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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다닌 이야기/다른나라

추위와 화재경보

by mmgoon 2017. 1. 15.



"자자, 이걸 봐봐"

"뭔데여?"

"이번에 한국출장 계획이야. 그러니까 이 계획에 맞게 비행기표를 예약하라구"

"그러져"


그러니까 늘 언제나 항상 별로인 본사 출장이 다시 잡혔습니다.

그것도 추운 1월에 말이죠. 


"아아아- 미스터킴. 큰 일 났어여"

"왜?"

"비행기표가 없어염"

"뭐라고?"


그러니까 한국사람들이 날도 춥고 돈도 있고 해서 엄청난 수로 베트남 관광을 떠났고,

베트남 설날인 뗏을 맞이해서데 북미지역에서 귀국을 하는데 한국을 경유하는 편이 가장 저렴한 까닭,

뭐 이 두 가지가 겹쳐서 김부장 출장의 앞길을 막은 것입니다.


"아아아아- 다 필요없어. 무조건 구해야한다고. 우리 본사가 이런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그런 조직이 아니라고!!"

"흑흑흑"


이런 식(?)으로 애들 시켜서 자료 준비하고, 비행기 표 구하고 해서 한국으로 날아갔습니다.





한국에서 나를 맞이하 것은 바로


'어헉-'


추위였습니다.

호치민에 30도에 익숙해진 몸은 영하의 기온을 받아드리는데 문제가 많더군요.


"아아- 부장님. 하필 추운 날 오시다녀"

"니가 오래매!!"


등등의 따뜻한 대화를 나누면서 이틀 동안 회의를 해야했습니다.

뭐 회의의 결론이야.... 


'사람은 나이나 지위에 상관없이 바뀌지 않는다'


정도였죠.

울 회사의 전통은 참으로 유구한 것 같습니다.




저녁을 먹고 울산공항에서 비행기를 타고 김포공항에 도착했더니 서울은 출발할 때보다 더 추워졌더군요.

지하철을 타고 내려서 오들오들 떨면서 이번에도 외로운 서울의 숙소가 된 이비시 앰배서더 인사동엘 체크인했습니다. 

네네, 어무니 집에는 오늘도 손님들이... (이건 뭐 우리집이 호텔보다 예약이 힘들어서야 T_T).




편의점에서 맥주를 사다가 홀짝거리니까 왠지 마음이 훈훈해지네요.

이제는 이 호텔이 이 정도 지위까지 승격(?)을 했군요.




꿀잠을 자고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여니....

눈이 펄펄 내리고 있습니다.




네, 눈입니다.

게다가 시리에게 물어보니 영하 10도라고 하네요.

아무리 생각을 해봐도 40도의 온도차이를 극복할 것 같지 않아서 원래 계획을 싹 들어내고 체크아웃 시간까지 최대한 방에서 뒹굴거리기로 마음을 바꿉니다.

방에 있는 커피를 한 잔 끓여서 (아아- 이 넘이 호텔은 물을 뜨려면 밖으로 나가야 하더군요) 홀짝거리면서 눈이 오는 창을 바라봤습니다. 도데체 이게 몇 년 만인가요.


결국 12시가되기도 했고, 배도 고프고 해서 호텔을 체크아웃 했습니다.

이제는 눈도 그치고 햇볓에 눈가루들이 날리는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점심도 먹고, 서점에 들려서 책들도 사고, 문방구도 좀 사고, 커피도 마시고 했더니 슬슬 출발 시간이 되었습니다.





호텔에 들려서 맡겨두었던 가방을 찾고, 공항버스를 타고 점점 추워지는 서울 거리를 달려서 공항으로 가는데... 전화가 옵니다.


"아아, 지금 어제 회의 결과 때문에 컨퍼런스 콜 가능해?"

"넹"


이렇게 인생 최초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본사 회의실에 모인 무리들과 진지하게 컨퍼런스 콜을 했습니다.


공항에 도착해서 역시나 만석인 비행기 뒤쪽 자리를 타고 (간신히 표를 구했다니까여) 호치민 탄손녓 공항으로 날아왔습니다.




공항에 내리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네네, 설 연후 2주전인데 이 정도라니요. 당일은 어떨지 상상하기도 싫네요.

30분도 넘게 짐을 기다리고 공항을 나오니....

사람들이 넘쳐서 아에 나올 수도 없었습니다.

다시 30분을 기다려 택시를 타고 겨우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방에 들어오자 온 몸이 땀에 절어 있습니다.

이미 시간은 12시가 훨씬 넘어있네요. 참고로 한국시간으로 하자면 새벽 2시도 지난 시간입니다.


정신력으로 짐을 풀고 너무 끈적해서 머리는 감지 않고 샤워만 하고 나서 겨어우 침대에 누웠더니, 피로와 온도 차이와 스트레스 들이 몸을 눌러댑니다.

꼭 몸이 침대 속으로 빠져드는 그런 느낌이 들더군요.


이렇게 한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요.

이게 꿈결인지 현실인지 엄청난 소리가 납니다.

마치 영국에서 공부할 때 나던 파이어 알람과 비슷한 녀석이었지만 미묘하게 달랐고, 너무 피곤하고, 여기는 베트남이라는 현실을 자각하고는 다시 잠을 청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엄청난 소리는 계속되더군요.


결국 무엇인가 엄청난 욕을 내지르면서 일어나서 보니 앵앵거리는 소리가 집안 가득하고 밖을 봤더니 양넘들이 우왕좌왕하고 있습니다.

생각을 정리해보니 얼마전에 이 아파트에 화재경보기를 달았고, 드디어 녀석이 제대로된 일을 처음으로 한다는 것 같았습니다.


잽싸게 옷을 입고, 전화기, 지갑, 여권을 챙겨서 계단을 내려가 1층으로 갔습니다.

말 잘듣는 일본 친구들은 이미 다 내려와 있었고,

양넘들은 이제 막 내려오고 있고,

베트남 친구들은 한 둘 정도만 내려오고 나머지는 꾿꾿하게 방을 사수하고 있었습니다.

15층 일본 아저씨는 너무 놀라서 목욕 가운에, 목욕 슬리퍼를 신고 한 손에는 칫솔을 들고 내려와 서있더군요.


이 와중에 관리실에 있는 아저씨는 '아, 이 외국인 넘들 넘 짜증나네' 하는 표정으로 우리에게 와가지고


"너무 흥분하지 마라고. 단순한 기계 고장이라고"


라고 외쳐댑니다. 

그러니까 기계 고장은 내 책임이 아닌데 짜증나는 외국인들이 관리실로 몰려와서 행패를 한다는 식이죠. 네네, 이 곳은 베트남.


결국, 이유를 찾지 못한 화재경보기를 수리가 가능할 때까지 꺼두기로 결정을 하고나서야 앵앵거리는 소리가 멈췄습니다.

겨우겨우 집으로 올라왔더니 다시 온 몸은 땀으로 젖었더군여.


뭐 이렇게 한국출장이 끝났고, 저는 토요일 내내 피로에 쩔어서 보냈다는 얘기입니다.

하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