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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사이공/호치민 이야기

봉황성의 입구가 어딘지 아세요?

현재의 호치민시는 아시는 분들은 다 아시겠지만 통일 이전에 사이공시와 쪼런시를 합쳐서 만든 도시입니다.

남베트남 왕조와 프랑스 식민시절에 많은 역사가 덕분에 여기저기에 묻어나는 곳이기도 하지요.


예전 남베트남 왕조가 있었으니 왕궁이 있을법도 한데 현재 호치민시에는 어떤 왕궁도 보이지 않습니다.

네, 프랑스 식민시절에 사이공을 동야의 파리로 만들고자 했었기 때문에 기존 건물들을 거의 다 부수고 새로 도시계획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남아있는 예전 왕궁의 흔적이 있는데....


우리 집 근처에 있는 레쥬안(Le Duan) 거리와 디엔 띠엔 황(Dien Tien Hoang) 거리가 만나는 교차로 근처에 식민지풍의 건물들이 있습니다.

바로 다음 사진입니다.


좌우로 지나가는 길이 Le Duan 거리입니다




이 건물들은 프랑스 식민 이전에 최후의 베트남 왕조인 응웬(Nguyen)왕가가 떠이산(Tay San) 형재의 30년간의 봉기를 잠재우고 나서 

야딘(Gia Dinh, 식민 이전에 사이공을 부르던 이름)에서  남쪽에 대한 지배를 공고하게 하기 위해 건축한 3개의 주요 성채 중 하나인 봉황성의 입구입니다. 


봉황성은 응웬왕조의 마지막 성채로 1837년에 축조되었고, 응웬 딘 치우(Nguyen Dinh Chieu), 응웬 쥬(Nguyen Du), 막 딘 치(Mac Dinh Chi) 

및 응웬 빈 킴(Nguyen Binh Kim)에 이르는 면적을 가졌습니다. 아래 지도를 보세요.






프랑스의 침공시 이 성채는 불타없어지고 이후 프랑스군의 병영(Caserne de l’infanterie)으로 1873년부터 사용되었습니다. 



Caserne de l’infanterie 시절의 정문 모습



일본 침략시 이 병영은 잠시 프랑스군을 억류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고, 

1956년 남베트남의 대통령 디엠(Diem)은 이 곳을 공화청(Thành Cộng Hòa)이라고 이름 붙이고 대통령 경호실 본부로 사용했습니다. 


1963년 그가 물러나던 시절에 이 곳은 크게 파괴됩니다. 

이 후 남은 건물들은 제거되고 디엔 티엔 황(Dien Tien Hoang) 거리가 성의 가운데를 통과하도록 확장됩니다.



이 후 사이공 대학교가 성의 남서쪽을 차지하고 미군 라디오 티비 방송국 (AFRTS)과 베트남 티비 (Truyền hình Việt Nam, 현재 Hồ Chí Minh City Television, HTV)가 북동쪽을 차지합니다. 

현재는 호치민 인문사회과학대학과 HTV가 사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