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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사이공데일리

아날로그 시대와의 단절

by mmgoon 2017. 11. 6.




요사이 어찌어찌하여 대학교 동기들과 단톡방이 개설되었다.

뭐랄까 나이를 먹었으나 그리 철이 많이 들지 않은 무리들은 왠지 이 단톡방에서는 예전의 마음들로 이런저런 얘기들을 하고 있는데

이 단톡방을 개설한 녀석이 자꾸


'예전 사진들 좀 올려'


라는 메시지를 보낸다.


이런 이유로 소위 이전 사진들을 뒤적여봤다.


그리고 나서 결론인즉슨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이전 사진은 2000년도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대충 로모를 구입해서 스캔을 한 사진들이 최초인 것이다. 

그 이전 사진들은 장수도 적고 (디카가 나오기 이전에 개인의 사진 갯수는 극히 제한적이었다. 알간?) 아마도 지금 어무니 집 어드메즈음에 책장에 쳐박혀서 (그러니까 예전에는 사진을 찍고 인화해서 나오면 그걸 앨범이라는 책에 붙여두곤 했다) 썩어가고 있을 것이다.


외국에 사는 관계로 게다가 몇 년에 한 번씩 다른 외국으로 가는 인생을 사는 관계로 왠만한 개인적인 물건들은 디지털화해서 들고 다니는 물건들을 최소화하는 삶에 익숙해져 버진지 십수년이 흐르고 나자

내가 가지고 있는 가장 오래된 것들은 2000년 이전으로 가지 못한다.

그러니까 그 시절은 아날로그 시절이라서 외장하드에 잘 들어가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 많다는 얘기다.


그렇게 오늘 단절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한국에 있는 모교회 홈페이지를 들어가봤더니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의 첫 설교가 올라와있다.

뭐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을 모르는 것도 아니고, 모교회에서 설교하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시고,

그렇지만 지난 25년 동안 교회하면 떠오르던 얼굴이 바뀐 것에서 또 하나 단절을 느꼈다.

뭐랄까 이렇게 예상을 넘어서 계속되는 외국생활이 언젠가 끝이 나게 되면,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가서도 울산생활이 다시 끝나게 되면 뭐랄까 돌아갈 집은 없을 수 있겠지만 돌아갈 교회 하나 정도는 있다는 작은 소망이 새로운 스테이지로 넘어가버린 느낌이다.

정작 교회의 디지털화를 목청 높혀 외치던 사람이었지만 결국 그리워한 것은 인터넷으로 만나는 그런 곳이 아니었나보다.


암튼,

뭐 그렇다. 

가끔은 감정이 설명을 시작하는 순간이 오기 마련이다.

호치민의 하늘은 흐리고, 벌써부터 길은 퇴근하는 오토바이들로 가득찼다.

내 아날로그 시절과는 이미 단절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느끼는 그냥 그런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