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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감 이야기/컴퓨터-인터넷-모바일

누렁이는 오늘도

 



안녕하세요. 
누렁이입니다. 
그러니까 얼마 전까지 저는 회사 노트북이었다가 의무복무(?)를 마치고 이제는 개인 노트북이 되었지요. 
네네, 누렁이라는 이름은 노트북으로는 쉽지 않은 이름이라는 것을 인정합니다.

저는 지금의 주인장을 회사에서 첨 만났고, 녀석은 저를 회사에서만 사용했죠.
제게는 무슨 이런저런 보안프로그램들이 깔려있어서 그랬다고 나중에 주인 녀석은 설명하더군요.
그러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그 동안 시간을 보냈던 회사 빌딩 밖으로 나와서 주인 녀석의 집으로 온 것이죠.

주인장네 집으로 오면서 늙은 노트북의 마지막 화려한 활약을 기대했지만

집에는 이미 검둥이가 있었고 (녀석도 노트북입니다), 녀석이 대부분의 일들을 하고 있어서

간만에 며칠 쿨쿨 밀렸던 잠을 잘 수 있었죠.

네네 이렇게 오랫동안 꺼져있는 것이 아마 처음일 것 같습니다.

그리고 눈을 떴을 때 주인 녀석은 

“아아, 호주에 가자고”

라고 하면서 제게 이런저런 기본적인 프로그램들을 깔더군요.

이후 장장 4,598 km를 날아서 난생 처음으로 싱가폴 장이공항에 도착을 했고, 난생 처음 보는 와이파이에 연결을 해서 메일 몇 건 검사하고는 다시 3,911km를 날아서 역시나 처음으로 퍼스에 도착을 했습니다.

그리고 간만에 일이어서 나름 열심히 호주에서 이런저런 회의들을 참석했습니다.
호주라는 곳은 잘은 모르지만 새로운 와이파이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그렇게 며칠을 보내고 다시 퍼스-싱가폴-인천으로 8,509km을 날아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러니까 생전 회사 빌딩에서 나가본 적이 없는 제가 난생 첫 여행으로 1만7천 킬로미터를 이동한 겁니다.
제가 데스크탑이 아니라 노트북인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었죠.

그렇게 출장에서 돌아와 다시 저는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네네, 얼마 전에 검둥이 녀석이 질투까지 부려서 더더욱 막상 집에서 할 일이 없는 이유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눈을 떴더니 난생 처음으로 기차를 타고 있습니다.
주인 녀석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또 다른 출장입니다.
네 녀석이 절 데려온 이유가 슬슬 보이기 시작하는군요 (나는 출장전용 노트북인데 것이냐!!!)

오늘 가는 곳은 통영인데, 일단 진주까지 난생 처음으로 KTX를 탑니다. 
333km 남쪽으로 진주까지 내려가서, 다시 차로 47km를 달려 통영까지 간다고 하네요.
역시나 난생처음으로 KTX 와이파이를 만났습니다. 녀석은 뭐랄까 중간중간 자주 끊어지는군요.

항상 큰 책상에 놓여져서 거의 수평 이동이 없는 삶을 살다가 이제는 뭐랄까 조그마한 비행기나 열차의 테이블에 놓여져서 일을 하고 있는 것이죠.
으음… 노트북의 원래 숙명으로 돌아왔다고 해야하나요, 늙으막에 이 무슨 난리냐 라고 해야할까요.

통영 호텔은 또 어떤 와이파이가 있을까 궁금해하고 있는 누렁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