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광란의 주말풍경 -_-;;;




집에 돌아왔더니 이미 고체화가 반정도 진행된 우유와 비쩍 말라버린 꽁치들과 누렇게 변해버린 라임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대충 가방을 던져두고 짧은 바지로 갈아입고는 전화를 들고 피자를 시켜서 먹었다.

커피를 끓여서 마시고 한 숨을 돌리면서 이번 주말에 진행된일들을 생각했다.


시작은 이랬다.

그러니까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장에서 타이거우즈니 필미켈슨 (위의 사진 축하드립니다요) 이니 비제이싱이니 하는 절대절명의 프로골퍼들이 

전세계 최고의 영예인 그린자켓을 입기 위해서 최고의 실력을 겨루고 있는 사이에,

이 곳 아시아의 한 나라 베트남에서는 석유산업의 중심인 두 도시 그러니까 호치민과 붕타우 두 도시의 대표들이 모여서 라이더스컵을 연다.


뭐 이렇게 들으면 대단한 것 같지만 평소에 안면있는 석유회사 및 관계사에 다니던 인간들끼리 뭔가 핑계거리를 만들어서 골프를 치는 그런 행사다.

게다가 자선 형식이라서 열라 참가비도 비싸지만 (흑흑-) 참가 안했다가는 왕따주는 분위기도 있고, 

이쪽 생활이란게 열라 무료하기도 하고 해서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등록을 했다. 


그렇다고 내가 호치민시 대표로 나가기에는 너무 실력이 부족한 관계로 (울 회사에서 젤로 못친다) 모모 회사 부사장인 탄아저씨 한테


"이런 실력으로도 우리 호치민시 대표가 될 수 있을까요?" 했더니

"아아, 걱정하지말라구. 이번 경기는 늘 그렇듯이 골프실력 50%, 체력 50%의 경기야. 알간?" 


하길래 용기를 냈다.



문제는 토요일 부터 붕타우에서 열리는 대회인 관계로 토요일 아침에 가려면 새벽 3시에 출발을 해야된다.

결국 (난 새벽에 못일어난다) 금요일 아침에 부장님한테 가서 


"허억- 몸이.... 이따가 오후에 병원엘..." 


이라고 거짓말 치고 바로 점심먹자마자 붕타우로 날랐다. 

혹시나 이글을 우리 사장님이 보시면... 흑흑 용서해주세요~



잽사게 붕타우에 도착해서 호텔에 자리를 잡고 붕타우에 있는 오카모토녀석에게 전화를 했다.


"나 붕타우다~"

"뭐야? 이 치사한 붕타우 이겨보겠다고 연습하러 일찍온거야?" (참고로 오카모토상도 붕타우 대표 중에 하나다)

"미쳤냐? 나 지금부터 술마실건데 너도 나와"

"아직 근무시간이... (일본넘들 쫀쫀하다)"

"참고로 나는 공식적으로 지금 아프거든..."

"호오... 굳 아이디어 (그래도 기본적으로 인간이란 다 똑같다 -_-;;)"


결국 오카모토와 맥주를 마시다가 인간들 불러서 저녁을 먹고 늘 가던 바에 갔다.


참고로 붕타우에 우리가 가는 바의 분위기는...

척 보면 그럴듯한데, 일단 가격 열라 저렴하고, 배고프면 근처 식당에서 음식배달 오고, 약 20년전의 팝송나오고, 

바닥에 개 뛰어다니고, 화장실 가는길에 고양이들이 노는 한마디로 펑키한 곳이다.


"와와 미스터킴오이 롱타임노씨"


등등의 므훗하고 즐거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는데 저쪽에서 치사하게 붕타우팀으로 붙은 앤디녀석이 웃는다.


"너 나 알아?"

"왜 그래 정말"

"사무실이 멀쩡히 호치민에 있는 넘이 붕타우로 붙어?"

"야야 글지마. 붕타우에도 사무실이 있다구"


이러구 노는데 저쪽에서 건방지게 붕타우 녀석들이 자기네 동네라고 시비를 걸어서 결국 멱살을 잡고 싸움.... 이 아니라 

(대부분 30대 후반에서 50대 후반 -.-a 그럴 나이는 지났져) 

술대결로 이어져서 당근 호치민팀이 대승을 거두고 호텔로 돌아갔다.




토요일 아침이 밝았다.

물론 몸은 아니었지만 주섬주섬 옷을 입고 골프장으로 나갔다.


벌써부터 열라 노는 것을 좋아하는 모모회사 사장인 비엣녀석은 아랫것들을 죠져서 골프장 여기저기 천막을 치고 아침식사용 빵과 계란을 구워대기 시작했고 해장술을 나눠주고 있었다.

일부 심각한 골퍼들과 한국 관광객들은 표정이 일그러졌지만 

우리 업계.... 

심각이라든가 점수관리라든가 하는 골프는 아에 염두에 없다.


B 코스에서 시작이라 연습스윙을 하는데 어제 갔던 바에서 일하는 흥양이 온다.


"미스터김 어제 이거 두고 갔어염"

"오오 흥아 오늘 여기서 일해?"

"넹, 이따가 A코스 6번홀에서 맥주 줄께염"


참고로 우리 대회의 모든 행사 도우미들은 바에서 일하는 여자애들이 한다. 

당근 영어가 되면서 낮아 할 일이라고는 없는 20대 여성이라고는 얘네들 밖에 없다. 

물론 알바비용도 저렴하다.

게다가 이따가 해지면 다 자기들 가게로 오는 홍보전략도 되는 것이다. 


또 대회 공식 음료수라고는 공짜로 협찬받은 맥주밖에 없는 것이다.

물론 생수를 가지고 가면 바로 등록할때 빼앗긴다. 

흑흑 무식한것들...


며칠전에 탐아저씨가 말했듯이 이번 골프는 4월의 폭염과 싸우는 그러니까 기술 반 체력반의 골프였고, 

의외로 정말로 의외로 호치민시 선수들이 거품을 물고 싸워서 첫날은 승리로 마무리를 했다.


문제는...

첫날 승리로 우리가 너무 들뜨는 바람에 오후 3시부터 맥주와 양주를 퍼마시기 시작한데 있다.


"좋았어. 오늘 프론트 비치에 있는 바들을 좌악- 쓸어버리는 거야!!"


등등의 대사가 이어졌고,

정말 거의 죽을 것 같아서 화장실에 가서 시계를 보니 겨우 7시였다. 망할~

여기까지는 기억이 나는데, 거의 엉금엉금 기어서 호텔에 와서 시계를 보니까 11시였는데 중간에 하나도 기억이 안났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하늘이 빙빙 돌았다.

이대로 자고 싶었지만 어제 호치민 총대표인 모모회사 사장이 


"알간. 암튼 술쳐먹고 다음날 안나오는 넘들은 아에 연을 끊을껴!!!" 


하는 바람에 (비지니스는 해야 되니까) 정신력으로 기어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어제 다 자기 집에서 자고 나온 붕타우 녀석들은 원기를 90%까지 회복한데 비해 우리 호치민 선수들은 정신력 하나로 서있었다.


"야 미스터김 너 어제 왜 일찍갔어?"

"흥이 너 찾아다녔어"

"뭐야 몰래 애인이라도 있는거야?"

"짐승같은 넘들... 몇시까지 마셨냐?"

"1시"

"난 2시"


결국 내가 상태가 가장 온전했다. 제길. 게다가 오늘은 어제보다 더 더웠다.

정말 물을 아무리 마셔도 (몰래 숨겨갔다) 계속 목이 말랐다. 

이미 우리 선수 일부는 구급차로 실려갔다. 

이게 무슨 라이언 일병 구하기도 아닌데, 이런식으로 목숨을 걸고 해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연히 책임감이 든 나는 (단순한 한국사람 -_-) 정말 이를 악물고 쳐대서 내 인생 최고의 점수를 얻었다. 

참고로 평소의 날 잘 아는 캐디가 첨으로 날 존경의 눈으로 봤다. -_-;;;


드디어 시상식

식당으로 돌아오자 점심 부페가 준비되어 있었다.


"안킴오이. 어제 왜 도망갔어염?"

"하아- 죽같다. 흥아 가서 아이스커피좀 사다줘"

"시러염"

"자자 착하지"


흥이 사다준 아이스커피를 마시면서 물수건을 머리에 얹고 결과를 들었다.


결과는 붕타우의 승리였다.

간악한 붕타우 넘들의 계략에 걸려서 우리가 방심을 한 결과다.

우리측 대장인 모모씨의 눈초리가 서늘해 졌다. 

우릴 마치 짐승쳐다보듯 한다. 

아아 난 그래도 12시 전에 들어갔다고 양심선언이래도 하고팠다.


그래도 개인성적은 좋아서 (인생 최고의 스코어) 자그마한 트로피도 받고, 부상으로 mp3 player 도 받았다.

결국 아까부터 옆에 앉아서


"안킴오이 저기 mp3 player 내가 가졌음 좋겠어염. 우웅- 갖고 시퍼" 


하고 노래를 불렀던 흥이 내가 상을 받자 뛸듯이 기뻐도 해줬고 (과연 무엇에 기뻐했을까) 

다음에 바에 오면 자기가 맥주 2병 공짜로 쏜다고해서 (잘 생각해보면 맥주 2병이래야 2800원이지만), 흥이 가지게 됬다.


차를 타고 호치민으로 오는 내내 쿨쿨 잠을 자고 조금전에 피자를 먹었더니 다시 지금이 일요일 저녁이라는 생각 이 들었다.

밖에는 노래소리와 오토바이 소리가 들리고, 다시 월요일부터는 뭐 나름대로는 스트레스 받는 그런 일들을 해야한다.

오늘까기 그 난리 쳤던 인간들이 다시 모여서 엄숙하게 양복을 입고 근엄하게 나와 사업을 논의 할 것이다.

뭐 얼마전에 본 티비에서 강호동이 한 말 대로 '프로'니까.


결론은...

정말 간만에 신나게 놀았다는 것이다.


(일요일 저녁에 쓴글입니다)


'사는 이야기 > 사이공데일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mail이 밀리는 인생  (0) 2006.04.19
4월 호치민 일상  (0) 2006.04.13
베트남 호치민 우기 시작  (3) 2006.04.05
주말이야기 2006.4.2.  (0) 2006.04.03
우연을 믿지 않아요  (0) 2006.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