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이제는 열라 욕먹는 신세로 전락한 조선일보이지만 우리집은 그러니까 할머니가 살아계시는 동안은 조선일보를 봤다.
할머니는 신문을 읽고 그 내용을 나랑 이야기하는 것을 즐기셨다.
뭐 당시는 내가 너무 어려서 큰 토론의 분위기까지는 가지 않았지만
이런저런 소소한 얘기를 나누는 것은 뭐랄까 조금은 힘들고 큰 소리를 내기가 어려웠던 당시로서는 일종에 지적인 탈출같은 그런 것이었다.
그 중에 할머니가 좋아하시던 코너가 바로 이 이규태 코너였다.
당시의 소위 총체적인 분위기에서 '개인적인' 사고나 의견을 (물론 내 의견은 좀 다르지만) 써내는 문체라든가 그분의 필력을 할머니는 즐기셨던 것 같다.
이제 할머니도 떠나시고, 당신이 좋아하시던 그 코너도 시간 넘어로 지나갔다.
슬슬 뭐랄까 옆에 있던 것이 그리움으로 변하는 그런 나이가 된 것 같다.
물론 어머니야
'너같이 차가운 인간이 그리움을 논한다는 게...'
하시겠지만 나도 소위 그리움이라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아침이다.
아래는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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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제는 그만 글을 마쳐야겠습니다
평생 글 쓴 행복한 삶…
이규태 코너 24년 <6702·마지막회>
글로 먹고 사는 놈에게 항상 무언가를 쓸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행운이었습니다.
1983년 3월 1일. 이처럼 오랫동안 코너가 계속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당시 방우영 사장께서 ‘李圭泰 코너’란 이름과 함께 분량과 지면의 위치까지 정해주시며 시작하라고 했던 이 글이 벌써 6701회를 기록했습니다. 3·1절을 맞아 3·1선언 현장인 명월관의 내력을 쓴 ‘이완용의 집 고목’에서 시작해 얼마 전 ‘책찜질 이야기’까지 햇수로 24년이 흘렀습니다. 컴퓨터로 계산하니 오늘(2월18일 기준)로 8391일이나 됩니다. 중년이던 나이는 이젠 칠순을 지난 늙은이가 됐고, 강산은 두 번 반이 바뀌었습니다.
그동안 많은 변화가 우리 주위에 있었습니다. 어린 시절 종이를 처음 보고는 너무 신기해 잠을 이룰 수 없었던 소년은 이젠 컴퓨터로 집에 앉아 글을 쓰고, 자판만 몇 번 두드리는 것으로 신문 활자가 되는 말 그대로 ‘격변의 시대’를 보냈습니다. ‘李圭泰 코너’의 상징인 저의 코너 캐리커처만 봐도 그 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글의 성격과 맞춘다고 해서 곰방대를 물었다가 어른들로부터 호되게 혼이 난 뒤 원고지에 연필로 글을 쓰는 것으로 바뀌었다가 지금은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고 있습니다. 바로 이러한, 많고 빠른 변화가 지금까지 칼럼을 쓸 수 있게 해 준 원동력이었습니다. 매일매일 바뀌는 것들을 변하지 않는 과거를 통해 재조명함으로써 미래를 보고자 했던 것입니다.
하나의 칼럼을 완성하기 위해 저로서는 모든 노력을 다했습니다. 요즘 와서는 격일, 또는 3일에 한 번씩 연재했지만 20년간은 휴간일 빼놓고는 매일같이 글을 써야 했기 때문에 마치 마라톤을 달리는 선수와도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잘 뛰는 선수야 2시간 좀 넘는 레이스이지만 저에게는 24년이라는 긴 여정이었습니다. 이제는 골인 지점에 다다른 것 같습니다. 30년 아니 50년, 7000회 아니 1만회를 넘기고 싶지만 그건 과욕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후배들에게 기회를 넘겨야 할 때가 됐습니다. 이제 욕심이라고는 ‘李圭泰 코너’보다 훨씬 뛰어난 코너가 독자들의 마음과 머리를 적셔드렸으면 하는 것입니다.
‘李圭泰 코너’를 마치면서 코너를 지시한 방우영 명예회장님과 늙은이의 글을 버리지 않은 방상훈 사장님, 그리고 이젠 저의 트레이드 마크가 돼버린 코너 캐리커처를 그린 김도원 화백, 또 활자로 찍던 시절 악필의 원고를 채자해준 문선부원과, 자판이 서툴러 뒤죽박죽인 원고를 꼼꼼히 봐준 교열부원 등 모든 조선일보 식구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그러나 누구보다 독자 여러분께 제 늙은 몸을 구부려 큰절을 올립니다. ‘李圭泰 코너’가 6701회까지 이어올 수 있었던 것은 오로지 독자 여러분의 성원과 사랑 덕분이었다는 것을 제가 어떻게 잊겠습니까.
감사합니다.
--마지막 이규태 코너는 투병 중인 필자의 구술에 의해 작성되었습니다.
출처: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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