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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잃어버린 주말 이야기

by mmgoon 2015. 7. 19.





매주 주말이 다가오면 뭘랄까 '이번 주말에는 이것저것을 해야지' 하는 식으로 계획을 잡는다.

뭐 이런 식으로 쓰면 '나름 계획적으로 사는 군' 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고,

이번 주말이 그 전형적인 예이다.


금요일 저녁이었다. 

토요일에는 일종의 체육대회가 있는 관계로 4시에 일어나야 하기에 빨리 집에가서 저녁 먹고, 빨래 돌려놓고, 맡겨놓은 양복 바지를 찾으러 갈 예정이었다.


'아아- 형- 막걸리 사줘여'


라고 카톡이 왔다.


'안돼. 내일 일찍 일어나야 함'


이라고 답을 했더니


'아아아앙- 외로와여- 선배가 뭐에여- 이럴 때 술 사주는 거자나여'


란다.

결국, (나는 착한 선배라고 10번 외치고나서) 녀석과 약속을 잡고, 이왕 모이는 김에 우울한 빈증에서 노는 인간들까지 불러서 거나하게 한 잔 했다.

물론 막걸리도 마셨지만 문제는 이게 마지막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기억도 없이 집에 들어와 잠을 자는데 알람이 울린다.


'뭐라? 벌써 4시인가?'


하는 마음에 겨우겨우 일어나서 차에 몸을 싣고 다시 잠에 빠졌다.


"부장님, 도착했습니다. 일어나세요"


라고 옆에 있던 직원이 흔들기에 일어났더니 하늘이 노랗다.

다 죽어가는 몸을 추스러서 겨우겨우 경기를 이어나갔다.

당근 점수는 말할 필요도 없이 거지같았지만 내 목적은 '큰 사고 없이 경기를 무/사/히/ 마치는 것'이 었기 때문에 나름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고 생각한다.


운동이 끝나고 점심을 먹으러 갔다.

영- 좋지 않은 속과 머리상태를 달래면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소장님이


"야- 어째 김부장이 이리 조용하나?"


하신다.

소장님께 쓰러지지 않고 이렇게 앉아있는 것만으로도 기적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었지만 도무지 입이 열리지 않았다.

예전엔 이 정도가 아니었는데 이래서 나이 먹는게 싫다. 흑흑흑-


나는 정신이 없어서 눈치를 못채고 있었지만, 오늘 나름 인생의 최고의 순간을 맞은 인간도 있었고, 이리저리 인간들이 의기투합하여 2차를 진하게 먹으러 가려는 계획이 세워지고 있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는 당긴 빠지려고 했지만... 님하들이


"야야, 그 동안 술 못 마신다고 구박하면서 끌고 다니던 너는 꼭 참석해야되" 라든지

"이렇게 약해졌을 때 잡아야 한다구" 등등의


좋지 않은 대사들이 이어진 다음 나는 차에 실려서 2차 장소로 이동이 되었다.


최악의 순간을 맞을 수 있었으나...

다행히도 2차 장소에 도착을 했을 때는 체력의 80%까지 회복이 된 상태여서 (아아- 회복에 시간이 점점 더 걸리는구나) 다시 행사(?)의 주도권을 잡아 아랫것들고 님하들에게 술을 좍좍 돌리면서 광분의 시간을 이끌어냈다.


이 결과

완전히 정신줄을 놓은 인간들을 차에 태워서 집에다 바려주고 우리 아파트 문을 열고 들어왔더니


1, 2, 3차로 이어진 음주 + 3시간 이하의 수면 + 평소 하지 않았던 과다한 운동 + 1, 2차에 이어지는 과도한 음주


로 인해 겨우겨우 옷을 갈아입고 머멍- 하고 티비를 보다가 잠에 빠져버렸다.


잠을 자는 동안에도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이런저런 식으로 꿈을 10개 이상 꾸면서 (그러면서도 난 기억을 못한다), 부들부들 거리면서 잠을 자고 일어났더니 일요일 아침이었.... 아니 점심시간 정도였다.

하아-

이런식으로 교회도 못가고 (주님 용서를 -_-;;;;;) 

일어났음에도 전혀 체력이 회복되지 못해서 커피를 겨우겨우 끓여 먹고

다시 멍- 하다가 

라면에 찬밥을 (이거 먹어도 되지?) 말아먹고,

다시 멍- 하다가

다시 커피를 마시고

다시 구아바를 먹고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빨래를 돌리고, 설겆이를 하고, 대충 정리를 하는데 비가 쏟아진다.

양복 바지들을 찾으러 가야하는데 비도 오고 귀찮고 그렇다.


원래 이번 주말에 청바지를 하나 사고, 양복 바지 찾아오고, 여름을 맞이해서 호박만두나 만들어 먹고, 이번 주용 밑반찬을 만들려던 계획이 홀랑 날아갔다.

더더욱 큰 문제는

아직도 정신은 토요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무한도전을 봐야지 하는 생각이 계속들고 내일 쇼핑 뭐할까 하는 식의 생각이 이성을 이기고 툭툭 튀어나온다.

아아-

내일 벌써 월요일이란 말이지!!!

이번 주말은 이런 식으로 잃어버렸다. 흑흑흑-


명색이 '사이공 주말 이야기' 블로그인데 주말이 너무 없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