다.


이 다리는 1990년대에 무너졌고, 다시 지어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1990년대를 아는 호치민 사람들은 다리 이름 자체보다는 연 쪼이 까우 바 깡(dân chơi cầu Ba Cẳng) 

즉, 바깡 다리의 무법자 (혹은 무대포)라고 불린 중국계 베트남인인 마반(Ma Ban)이 이끌던 폭력조직을 말하는 말로 더 기억을 합니다.  

마반은 무술에 능했고 1975년 통일 이 전에 조직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그는 편모 슬하에서 자랐고, 초등학교만 겨우 마치고 중퇴하여 그의 무예를 이용해서 중국 상인들을 보호했다고 합니다. 

의외로 그의 조직은 뭐랄까 의협심이 있는 조직으로 알려져서 부유한 중국 상인이 그의 딸과 결혼시키기도 했다고 합니다.


장인의 부와 그의 무예로 인한 수입등으로 인해서 조직은 흥청망청 하면서 파티와 도박과 연회들을 열었다고 합니다. 

이후 마반에 대한 이야기들은 불확실한데 1984년에 그의 조직을 해산하고 중국집을 열고 정착을 했답니다. 

그러나 그는 흥청망청하는 삶을 계속했고 결국 사업은 실패해서 부부는 어려운 말년을 보냈다고 합니다.





현재 항방(Hang Bang) 수로의 대부분은 복개가 되서 바이사이(Bai Sai)와 팜반쾌(Pham Van Khoe)거리가 되었습니다. 

덕분에 예전에 이 곳에 있었던 다리 3개의 특이한 인도교라든지 

이 다리를 중심으로 주먹의 시대를 구가했던 한 중국계 베트남인의 이야기도 슬슬 옅어져 가는 그런 상황입니다.

지금은 슬럼화가 되어 있는 호치민시의 여러 수로들이 주요한 교역로의 역할을 하던 시절을 잠깐 생각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