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요일)
슬슬 그동안 지속되어 왔던 바른생활 그러니까 내가 벅찰 정도로 일을 해대는 상황이 거의 한계에 다달았다는 느낌이 든다.
뭐 그동안 오래 참았다.
새로 부임한 사장이라도 칭찬을 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정도다.
그렇게 잘 참고 있었는데 어제 저녁이 드디어 한계를 돌파한 것같다.
뭔가를 정신없이 해석하고 있었는데 옥이가 소리를 쳐서 보니까
"병원 가야죠!!" 한다.
요사이 중이염으로 고생인데 병원가서 의사와 약 1분정도 얘기하고 약 2가지 받고 60불을 냈다. 속으로는 허억- 했지만 뭐 여기까지는 쿠울하게.
회사로 와서 다시 일하는데 옥이가 또 소리를 친다.
"오늘!! 우리팀 정기 음주의 날이자나요!!"
바보같은 얼굴을 하고 맥주집에 갔더니 이제는 부쩍 늘어난 멤버들이 좋아라고 맞이한다.
뭐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금요일)
아침에 깨서 롱하이로 회의를 갔다.
뭐 재미없는 3시간이 지나고 점심으로 해산물을 먹고 와인도 한 잔 하고 다시 호치민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회의를 약 1시간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하늘이 노랗게 보인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쌓인 '착한 인생의 부담' 에다가 '롱하이 비치를 보기만 했다' 가 겹치면서 일이 터진 것 같다.
가장 하고 싶은 일은 색에다가 칫솔하고 카메라하고 판다군만 넣어가지고 젤 좋아하는 청바지와 티셔츠를 입고 젤 맘에 드는 신발을 신고 탄손녓 공항에 가서 맘에드는 표를 사서 떠나버리고 싶다.
그런데 이건 불가능 하다.
주말 내내 뭔가를 더 해석을 해서 월요일 9시에 회의를 준비해야 한다.
내 해석결과를 기다리는 인간들의 말똥거리는 눈초리를 생각하면 이 생각은 거의 사회악일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3시간동안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을 저주하다가 어머니가 보낸 이멜일에 답장을 하고 판다군을 꺼내서 앞에 섰다.
그래서 결론은...
내일은 아무도 만나지 말고 골프도 포기하고 카메라나 들고 나가서 하루종일 떠돌아 다니기로 했다.
이런 정도로 해소가 될까.
그냥 그런 꿈을 꿔본다.
여전여전에 (제길 10년도 넘은 얘기군 -_-;;) 눈이 동그란 어떤 여자애가 나보고 한 말이 있다. 금요일 저녁에 집에가기 싫어서 사무실에서 빈둥대는데 떠오른 생각이다.
"그러니까요 내가 분석한 결과에 의하면요. 그쪽은 뭐랄까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하는데에 문제가 있어요.
으음- 이건 물론 어린 시절의 경험에 의한 결과에다가 물론 기본적으로 개인적인 성향이 더해진 것으로 생각이되요"
"한국말로 하면 어떻게 되는데?"
"그러니까 일정한 여자친구를 사귀기가 어렵다는 거에요"
생각해보면 그 여자애가 나랑 더 이상 관계를 진전시키기 싫어서 이런 얘기를 자기 전공을 빌어서 떠들어 댔을 수 도 있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솔직히 맞는 말인 것 같다.
내 주면에 지속적인 관계의 인간들은 항상 문제를 일으켜서 내게 겉으로는 지극히 정상적인 삶을 살도록 했다.
나는 기본적으로 '초자아가 약한 타입'이다.
덕분에 웬만해서는 일반적인 혹은 남들 다하는 생각에 얽매이지 않는다.
Everything from me. Say cool.
그래서 그런지 어떤 사람하고 관계가 일정한 시간 물론 사람마다 다르지만 지속되고 나면 힘들어지는 나를 느낀다.
금요일 저녁에 집에 오려고 나오는데 바스커 녀석이 물어본다.
"이봐 생각해봤어?"
"음"
"그래 어때?"
"아니 굳이 수고할 필요가 없을 것 같아"
"이거봐 잘 생각해봐봐. 내 여자친구의 친구인데 정말 최고라구. 뭐가 문제야? 베트남 사람이라서?"
"아니. 아마 생각을 너무 많이 했나봐"
"그래. 너한테 달린거지"
이제는 나이까지 먹었으니 누가 내게 충고를 할 것인가.
결론은 30대 중반의 남자는 성격을 바꾸기가 나름대로 어렵다는 얘기
(토요일)
그래서 어쨌느냐면,
그러니까 일종에 한계가 다달았고, 아무와도 약속을 하지 않았고, 그동안 빈둥거리는 카메라를 들고 나가기로 마음 먹은 그런 토요일이었다.
아침에 눈을 뜨니 8시였다.
토스트로 아침을 먹고 기분이 나서 커피를 한 전 더 마셨다.
나가려는데 약을 잊었다는 생각이 났다.
3알을 물에 녹이고 한알은 그냥 먹고, 창문 밖을 내다보자 눈이 너무 부셨다.
창문을 열고 얼마전에 다운받은 책을 봤다.
일본 단편이었는데 주로 30대 후반에서 40대 후반까지의 여자들이 담담히 써내려가는 얘기였다.
정말로 힘이 죽죽 빠지는 그런 종류의 얘기들이었지만 왠지 이게 중독성이 있어서 하우스 키퍼가 와서 집을 청소하고
늉사마가 와서 다림질을 하는 동안도 계속됬고, 점심을 시켜먹고 늉이 간다고 인사할때까지 계속 아주 느린 속도로 책을 읽었다.
너무나 책을 읽는 속도가 느려서 계산을 해보니까 해리포터를 읽었던 속도의 약 6배가 걸렸다.
늉이 가니까 3시30분.
나가려는데 늉이 비빔밥을 해 놓은 것을 봤다.
어제 만났던 오카모토가
"난 한국음식중에 비빔밥이 젤로 맛있다구"
하는 얘기가 생각났다.
다시 티비를 멍-하고 보고 (참고로 얼마전부터 한국방송이 나온다) 비빔밥을 먹고 다시 누웠다.
그리고 하루가 지났다.
하루종일 작은 계란속에 있던 느낌이다.
(일요일)
결국 일요일도 하루종일 집에서 뒹군셈이다.
백화점에 가서 바지와 가방을 하나사고 럼을 한 병 사다가 럼콕을 해먹은게 하루에 전부다.
간만에 스파게티도 삶았고, 저녁은 라면에 밥을 말아 먹었다.
그리고 미뤄두었던 동생에게 쓸 이메일을 썼다.
자, 나는 월요일이 준비되었는가 한참을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