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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사이공/음식

리치 (quả vải) 이야기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전에 리치의 계절을 맞이해서 신나가 먹다가 한국으로 돌아왔었는데, 모모 호텔에 갔더니 리치가 있더군요.

사람들은 맛있다고 먹었지만 솔직히 설탕물에 절인 냉동 리치는 뭐랄까


"아아 원래 이 맛이 아니라고!!!"


라는 외침이 절로 나오는 맛이었습니다.


당분간은 제대로 된 리치를 즐길 수 없다는 생각에 리치에 대해서 한 번 정리를 해봤습니다.

여기저기 인터넷에서 찾은 글들을 한 번 정리해서 올립니다.


오늘은 이 녀석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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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한 반역자들은 도시 외곽에서 지원군을 모으고 있었고, 

건방지고 방탕한 사람들은 찻집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부패는 수도의 모든 골목길과 안뜰에 숨어있었습니다. 

8 세기의 당나라 제국의 비교할 수 없는 번영은 향후 수세기 동안 지속될 수 있었지만 

현종 황제는 이 번영을 몰락의 길로 인도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이야기의 중심에는 리치가 놓여 있습니다.



위에 글은 서사적으로 묘사된 당나라 말기 풍경인데 여기에 함께 등장하는 리치라는 과일이 있습니다. 

장미, 배, 포도의 향이 어울러지고 붉은 껍질에 둘러싸인 하얀 속살을 가진 이 과일은 

당현종의 가장 사랑하던 애첩인 양귀비(베트남 말로 융 뀌 피, Dương Quý Phi)가 좋아하던 음식이었습니다. 


양귀비는 원래 현종 아들의 부인이었으나 현종이 사랑에 빠져 아들에게 새로운 부인을 주고 빼았았다고 합니다 (아앗- 막장). 

이 후 왕은 정사를 돌보지 않고 현종은 양귀비의 이상한 취향을 만족시키기 위한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그러니까 만약에 리치가 그녀를 웃게 한다면 매일 그녀에게 신선한 리치를 가져다주기 위해 전국에 파발과 역참을 설치하는 것을 포함한 모든 노력을 했습니다.


리치는 그런데 너무 짧은 시간만 나오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리치는 나는 계절도 짧고 일단 껍질을 벗기면 곳 상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중국 고대 문서를 보면 수확해서 하루만 지나도 색이 변하고, 둘째 날이 되면 향이 없어지며, 

삼일이 지나면 맛이 없어져서 원래의 맛과 향을 느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당현종과 리치를 사랑하는 그의 며느리이자 아내에게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중국 동부에 있는 수도 장안에 거주를 했고 리치는 사천 그러니까 700km 이상 떨어진 곳에서 자란다는 것이었죠. 

이 거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현종은 파발마와 역참을 연계시쳐서 

리치가 신선한 상태로 배달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었습니다 (이거 나름 발전 아니야? -_-a)


솔직히 당현종은 이런 리치 수송 시스템을 개발하기 보다는 양귀비에게 주의를 기울여서 

그녀가 권력을 잡고 왕조를 몰락의 길로 몰아가고, 결국 양귀비 자신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막아야 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열렬한 헌신은 리치를 위한 길로 기억되고 묘사되었는데, 

두목(杜牧)의 '화청(华清, Huaqing)성을 지나며'라는 시로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장안에서 보니 리산은 놓아진 수의 한 자락 갔구나

셀 수 없는 문들이 고개의 꼭대기에서 하나씩 열리고

말이 달리며 만든 붉은 먼지가 황후를 웃게 하네

아무도 이것이 리치를 가져오는 것임을 알지 못하네




중국어로 리치는 荔枝(여지)라고 쓰고 리치라고 읽습니다 

(우리식으로 읽으면 여지라고 읽어야 하는데 이 포스팅에서는 그냥 리치라고 표기하도록 하겠습니다). 

또 离枝(리지)라고 쓰기도 하는데 '가지를 떠난다'라고도 쓰이는데 리치가 가지에서 떨어지지마자 바로 먹어야하는 특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중국어에서 리(荔)는 지혜와 총명을 나타내는 리(利)와 발음이 같습니다. 

같은 맥락으로 이자(利子) 즉 은행에서 주는 이자 그리고 아들을 같는다는 뜻과도 상통하기 때문이 이 과일을 높게 쳤답니다. 

이런 언어학적인 유희로 인해 상징적인 중요성이 증가했고, 

결혼식에도 리치의 그림을 새 부부가 아이들을 많이 가지도록 선물하는 풍습을 만들었습니다.


 

이런 그림들이 선물로....




영어로는 리치 혹은 라이치라고 하는데, 리치는 중국 북경어 기원이고 라이치는 광동어 기원의 발음입니다. 

미국 사람들은 라이치라고, 영국사람들은 리치라고 말하는 경향이 많더군요.


그러나 정작 베트남에서는 리치를 바이(vải 혹은 정확히 꽈 바이 quả vải)라고 부릅니다. 

기본적으로 리치는 중국이라기 보다는 동남아 원산인 과일이고 아마도 원래부터 이 지역에 있었던 과일이기에 

중국어 기원의 이름이 아닌 고유의 이름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리치에 대한 기록은 300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리치(Litchi) 속에 유일한 종인 리치의 원산지는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입니다. 

야생 리치 나무는 현재에도 빈푹(Vinh Phuc)성 땀다오(Tam Dao)에 바비(Ba Vi)산과 숲, 꽝빈(Quang Binh)성 뚜엔화(Tuyen Hoa)에서 발견됩니다. 


지난 400년 동안 리지 나무들은 동남아시아로부터 전 세계로 퍼져나갔는데 

18세기초에는 미얀마에 도달해서 다시 인도로 전파되었는데 현재 인도는 세계에서 2번째로 큰 리치의 생산국입니다. 

1775년부터 서부 인도에서 기르기 시작한 리치는 19세기 초가 되면 영국과 프랑스의 온실에서도 자라게 됩니다. 

그리고 1873년 하와이, 1883년 플로리다에서도 재배를 시작합니다. 

현재 리치는 약 60종 이상의 다른 품종으로 개발되어 판매되고 있습니다.






매년 베트남 북부 박지앙(Bac Giang)과 하이증(Hai Duong)성의 시장은 리치로 가득차는 계절을 맞이합니다. 

예전에 베트남 도로 사정이 나쁠 적에는 리치는 남쪽에서는 먹지도 못하는 과일이었지만, 이제는 사이공에서도 리치를 즐길 수 있습니다. 

매 년 베트남은 20만톤의 리치를 생산하는데 이 중 60%는 국내에서 소비를 하고 

나머지 40%를 태국, 싱가폴, 미국, 호주, 일본, 우리나라, 유럽 등지로 수출을 합니다.


한방에 의하면 리치는 뜨거운 음식으로 술을 만들거나 끓여서 먹으며 통증을 완화하고, 피를 건강하게 하고 출혈을 멈춘다고 하네요. 

실제로 리치는 비타민 C, B와 섬유질, 구리, 인산질이 풍부해서 건강에 좋은 영향을 주고 피부, 모발, 소화, 다이어트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베트남 북부에서 생겨나 예전에 양귀비가 즐겼던 리치는 전 세계로 퍼져나가면서 대중화되었고, 

리치를 이용한 음료, 과자, 심지어 콘돔까지 생산되고 있습니다. 

아마도 미국 산업시스템화 되어버린 리치는 나무에서 따서 바로 먹는 그런 맛은 잊게했고 

리치 산업은 당나라 시절에 비해 엄청나게 커져 버린 결과를 가져왔지요. 

당현종과 양귀비의 잘못일까요?


어떤 친구는 리치는 꼭 사이공 같다고, 

그러니까 붉은 껍질과 같은 도시의 불빛들을 걷어내고 나면 리치의 하얀 속살같은 예전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저 베트남을 떠나기 전에 신나게 먹었던 리치를 기억하면서 어찌어찌 내년 리치의 철까지는 지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