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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이야기/컴퓨터-인터넷-모바일

비가오는 날의 PDA life




밖에는 지금 시기에 맞지 않게 엄청난 비가 내린다. 

전형적인 열대의 스콜성이다. 

보통은 우기라도 저녁나절에 한 번 비가 뿌리고는 지금즈음이면 다시 언제 그랬느냐는 듯한 날씨를 보여줘야 하는데 

이건 태풍이라도 상륙한 모양으로 엄청난 양의 비가 쏟아붓는다.

아마도 내일 아침에 회사가는 길은 물이 한참은 불어나 있을 것이다.


지금은 오늘 받은 PDA용 키보드 로 글을 쓰고 있다. 

아무래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지만 조그만 화면을 들여다 보면서 마치 작은 노트에 끼적거리는 그런 느낌으로 글을 써보고 있다.


이런 만족...


이렇게 쓰고 나자 글쎄, 뭔가 자본주의의 냄새가 난다.

나는 아주 오랬동안 PDA를 사용해왔다. 

그러니까 지금은 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국산 PDA를 처음사서 serial port 로 연결을 시키고 일정과 연락처를 관리한 것으로 시작을 해서 

결국 그 회사가 내 PDA의 지원을 포기하기까지 계속 사용을 했다.

이 기계의 문제는 기계 자체는 개인 정보관리자로서의 문제도 없었고, 안정적이었지만 

결국 계속적인 투자의 요구라는 이 자본주의 사회의 거대한 원리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쉬운 말로 하자면, 그 기계를 산 다음에 추가로 돈을 쓸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뭐 결국은 회사가 그리 좋은 방향으로 끝난 것 같지는 않다.


그리고 프랑스에서 처음 본 후 큰 마음을 먹고 판다군을 구입했다. 

컬러 화면에 윈도우에 무선인터넷에, 블루투스에 이제는 serial port 가 아닌 USB connection 방식인 녀석이다.

녀석은 역시나 자본주의 사회의 꽃인 미국산인 까닭에 추가로 메모리 카드를 구입할 수 있고 

결국은 오늘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추가 투자를 요구한 것이다. 

그 동안 판다군에게 들어간 돈을 계산하니까 

으음... 이 가격을 말하면서 주변인간들을 PDA의 세계로 끌어들이기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런데 왜 무선인터넷도 GPA system 도 없는 베트남에 살면서 굳이 PDA적인 삶을 고집하는냐고 물으면


"말이야 그런 바로 PDA가 남자의 로망이기 때문이지"


라고 말할 예정이다.


예전에 아는 과장님과 술을 한 잔 하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당시는 아이엠에프 시절이라서 말하자면 샐러리맨들에게는 그리 즐거운 시절이 아니었다.


"이거봐 김대리 남자가 말이야 그렇게 죽도록 고생해서 벌어대 가지고 뭘 겨우 가지는 지 알아?"

"글쎄요"

"그게 난 내 집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야. 내가 산 집은 결국 마누라랑 새끼들 거라구. 내 자리가 없어"

"그런건가요?"

"그래 다 병신들이지 결국 내가 가진 내 공간이라고는 달랑 내 차 안인 셈이야. 그게 몇 평이나 되겠어?" 

(참고로 과장님은 차에 대한 애정이 각별했다)

"하하 딴은 그렇군요"


결국 그 과장님의 주장에 의하면 남자는 원래 집 버리고 사냥 다니던 종족이기 때문에 사냥가면서 가지고 다니던 물건만이 자기 것이라고 했다.

일종에 강요된 nomad 적인 근성인 셈이다.


지난 몇 년간 이 나라 저 나라 떠돌면서 결국 집을 '소유'하지 못했고, 

구입하는 물건들은 대부분 생존을 위한 것이거나 아니면 언제가 미래에 올 한국 생활을 위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래서 내 자신의 자료를 그러니까 내 일상과 끄적임과 사진 등을 담기 위한 movable hard disk를 샀고, 회사에서 지급되고, 

다시 공용으로 사용하는 노트북을 외면하고 호텔 한쪽 구석에 누워서 음악을 듣거나 글을 끄적이는 

그러니까 공책이라기 보다는 작은 메모지 같은 PDA를 구입한 것이다.


딱 PDA가 주는 공간만큼의 내가 '개인'으로 남아있다는 생각을 한다.

남에게 보여주거나 정리할 필요가 없는 그런 것들. 내가 죽으면 관에 같이 넣어버리면 쉬운 그런 존재같은 것이다.


비가 오니까 왠지 우울한 느낌의 글이 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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