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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S Town Daily

출장 보고서

by mmgoon 2023. 3. 18.

 


회사에 제출할 출장보고를 쓰다가 생각을 해보니 이번 출장은 뭐랄까 전형적인 우리 업계의 모임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밀린 출장보고서를 블로그에 올린다.

 

일단은 사건의 시작.

 

“자자, 한국에서 말이야 행사를 하자고. 당근 너도 참석해야됨”
“뭐 별로 중요해 보이지도 않는데 행사까지 해야해?”
“아아아. 무슨 소리!!! 반드시 행사를 할거임. 한국 사는 너는 절대 참석이라고”

 

해서 일요일 오후에 터덜터덜 기차를 타고 진주로 또 다시 통영으로 향했다.

 

“호텔 도착했어?”
“응. 그런데 어디야?”

 

녀석들은 먼저 도착해서 통영의 해산물이 유명하다는 얘기도 안했는데, 호텔 근처 횟집에서 소주를 마시고 있었다. 

이 업계 술집 찾는 능력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_-;;;;

그렇게 녀석들과 소주와 해산물을 먹고 첫날을 마쳤다.

 

다음 날 아침부터 고성으로 이동하고 녀석들이 준비한 행사에 참여해서

가슴에 꽃을 꼽고 박수치고, 사진찍고 등등 어디서나 볼 수 있을듯한 일들을 했다.

호텔로 돌아와서 휘리릭 밀린 회사일들을 처리하고, 바닷가에서 얼어버린 몸을 녹이고 있자 저녁 시간이다.

 

“야야, 저녁 만찬 열라 지겨울 것 같으니 우리 먼저 맥주 한 잔 하자고”

“좋지”

 

라는 얘기를 마친 우리들은 행사장 근처 맥주집에서 생맥주를 들이키고,

왠지 어떤 지겨운 연설이라도 들어줄 것 같은 상태로 만든 다음 만찬장으로 향했다.

 

“자자, 이쪽에서 칵테일을 한 잔씩 하면서 환담을 나눠주세요”

“저는 와인 주세여”

“아 나는 위스키 줘여. 뭐라고? 위스키도 일종에 칵테일임”

“한국인데 소주는 왜 안주는 거임?”

 

이미 생맥주로 기분이 좋아진 우리는 공짜 술을 마셔댔고, 이윽고 저녁 행사가 시작되었다.

의외로 양식을 주면서 진행되는 행사였다.

이런저런 비디오 상영과 님하들의 말씀으로 이어진 만찬이 끝나고 시간을 보니…. 위험하다.

8시도 되지 않은 시간이다. 아아-

 

방으로 올라가서 편한 옷으로 갈아입는데 전화가 온다.

“아까 본 일식집에서 맥주를 사다오”

“비싸보이던데”

“야. 한국 오면 니가 쏜다매”

“알았음 지금 내려감”

 

해서 내려가보니 저쪽 부사장을 비롯한 늙은이들이 가득하다.

 

“아아. 미스터 킴이 산다고 해서 우리 이렇게 모였음”

“넹? 그리고 부사장님 내일 새벽에 나간다고 하지 않으셨나여?”

“괜찮음. 이제 8시도 안됬는데 뭐”

 

반주로 시동을 걸어놓고 너무 일찍 울 업계 인간들을 풀어놓은 결과다. -_-a

 

비록 내가 초대하지는 않은 인간들이 대부분이었지만 모두들 업된 마음으로 일식집에 도착을 했다.

일단 장기전을 피하기 위해 40도짜리 화요를 시켜서 토닉을 섞을 준비하는데 저쪽회사 부사장이 

 

“아니 그거 좋은 술로 보이는데 쓸데없이 얼음과 토닉을 섞다니”

“글면 첫 잔은 스트레이트로 할까여?”

 

이후 녀석들은 첫잔만이라는 내 말을 씹고는 줄창 스트레이트로 비싼 화요를 들이키기 시작했다.

 

“이거 넘 부드러움”

“야야 빨랑 따라봐”

“그래요. 주량 것 마시는 것이 좋아요. 화요가 힘든 인간들은 맥주를 마셔요. 나는 화요 한 잔 더”

 

일부 처음 보는 인간들과 처음 10분간은 서먹함이 있었으나 부드러운 목넘김들이 이어지자 곧 관계들이 형성되었고,

역시나 같은 업계의 술자리 전통이 이어진다.

 

대충 다음의 순서로 진행된다.

 

1) 자기가 근무했던 나라들에 대해 썰풀기

2) 누가누가 열악한 환경에 근무했었나 글고 얼마나 위험한 순간을 겪었나 썰풀기 

3) 요사이 디지털화 되고 있는 현실에 대해 욕하기

4) 이 넘의 일 그만두면 난 이걸 할거야 썰풀기

5) 나는 어디까지 아파봤네, 나는 이런저런 장기를 제거했네 썰풀기

 

이렇게 진행하다가 결국 

 

“아 그래도 일식집에 왔으니 일본술을 마시고 싶네”

“내일 비행기 타셔야 하는데… 여기여 차가운 사케로 주세여”

이런 식으로 연장전이 개시되었다.

 

그러자, 이 업계 음주 마지막 단계인

 

“내가 말야 일 처음 시작하던 80년대에는 말이야”

“그나저나 몇 년 생이야?”

 

가 시전되었다. -_-;;;;

 

다행이도 내 나이는 중간정도였고, 의외로 노안이나 어린 녀석은 사케를 원샷했다.

 

그렇게 외국 넘들은 나이를 알기 어렵다는 사실을 확인했고,

식당 아가씨가 이제는 나가달라는 얘기를 전달했고 (아아 4시간을 한 자리에서 마시다니 ㅜㅜ),

일부는 만취를 했기에 식당을 나와서 (아아- 내가 계산을 했다구) 호텔로 향했다.

 

아침에 일어나자 컨디션이 영 아니다.

10시 화상회의를 위해서 정신을 부여잡고 씻은 다음 아침을 먹으러 내려왔다.

어제 인간 중 일부가 보인다.

 

“아아 왔어”

“응. 잘 잤어?”

“뭐 그럭저럭. 그나저나 늙은이들은 죽은 듯”

“아아”

 

뭐랄까 지금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 안에서 생각을 해보니 정말 간만에 울 업게 스타일의 저녁이었다.

아아 이 업계 어떤 면으로는 발전이 없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고, 의외로 이런 시간들을 나는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뭔가 깨달음이 있었던 출장이라고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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