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 중에 하나가 바로 아오자이(áo dài)입니다.
그래서 이 아오자이에 대해 한 번 찾아봤습니다.
아오자이도 우리의 한복처럼 시대가 변하면서 이런저런 모양의 변화가 있었다고 하네요.
아오자이의 역사는 아오자이의 선조격인 아오 뚜 탄(áo tứ thân)에서부터 찾을 수 있는데요 19세기경 대부분의 베트남 여성들이 입었던 옷입니다.
이 옷은 4개의 좁은 천 (두개는 앞에 두개는 뒤에)들의 겹으로 이루어져 있는 겉옷으로 ,
얇은 일종에 블라우스 위에 입어서 여성이 움직일 때 뭐랄까 엘레강스한 움직임이 나오도록 설계되었다고 하네요.
농민들은 단순하게 검은색이나 갈색으로 단순한 색이었지만 신분이 높은 사람들은 5겹이고 다양한 색의 고급 버젼인 아오 누 탄(áo ngũ than)을 입었다고 합니다.
19세기 무렵이 되면서 사람들은 단순한 것을 추구하게 되는데 이 결과 2개의 좁은 천을 결합해서 현대의 아오자이와 비슷한 형태의 옷을 만들어냅니다.
또한 1828년에 민망(Minh Mạng) 황제의 칙령에 의해서 남쪽과 북쪽이 서로 달랐던 패션이 통합되게 됩니다.
1930년대에 깟뚜옹(Cát Tường)이라는 화가가 있었는데, 이 사람은 의복을 국가의 아이덴티티라고 생각하고 이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답니다. (훌륭하네요)
이 아이디어를 가지고 뚜옹은 기존의 아오자이를 당시 베트남을 식민지로 삼고있는 프랑스식 서양 옷과 접목시키려는 시도를 합니다. (으음 발전이 꼭 서양화라는 생각을 한 것이죠. 역시나 웬만한 사람은 한계를 못넘는것이죠)
이 결과 2장의 긴 천이 땅까지 내려오게 되고, 옷을 입은 사람의 몸에 맛춰서 옷을 달라붙는 형태를 띄게됩니다.
또한 목의 깃, 손목과 팔의 모양이 서양 영향을 받게 됩니다.
뚜옹씨는 이 옷을 Le Mur 라고 부르는데 "벽"이라는 뜻의 불어로 그의 성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수 년 후에 사이공 다카오(Da Kao)에 살던 융(Dũng)이라는 재단사가 아오자이의 새로운 디자인합니다.
그는 서양 패션 기술인 라글란(raglan) 스타일의 소매를 만듭니다.
이 결과 요사이에 보는 아오자이와 유사한 형태의 소매가 탄생을 합니다.
비록 아오자이가 북쪽에서는 1958년까지 일상복이었지만, 상대적으로 현대적이었던 남쪽에서는 이미 아오자이가 뒤쳐진 패션이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용의 여인"이라고 불린 쩐 레 쑤안(Trần Lệ Xuân)이 등장하면서 보트(bateu)넥과 가지런한 상체 라인으로 만든 아오자이를 입으면서 다시 패션의 중심에 섰습니다.
이 결과 바로 거의 모든 남부 여성들이 구식으로 치부했던 아오자이를 다시 입기 시작했다고 하네요.
이러한 보트 스타일은 1960년대까지 계속되다가 이 시기에 히피스타일이 사이공에 들어오면서 옷의 길이가 무릅까지 짧아지고, 다양한 색을 띈 아오자이들이 등장하게 됩니다.
베트남 통일 전쟁 이후 옷감이 비싸지자 여성들은 아오바바(áo bà ba) 즉, 아오자이의 간단형 버젼을 입기 시작합니다.
아오바바는 뒤쪽 깃은 엉덩이까지 오고, 앞쪽은 편리를 위해 단추가 있습니다.,
이 시기동안 아오자이는 특별한 행사나 의전의 목적으로만 사용되었다네요.
그러다가 1980년대 베트남이 도이모이(đổi mới) 정책을 펴면서 경제적인 어려움을 벗어나자 아오자이는 다시 인기를 얻게 되었고, 베트남의 심볼이 될 만큼 많은 사람들이 입게되었답니다.
으음 결국 경재의 발전이 아오자이를 살렸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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