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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사이공/음식

반미(Bánh Mì)의 역사

by mmgoon 2018. 4. 25.




베트남을 대표하는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음식으로 하노이 출신 쌀국수인 퍼(phở)가 있다면, 

사이공 출신으로는 바로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bánh mì)가 있습니다.


사이몬 스탠리씨의 포스팅에 의하면, 반미의 역사는 프랑스 식민시절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이는 퍼도 마찬가지) 

이 시기는 유럽 스타일의 음식들이 베트남으로 유입되었고 이런저런 영향을 주던 시기였습니다. 

당시 베트남에 살던 프랑스 사람들은 자기네 나라 음식만을 즐겼지만 (프랑스 친구들이란 -_-;;;), 

베트남 사람들은 프랑스 음식에 영향을 받아 20세기부터 요사이 인기있는 새로운 퓨젼 스타일의 음식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유럽에 전쟁들이 시작되면서 본격적으로 프랑스 음식과 베트남 음식사이의 장벽이 본격적으로 허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세계 1차 대전이 시작되면서 프랑스 식민주의자들은 전선으로 향해야 했고, 베트남에는 그들 남긴 프랑스식 식재료들을 베트남 사람들이 슬슬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베트남 사람들은 유럽스타일의 햄, 치즈, 빵 등을 이용해서 자시만의 스타일의 

까세 크로(casse croute, 프랑스식 바게트 샌드위치, 발음이 맞나?)를 만들기 시작했고,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프랑스식 바케트 샌드위치인 casse croute




그렇지만 1954년까지는 우리가 알고 있는 현재의 반미는 탄생하지 못했습니다. 

북부 베트남에서 공산주의의 영향으로 개인사업을 금지했기 때문에 이 베트남 스타일 샌드위치의 바톤은 남부의 사이공으로 넘어갔습니다.


우리가 요사이 알고 있는 반미는 1958년 응웬 딘 찌우 (Nguyễn Đình Chiểu, 당시는 511 Phan Đình Phùng) 거리에 있는 반미 화 마(Bánh Mì Hòa Mã)라는 곳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이 집은 놀랍게도 아직도 장사를 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바로 인근 까오 탕과 응웬 딘 찌우 거리가 교차하는 곳 있죠. (주소 : 53 Cao Thắng, Quận 3, Hồ Chí Minh, Vietnam).  


이 가게는 북쪽 하노이에서 발명된 프랑스식 바게트의 수정버젼 같았던 샌드위치를 가격을 내리기 위해서 빵의 길이를 줄이고, 

일부 햄들을 더 많은 야채들로 교체한 요사이 형태의 반미를 만들어냈습니다. 

참고로 가게 이름은 하노이 외곽에 있는 마을 이름이라고 합니다.


이 결과로 노동자 계층까지도 이 베트남 스타일 샌드위치인 반미를 즐기게 되었고, 반미는 사이공 전역으로 퍼져나가게 됩니다. 

인기가 올라가자 화마(Hòa Mã)의 주인은 원래는 접시에 내용물을 담고 이것들을 빵에 넣어먹는 방식에서 (요사이는 따로 반미 차오 Bánh Mì Chảo라고 부릅니다) 

샌드위치 스타일로 미리 빵 속에 재료들을 넣는 방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쉽게 먹을 수 있도록 변화를 줍니다.



빵과 내용물이 따로 나오는 반 미 차오




월남전이 끝나고 베트남 사람들이 유럽과 미국에 정착하면서 베트남 사람들이 만든 이 특별한 음식인 반미를 서방으로 소개하면서, 

베트남 스타일 샌드위치인 반미는 전 세계로 반미가 퍼져나가게 됩니다.