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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사이공/베트남 정보

베트남이라는 이름의 유래

by mmgoon 2015. 7. 16.




우리는 월남이라고 부르는 베트남의 국호도 역사를 통해 여러번 바뀝니다.

베트남이라는 이름이 국호가 되기까지 어떤 이름들이 있었는지 한 번 정리해봤습니다.




베트남이라는 이름


베트남(Việt Nam)이라는 이름은 남비엣(越南; 월남)에서 온 말로 2세기 찌우(Triệu)왕조부터 불려진 이름이다. 

비엣이라는 말은 고대에 현재 중국 남부에 해당되는 지역에 살던 사람들을 지칭했던 박비엣(Bách Việt)이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현재 의미의 베트남(Việt Nam)이라는 말은 16세기 시인 응웬 빈 킴(Nguyễn Bỉnh Khiêm)의 글에서 나타난다. 


중국 지배시에 베트남은 7세기부터 안남이라고 불려졌다. 

민족주의자이고 작가인 판 보이 쩌우(Phan Bội Châu)가 이 이름을 20세기 초에 베트남으로 바꿨다. 

1945년 공산주의자들과 반공산주의자들이 각각 정부를 세웠을 때 두 쪽 다 베트남이라는 이름을 국호로 사용했었다. 

영어에서는 베트남을 Vietnam의 한 단어로 사용하지만 실제로는 2개 글자로 비엣 남(Viet Nam)이 맞는 말이고 (말 그대로 越南이라는 한자어) 

베트남 정부 및 UN에서도 두 단어로 나뉘어 사용하다.


역사를 통해 베트남을 지칭하는 많은 이름들이 있었다. 

공식적인 명칭 이외에도 베트남 지역을 일컫는 비공식 이름들이 존재했다. 


흥붕(Hùng Vương)왕조 때에는 베트남은 반랑(Văn Lang)국이라고 불렀고, 

안증(An Dương)이 왕인 시절에는 어우락(Âu Lạc)국이라고, 

찌우(Triệu) 왕조 때에는 남비엣(Nam Việt), 

리(Lý)왕조 시절에는 반쑤안(Van Xuan), 

딘(Đinh)왕조 및 초기 레(Lê)왕조 시절에는 다이 꼬 비엣(Đại Cồ Việt)이라고 불렸었다. 

1054년부터 베트남은 다이 비엣(Đại Việt, 大越)이라고 불렸었고, 

호(Hồ)왕조 시절에는 다이 우(Đại Ngu)라고 불렸었다.




베트남이라는 말의 기원



비엣(Việt, 중국어로 유에 호근 유왓, 우리말로 월)이라는 말은 고대 중국에서 기원한다. 

처음에는 기원전 1200년경 상왕조 후기에 도끼를 뜻하는 상형문자인 "戉"로 처음 쓰여졌고, 이후 우리가 아는 "越"자가 되었다. 

이 시기에 이 글자는 상나라의 북서쪽에 사는 종족을 가리키는 글자였다. 

기원전 8세기초 양자강 중부에 살던 종족을 ‘양규에’라고 불렀는데, 이 말은 이 후 더 남부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다.

기원전 7세기에서 4세기 동안 유에/비엣/越 이라는 말이 양자강 유역 남부 유에 지방에 사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말이 된다.


기원전 3세기부터는 중국 남부 및 남서부와 북부 베트남에 거주하는 비중국계 사람들 중에 특히 민유에(민월 閩越), 오유에, 

루오유에 (베트남어: 락비엣Lạc Việt) 등의 사람들을 뭉뚱그려서 바이유에/박비엣 (Bách Việt, 百越)이라고 불렀다. 

이 바이유에/박비엣이라는 단어는 기원전 239년 간행된 여씨춘추(呂氏春秋)에 처음으로 언급된다.


기원전 207년, 이전 진나라의 장군이었던 찌우다(Triệu Đà, 조타, 趙佗, 자오뚜오)가 남비엣(Nam Việt, 南越, 난유에)를 세우고 수도를 현재 광조우인 당시 판유에 만든다. 

나라 이름에 ‘南’이 들어간 이유는 다른 바이유에 왕국 즉 현재 복건성과 절강성에 각각 해당하는 민유에, 오유에의 남쪽에 위치했기 때문이다. 

오유에, 난유에 등과 같은 지역이 중국에 통합이 되고 나서도 이후 여러 베트남 왕조들은 이 이름을 계속 사용한다.


섬 짱 찐 (Sấm Trạng Trình, 짱찐의 에언)에서 시인인 응웬 빈 키엠(Nguyen Binh Khiêm, 1491–1585)은 중국식에서 베트남 전통식으로 어순을 바꿈으로서 

(베트남어는 형용사가 명사 뒤에 온다) ‘베트남’이라는 말이 만들어졌다. 

이 시기 베트남은 하노이의 찐(Trịnh)왕조와 후에의 응웬(Nguyễn)왕조로 나뉘어 있었다. 

키엠은 당시 베트남의 여러 이름들 즉, 남비엣(南越), 안남(安南), 다이비엣(大越), 남꿕(南國) 등을 통합하여 통일 국가의 이름을 만든 것이다. 


이를 통해 남(南)이라는 단어는 더 이상 월국의 남부를 말하지 않고 북쪽의 중국과 나른 남쪽의 베트남을 지칭하게 된다. 

이에 대한 설명은 리 퉁 키엣(Lý Thường Kiệt)의 시 남꿕송하(Nam quốc sơn hà, 南國山河, 1077년)에서 쓴


“남부의 산과 강은 남쪽 황제의 것. 

남북이 나뉜 것은 신의 책에 기록되었고, 

너는 어떠한 이유에서도 이 땅을 침범하지 못하고, 

이곳에서는 그대의 패배만이 있다” 


이라는 표현에서 잘 나타난다. 


학자인 응웬 푹 지악 하이(Nguyễn Phúc Giác Hải)에 의하면 하이퐁의 바오람(Bảo Lâm)탑을 비롯한 16-17세기 유물에 비엣남(Việt Nam)이라는 단어가 12개 발견되었다. 


응웬 푹 추(Nguyễn Phúc Chu, 1675–1725)는 시에서 ‘비엣 남 히엔 아이 투 손 디엔(Việt Nam hiểm ải thử sơn điên)’ 즉 ‘이것은 베트남에서 가장 위험한 산’이라는 표현으로 베트남을 언급했다. 


이 후 쟈 롱 황제(Gia Long, 1804-1813)가 최초로 공식 국호로 사용했다. 

사실 쟈롱 왕은 청나라에 남비엣이라는 국호를 사용하기를 요청했는데 청나라 황제는 이를 허락하지 않고 베트남으로 고쳐서 보냈다고 한다.



‘베트남’이라는 말은 근대에 와서 민족주의자들이 다시 많이 사용하는데 판 보이 쩌우(Phan Bội Châu)는 

‘비엣 남 퐁 꿕 스(Việt Nam vong quốc sử, 잃어버린 베트남 역사)'를 1906년에 출판하고, 베트남광복회(Việt Nam Quang Phục Hội)를 1912년에 창설한다. 

그러나 일반 대중들은 계속 안남(Annam)이라는 국호를 계속 사용했고 베트남이라는 말은 거의 알지 못했다. 


그러다가 1930년 베트남국민당(비엣 남 꿕 언 당, Việt Nam Quốc Dân Đảng)이 주도한 옌바이(Yên Bái) 봉기를 통해 베트남이라는 이름이 널리 알려진다. 

1940년대 초가 되면 베트남이라는 말이 널리 사용되게 된다. 

1941년 창설된 호치민의 베트남독립동민회(Việt Nam Độc Lập Đồng Minh Hội, 비엣민/월맹)에서도 베트남이라고 언급하고, 

심지어 1942년 프랑스령 인도차이나의 총독도 베트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베트남이라는 이름은 1945년부터 공식적으로 사용되는데, 1945. 7월 후에(Hue)에 있었던 바오다이(Bảo Đại)의 황실정부에서 명명되었고, 

같은 해 9월 하노이에 있는 호치민의 공산정부에서도 명명되었다.




베트남이 불리었던 여러 가지 이름


식뀌 (Xích Quỷ)

반랑 (Văn Lang)

어우락 (Âu Lạc)

남비엣 (Nam Việt, 南越 남월)

자오치 (Giao Chỉ, 交趾/交阯 교지)

띤하이꽌 (Tĩnh Hải quân, 靜海軍 정해군)

반쑤안 (Vạn Xuân)

안남 (An Nam, 安南)

다이꼬비엣 (Đại Cồ Việt)

다이비엣 (Đại Việt)

다이누 (Đại Ngu)

다이남 (Đại Nam)

데 꿕 비엣 남 (Đế quốc Việt Nam, 베트남 제국)

비엣 남 언 추 꽁 화 (Việt Nam Dân chủ Cộng hòa, 베트남 민주공화국 (북부), Democratic Republic of Vietnam)

꿕 자 비엣 남 (Quốc gia Việt Nam, 베트남 민족국 (남부))

비엣 남 꽁 화 (Việt Nam Cộng hòa, 베트남 공화국 (남부))

꽁 화 싸 호이 쭈 이아 비엣 남 (Cộng hòa Xã hội Chủ nghĩa Việt Nam, 베트남 사회주의 공화국 (현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