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한국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날 짐을 싸고 있었다.
당시는 이라크 사업을 하던 때라서 최소 한 달에 2번 비행기를 타고 실제로는 그 것 보다 더 많이 여기저기 싸다니던 시절이었다.
얼추 짐을 다 쌌을 적에 뒤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어머님이 한 마디 하셨다.
"너, 정말 많이 돌아다니는구나"
"네?"
"무슨 외국에 나가는 짐싸는게 거의 기계적 동작을 보인다"
"아아"
업무 특성상 짧게도 길게도 출장이라든지 근무라든지 해서 돌아다니는 일들이 있기 때문에 뭐랄까 우리 집은 언제라도 출발이 가능한 상태로 되어있다.
여행용 약주머니 라든지
여행용 치솔, 면도기, 치약, 샴푸, 빗, 화장품 등등이 따로 있고,
다용도실에는 사이즈별 여행가방이 있고,
베트남에 살지만 계절별 옷들이 있고,
양복들도 구김이 덜가는 여행전용이 지정되어 있다.
출장을 포함해서 여행이라는 것 즉, 우리 집이 아닌 곳을 돌아다닌 것은 뭐랄까 현실에서 조금 떨어지는 그런 상황이 되는 것이라서 일단 여기에 익숙해지면 계속 오랫동안 현실이 지속되는 즉, 출장이나 여행을 가지 않는 상태가 계속되면 뭐랄까 역마살의 냄새가 슬슬 지워지고, 이런 과정동안 엄청난 답답함을 느낀다.
실제로 이라크사업을 하다가 베트남 사업을 하면서도 이런 답답함을 느꼈었다.
뭐 요사이 잘 돌아다니시는 나랏님이나 울회사 님을 봐도 살짝 현실에서의 괴리가 주는 즐거움이 나름 있다고 하겠다.
어제 저녁, 오늘 밤에 떠날 여행 가방을 싸면서,
그러니까 일자별로 속옷과 양말을 구분해서 비닐로 싸고,
현지에서 입을 옷을 정리해 넣고,
필요서류와 약주머니, 세면도구 주머니를 챙기면서
기계적으로 일정에 맞는 여행가방을 꺼내면서 머리속으로는 어떤 IT 장비들을 챙길까를 생각하면서
문득 역마살의 냄새를 또 느꼈다.
돌아다니는 것에 익숙해진 삶을 우리나라 사람들은 역마살이라고 네거티브하게 부르는데에는 다 이유가 있겠지만 나중에 어느날 문득 집구석에 앉아 이젠 다 빠져버린 냄새를 맡게 되면 뭐랄가 일종의 슬픔이 올 것 같다.
이번 주 내내 뭐랄까 이성적일 것을 강요받으며 사는 그런 시간들이 기다리고 있어서 그런지 떠나기 전에 감성적이 되는 것은 어쪌 수 없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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