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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S Town Daily

여수 밤바다에 근접했던 이야기

 

그러니까 이야기의 시작은 포항부터다.

아침에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허둥지둥 포항으로 향했고, 포항역에서 버스를 타고 행사장으로 갔다.

 

“아아 형님 오셨군여”

“얌마. 바쁜데 여기까지 불러야 했어!!”

“흑흑흑. 어쩔 수 없었다구여”

 

천막 하나 없는 아스팔트 위에서 땡볕을 맞아가면서 다른 회사 행사에 참여를 했다.

수 많은 축사들이 이어지고, 폭죽이 쏘아지고, 나랑 상관없는 사진 촬영이 이어졌다.

 

그 모든 행사가 끝나고 나자 

 

“자자 형님 여기 기념품”

 

하길래 받아들었더니 우산이다. 

아아 이 넘들 10년째 발전이라고는 없네라는 생각으로 (지난 번에도 우산을 줬다 -_-;;;) 쨍쨍 신나게 빛나는 햇볓을 뒤집어 쓴 채로 서울로 돌아왔다.

 

 

 

 

그리고 호주 출장 중에 전화가 한 통 온다.

 

“아아 형님. 지난 번에 넘 감사해요. 더우셨져?”

“그걸 말이라고” -_-*

“그런 의미에서 이번에는 호텔을 하나 잡아서 간담회를 하려고 합니다요”

“근데?”

“아아아아 왜 이러세염. 참석해주셔야져!!!”

 

녀석은 마치 자신의 운명이 이번 전화에 달린 모양으로 난리를 쳤고, 결국 착한 선배인 나는

 

“알았다고, 초청장이나 보내렴” 했더니

“넹. 담주에 보내드려여”

 

한다.

 

 

 

 

그리고 귀국해서 열심히 보고서를 쓰고 있는데 띠링- 하면서 초청장이 온다.

 

“짜잔- 지난 번에 더우셨져? 이번에는 시원한 호텔에서 행사를 개최한답니다. 모두 여/수/로 오세여~”

 

뭐라고? 하는 마음에 다시 메일을 봤지만 아무리 봐도 행사장소는 여수다. 

아아- 전화 받을 때 녀석에게 장소를 물어보지 않은 내 잘못이지만 금요일에 생뚱맞게 여수라니….

 

“야야, 여수면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지!!!”

“왜여? 형님 간만에 여수 좋자나여”

“시끄러 난 서울에서 하는 줄 알았다고”

“흥- 어제 팜플렛까지 인쇄 맡겼으니 와주셔야 겠어여”

 

그렇게 하는 수 없이 여수행 KTX 표를 끊다가 문득 내려간 김에 발표 후다닥 마치고 주말에 여수에서 빈둥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고, 잽싸게 여수 호텔을 예약했다. 

어헉- 하게 호텔 가격이 있었지만 밤바다를 보면서 해산물을 먹는 기회를 생각해서 꾸욱 카드를 그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내일은 여수로 가는 날이다.

대충 발표자료 준비하고, 새벽에 출발해야 하는 것을 고려해서 운기조식(?)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빗발친다.

 

“아아아- 낼 님하 모시고 더 높은 님하를 만나러 가야한다고”

“넹”

“근데 내가 한국에 없으니 니가 하라고”

“넹?“

”글고 무슨 한이 있어도 오늘 중으로 자료 만들어서 나랑 내 위쪽이랑 그 위쪽까지 보고하라고“

”그게…. 지금이…. 오후 4시인데염“

”다 필요없어. 난 오늘 자료를 보고싶음“

”근데 저는 내일 여수에….“

”여수? 야 지금 데프콘 상황이라고!!!“

 

결국 이렇게 해서 미친듯이 자료를 만들고 여수에서 행사준비중인 녀석에게는 목을 바치겠다고 다음 번에는 어디에라도 가겠다고 비굴하게 설명하고, 기차표 취소하고, 호텔비는 날리고 (흑흑- 이래서 최저가는 ㅠㅠ) 나서, 다시 한 번 님하들에게 보고하고 최종안을 받아 다시 님하에게 설명하고, 그 님하를 모시고 더 큰 님하들을 만나고, 다녀와서 보고서까지 써서 다시 님하들에게 보고하고 나니….

계획대로였다면 지금 즈음 여수 밤바다를 보면서 한 잔 기울이고 있을 시간이다.

 

양복을 떨쳐입고 더운 날에 여기저기 뛰어다녔더니 덥고 옷도 축축하다.

터덜거리고 집에 돌아왔더니 기운이 없어서 밥도 못하고 치즈에 맥주를 홀짝인다.

아 여수 밤바다가 손에 잡힐 듯 했는데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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