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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적거림들/유코이야기

04 卯猫 1




유코가 돌아가는 날이 왔다. 

뭐 하기사 오라고 그래서 온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난 그냥 무덤덤했다. 

마지막으로 준비한 아침식사를 건네면서 


"그럼 이제 사회부적응은 없어?" 

"네, 어제부로 보건부 사회적응과에서 편지를 받았어요" 

"아아 잘되었군. 그럼 이제 저 감시하는 토끼들도?" 

"그렇죠. 아무래도 우리들은 겨울엔 잠을 자야하니까요" 

"겨울잠? 그럼 앞으로 학교도 교회도 다 안나오는거야?" 

"당연하죠. 우리는 '토끼'라구요. 겨울이 오면 겨울잠을 자는" 


내 생각에는 보건부녀석들이 겨울잠을 자기 위해서 대충 유코에게 완치 통지서를 보낸 것 같았지만 (아직도 슬리퍼를 질질 끌고 다닌다) 

뭐 그렇다고 유코와 저 감시토끼들을 잡아놓을 생각은 전혀없었기 때문에 


"그럼 즐거운 꿈을 꾸기를" 


하면서 저번에 구입한 고양이 밥그릇을 선물로 주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선물따위를 준비하지 않았었는데 분위기상 집에 있는 물건중에 포장뜯지 않은 것을 그냥 준 것이다. 


"아아, 이쁜 고양이 밥그릇~ 이걸 잠잘때 물을 담아 머릿맡에 두면 습도가 유지되겠군요! 당신은 사려가 깊어요" 


유코의 놀라운 활용력을 보면서 예전에 선배가 한 말이 떠올랐다. 


'당신은 선물을 주기만 하면 돼, 나머진 받은 사람이 알아서 하는 것이거든'. 


암튼, 유코는 선물과 긴 귀와 짧은 꼬리 그리고 투명망토를 챙겼고, 나는 인근 토끼굴까지 바려다 주었다. 


"그럼 안녕히~" 

"안녕히계세욤~" 


뒤도 안돌아보고 깡총거리면서 굴 안으로 들어가는 유코를 보고 약간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로서 나의 멀더같은 생활은 끝이 났다. 

도데체 누가 토끼들에게 감시를 받고 또 사회부적응인 토끼를 돌보면서 아침까지 차려주는 일을 좋아하겠는가. 


정말로 간만에 감시없는 풀밭을 지나서, 아무도 없고 아무도 어질러 놓지 않는 내 방에 들어와서 맘대로 컴퓨터를 켜고 간만에 오락을 신나게 했다. 

유코녀석은 세살이라서 도무지 정리를 할 줄 몰랐고 게다가 인터넷 광이었다. 

더군다나 재정이 열악한 정보부 덕분에 내 비밀 감시역인 토끼녀석들도 가끔씩 "아아 실례 실례" 하면서 맘대로 내 방에 들어와서 내 컴퓨터로 이메일을 검사했다. 


간만에 즐겁게 오락을 한참 하다가 배가 고파져서 냉장고를 열어보니까 아무것도 없다. 

이런~ 

유코 혹은 감시역을 한 토끼녀석들이 겨울잠 자기전에 파티라도 하려고 싹 쓸어간 것 같다. 


'뭐 그래 이정도 쯤이야' 


이렇게 생각을 하고 그 날은 그냥 남은 시리얼을 우유도 없이 날로 먹고 잠이 들었다. 꿈도 없는 깊은 잠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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